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 부모님과 산티아고 걷기 30
2022년 6월 8일
걷기 26일 차: 아스트로가 -> 라바넬 델 카미노 -> 폰세바돈
조식이 7시 30분에 시작해서 조금 늦게 출발했다. 조식은 한 상 차림으로 나오는데 지금까지 먹었던 스크램블 에그 중에 제일 맛있었다. 계란에 고기랑 야채를 넣어서 만들었는데 간도 딱 좋았다.
아스트로가에서 초콜릿을 사지 못해 아쉬웠지만 힘내서 출발. 구름이 잔뜩 끼고 날이 흐리다. 혹여나 비가 올까 조마조마했다.
오랜만에 다시 산을 올라가는 코스이다. 아스트로가에서 라바넬 델 카미노까지는 고도가 300M정도 높아진다. 그러니 해가 쨍한 날보다는 이렇게 흐린 날이 걷기엔 더 좋은 날씨일 수도 있다.
비가 내리지는 않았지만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혹여나 다시 감기에 걸릴까 걱정이 됐다. 나도 엄마도 이제 좋아지고 있는데 다행히 한 번 기침을 시작하면 잘 안 떨어지는 아빠가 감기에도 안 걸리고 제일 건강하시다.
저 멀리서부터 서서히 구름이 걷히기 시작한다.
고도가 높아지고 바람이 부니 제법 쌀쌀하다. 마을의 바에도 야외 테이블에 순례자들이 보이지 않는다. 우리도 바 안 쪽에 자리를 잡고 따뜻한 커피를 주문했다.
쉬고 나오니 다행히 구름이 많이 걷혔다. 그래도 꽤 쌀쌀한 공기가 상쾌하다.
산으로 올라가고 있다는 느낌의 오솔길을 만나면 조금 더 경사가 높아진다.
라바넬 델 카미노는 산에 있는 동네라 그런지 동네 자체가 긴 오르막에 자리잡고 있다.
코로나 이전 이 동네에는 한국인 신부님께서 계셨다. 코로나가 터지면서 한국으로 들어가셨고 대신 학생 신부님이 계시다고 했는데 공부하느라 다른 도시와 왔다갔다 한다고 한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한국인 신부님은 안 계셨다.
이곳에서부터 폰세바돈까지는 거리상으론 5km가 좀 넘고 고도는 400m 가 넘는 꽤 가파른 산을 올라야 한다. 그리고 내일 철의 십자가는 순례길 중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라바넬부터 급격히 고도가 높아진다는 건 그만큼 풍경은 멋지지만 힘든 구간이란 뜻이다. 그래서 나는 이곳에서 택시를 부르기로 했다. 동네에 택시가 없어서 다른 곳에서 오신다고 했다. 순례길에서 택시를 탈 때는 미터기보단 정해진 금액을 내는 것같다. 미터기를 사용해본 적이 없다. 아마 작은 마을에서는 지금처럼 택시가 잘 없기에 다른 마을에서 오기도 하기 때문인 듯 싶다.
오늘 묵는 숙소는 평이 좋아서 그런지 꽤 좋다. 세요도 2개를 찍어주는데 하나는 철의 십자가가 새겨져 있다. 그리고 숙소 아래에 잡화점과 식당이 있다. 철의 십자가에는 메시지를 적은 돌이나 편지 등을 놓기도 하는데 그래서인지 잡화점에서 마커펜도 팔고 있다.
4년 전 혼자 왔을 때는 비도 오고 컨디션이 좋지않아 그냥 잠만 잤던 기억이 있는데 이 동네, 생각보다 마음에 들었다. 높은 곳에 위치해서 내려다보는 풍경도 꽤 좋다.
밖으로 나와 산 아래 풍경을 구경하고 있을 때, 예전에 블로그에서 봤던 중세 느낌의 식당을 발견했다. 어마어마한 사이즈의 스테이크와 햄버거, 생선 요리가 나왔다. 특히, 아빠는 빵을 좋아하셔서 스테이크 아래에 있는 빵이 맛있다고 좋아하셨다.
원래는 숙소 아래에 있는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하려고 했는데 운좋게 특이한 컨셉의 식당을 발견하게 될 줄이야. 배부르게 먹고 밖으로 나오니 무지개가 보인다. 조금 짧은 무지개였지만 색은 선명했다.
구름도 걷히고 있으니 오늘 밤엔 쏟아지는 밤하늘의 별을 볼 수 있을까? 이런 마음이 내 욕심이란 걸 알지만 이 길 위에서는 끊임없이 욕심이 난다. 부모님께는 아마도 1번 뿐일 이 길에서 내가 경험한 모든 좋은 것을 경험해드리게 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욕심을 내려놓기가 쉽지 않다.
*숙소 정보: EL TRASGN DE FONCEBADON
아기자기한 소품이 인상 깊었던 숙소. 우리는 3인실이라 꼭대기 층에 묵었는데 천장 창이 있었다. 가게와 식당도 바로 아래라 숙소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어서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