70대 부모님과 산티아고 걷기 29
2022년 6월 7일
걷기 25일 차: 산 마틴 델 카미노 -> 아스트로가
아침부터 해가 쨍하다. 꽤 더울 것 같은 날씨. 오늘은 아스트로가까지 가는 날이라 갈 길이 바쁘다.
도로 옆길을 가다 마을 길로 들어서면 곧 푸엔테 데 오르비고 다리가 나온다. 순례길에서 만나는 다리 중 꽤 멋진 다리.
다리를 건너 마을을 빠져나가는 길부터는 도로 옆길이 아니라서 좋다.
장미가 예쁘게 화단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으니 주인 할아버지, 할머니가 나오셨다. 말은 통하지 않지만 꽃을 사랑하는 스페인과 한국의 어른들은 마음이 통했나 보다. 주인 할아버지가 활짝 핀 장미 세 송이를 거침없이 잘라 선물로 주셨다.
드디어 다시 만난 순례길다운 순례길. 그동안 차도 옆길을 따라 걷느라 힘들었는데 황토색 자갈길을 만나니 반갑다.
쨍한 햇볕을 피해 잠시 나무 그늘에서 휴식을 취했다. 이 길 어딘가에 오아시스가 있었는데 도대체 언제쯤 나올런지...
뜨거운 태양에 지쳐갈 때쯤 저 멀리 순례자들의 모습이 보인다. 데이비드의 오아시스를 만난 것이다.
이곳은 도네이션으로 운영되는 사막의 오아시스다. 4년 전보다 꽃도 많아지고 훨씬 잘 가꿔진 것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힘들 때 먹는 달콤한 과일만큼 좋은 간식도 없다. 과일로 당을 충전한 후 다시 힘을 내본다.
저 멀리 오늘의 도착지 아스트로가가 보인다. 물론 보이기만 할 뿐 최소 2시간을 걸어가야 만날 수 있는 도시이다.
작은 마을에 도착한 후 4km를 더 걸어야 목적지에 도착하기 때문에 이곳에서 택시를 부를까 고민했다. 그렇지만 부모님과 얘기를 하고 난 뒤 목적지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며칠 만에 20km가 넘는 거리를 걷게 됐다.
아스트로가가 가까워질 때쯤 이미 3시가 다 되어가고 있어서 서둘러 숙소를 도착지로 설정하고 지도를 보며 걸었다. 지도를 보니 아스트로가를 가로질러 도시를 빠져나가는 길목에 자리 잡고 있었다. 늘 숙소를 잡을 때는 위치로 고려하는 편인데 오늘은 좀 아쉬웠다.
24km를 8시간 만에 걸어 숙소에 도착했다. 조금 힘든 날이지만 아스트로가에는 볼거리도 꽤 있어서 빠르게 씻고 가우디가 설계한 구 주교궁, 현 카미노 박물관으로 향했다.
가볍게 저녁을 먹고 난 뒤 혼자 순례자 여권을 다시 발급받으러 공립 알베르게로 갔다. 이곳 공립알베르게는 꽤 가파른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는데 도시 초입에 있어서 위치가 꽤 좋다.
공립 알베르게 뒤편 공원이 노을 명소이기에 돌아가는 길에 들렸더니 구름이 많아 보이지 않았다.
오랜만에 20km가 넘는 강행군을 했기에 꽤 피곤한 날이다. 푹 쉬고 내일 다시 힘을 내야지. 곧 철의 십자가를 만나게 된다. 그곳에서는 꼭 아름다운 일출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숙소 정보: EL DESCANSO DE WENDY
아파트형 숙소로 깔끔하고 주방에 가벼운 간식거리와 음료가 항상 준비되어 있었다. 조식도 맛있다.
다만 개인적으로 위치가 별로였다. 순례길에서 숙소는 도착지 중심으로 초입에 있는 숙소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주인은 영어를 못하지만 친절하고 아파트형이기에 상주하지 않는다. 조용한 곳에 머무르고 싶다면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