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의 일상_06. 푸엔테 라 레이나->에스테야
5일 차: 푸엔테 라 레이나 -> 에스테야_07:40 ~ 15:00 (22km)
자고 일어나면 확실히 몸이 괜찮아진다. 짐을 챙기면서 고민을 하다가 계속 걷고 싶은 마음이 커서 버스를 타지 않기로 했다. 배낭을 목적지에 보낼 수 있는 동키 서비스를 이용하고 최소 물건만 챙겨서 걸어보기로 했다. 내 발목 상태를 걱정한 K 군은 갖고 있던 붕대를 빌려주었다. 배낭에서 필요한 물건만 빼내어 다시 꾸리는 사이, 일행들은 먼저 출발했다. 이런 일이 있을 거라는 예상을 못해 따로 작은 배낭을 준비하진 않았다. 대신 빨래 가방으로 쓰려고 가져온 멜 수 있는 비닐 백에 물건을 옮겨 담았다. 샌들을 신고 혹시 몰라 트래킹화까지 챙겨 넣으니 가볍지는 않았다. 끈도 얇아서 장시간 메고 걸으면 어깨가 너무 아플 것 같았다. 어떻게 하는 편이 더 좋을까 계속 고민을 하다 결국 온전히 내 배낭을 메고 걷기로 했다. 오늘도 숙소 예약을 했고 일행들이 먼저 도착할 테니 쉬엄쉬엄 가보자고 생각했다. 또다시 짐을 다 꺼내 배낭을 꾸리고 길을 나섰다.
처음으로 일행과 떨어져 걷게 되니 많이 외롭고 나만 뒤처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장에서 묵었던 알베르게 주인아저씨가 이건 경쟁이 아니니 자기만의 페이스를 유지하는 게 좋다고 말해줬지만 그 말을 실감하기엔 내 마음이 여유롭지 못했다. 그리고 내가 이곳에 오면서 한 나와의 약속을 지키고 싶었다. 하루라도 쉬지 않고 조금씩 걷기. 일정이 빠듯해서 처음엔 힘들면 동키도 이용하고 버스도 탈 생각이었지만 막상 아프니까 더 걷고 싶었다. 이 길을 볼 수 없다는 생각과 며칠 쉬거나 버스로 점프하면 지난 5일 동안 길에서 마주친 사람들을 볼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그저 길을 걷는 게 좋다. 아프다고 땅만 쳐다보는 게 아니라 주변 풍경과 하늘을 자주 바라보고 땀 흘리며 걷다가 마주치는 사람마다 서로를 응원하는 이 길. 고작 5일밖에 걷지 않았지만 이 길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
이곳 마을에는 여왕의 다리라고 불리는 유명한 다리가 있는데 어제 다리가 아파 미처 보지 못했다. 여왕의 다리는 마을을 빠져나가는 통로이며 순례길 위에 있었다. 분명 어제저녁에도 멋있었겠지만 오늘 아침 떠오르는 태양과 함께 보이는 다리는 정말 멋졌다.
구름은 많았지만 등 뒤로 해가 비추고 다행히 비는 내리지 않았다. 사진을 찍은 후 다른 순례자들을 따라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내 앞에 스틱 한 쌍을 나눠갖고 서로의 팔에 의지하며 걸어가는 노부부가 보였다. 함께 천천히 길을 걷는 두 분 모습이 정말 아름다웠다. 나는 과연 인생을 함께할 좋은 동반자를 만날 수 있을까? 사실 이때 만나던 사람과 이별을 생각하고 있던 터라 이런 모습을 보면 더 많은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일행과 떨어져 걸어 외롭긴 했지만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던 하루이기도 했다. 자갈이 있는 오르막을 만나서 신발을 바꿔 신고 있는 내게, 가던 길을 되돌아와 유창한 한국어로 “한국 사람이세요? 타이레놀 드릴까요?”라고 물어본 다니엘. 외국인이 한국어로 건넨 그 말도, 가던 길을 되돌아와 묻던 그 마음도 정말 고마웠다. 그는 한국에서 2년간 일을 했었다고 한다. 지금은 신앙심이 깊은 어머니와 함께 길을 걷고 있다고. 어머니는 잘 걸으시고 사진도 많이 찍고 자주 쉬어가셨다. 그런 어머니 곁에서 묵묵히 같이 걷는 다니엘의 모습이 좋아 보였다. 이후 비아나 카페와 나헤라 알베르게에서 만나고 못 만났는데 산티아고까지 건강히 도착하셨겠지? 사진이라도 찍어둘걸, 두고두고 아쉬웠다. 기분 좋은 만남에 힘을 내서 다니엘과 빅토리아 어머니 뒤를 따라 열심히 걸어갔다.
언덕 위에 옹기종기 집들이 모여있는 마을에 도착했다. 마을은 온통 오르막이었다. 작은 마켓 옆에 작은 약국이 있었다. 순례길 위에 있는 약국이다 보니 대부분 나처럼 발이 아파 들어온 사람들이 많았다. 안에 있던 10대 소녀도 발이 아파서 온 모양이다. 걱정스레 쳐다보는 부모님과 이런 일이 흔한 듯 능숙하게 처치해주는 약사 아주머니가 있다. 소녀는 붕대를 감고 보호대를 착용하니 한결 나아진 모양새다. 곧 내 차례가 되어 증상을 묻는 약사와 구글 통역기로 대화했다. 종아리 뒤쪽까지 올라오는 통증이 없다면 아킬레스건 이상은 아닌 것 같다며 신발 사이즈가 맞지 않아서 그런 것 같으니 발뒤꿈치에 붙이는 제품을 주셨다. _젤이 붙어 있는 둥근 패드와 파스처럼 붙이는 이중 구조로 되어있는 제품이었는데 떼고 나면 피부가 빨개졌다. 그래서 하루 이틀만 사용하고 파우치 속에 고이 간직하고 걸었다. 그리고 이런 증상은 큰 문제가 아니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말해주셨다. 나는 혹시 모르니 발목 보호대도 사겠다고 했는데 약사 아주머니는 굳이 필요치 않을 거라 말하면서도 꼭 사겠다는 내 의지를 보셨는지 내 발목에 맞는 보호대를 찾아주셨다. 감사 인사를 하고 다시 출발했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 통역기와 몸짓으로 대화한 거라 뭔가 꺼림칙했지만 아킬레스건 이상이 아닌 것 같다는 말에 안심이 됐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그냥 믿기로 했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믿으면 진짜 그렇게 될 거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자주 쉬면서 천천히 걸어가자.
오후가 되니 구름 한 점 없고 해가 쨍하다. 그늘도 없는 오르막을 걸으니 너무 덥고 힘들었다. 내리막길을 앞두고 잠시 길 옆에서 스틱 길이를 조정하며 쉬고 있는데 뒤따라오던 아저씨가 스틱 바닥에 있는 캡을 빼면 도움이 될 거라고 알려주셨다. 그게 신호가 되어 같이 걸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프랑스 파리에서 온 아저씨는 북쪽 길을 2년 전에 걸었고 딸에게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한국인 친구가 있어서 우리나라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계셨다. 사실 언어가 잘 통하지 않아서 속 깊은 얘기를 나누거나 서로 말하고자 하는 의미를 정확히 알아듣지는 못했다. 하지만 함께 걸으며 이야기를 나눈 그 순간에는 서로 통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다리 위에서 함께 쉬다가 먼저 가시게 됐는데 잠시 후 큰소리로 나를 부르더니 이제부터 올라가는 아스팔트 길은 스틱 캡을 끼워야 한다며 손짓으로 알려주셨다. 실제로 아저씨가 말해준 것처럼 흙길에서는 캡을 빼고 아스팔트에선 다시 끼우고 걸으니 훨씬 수월하게 걸을 수 있었다. 정말이지 유용한 정보가 아닐 수 없었다. _이 분이 바로 용서의 언덕을 오르던 날 찍었던 사진 속에서 내 앞에 계신 분이었다. 나중에 K 군에게 사진을 받아 보곤 어찌나 반갑던지.
세 번째로 만난 마을 바에서 오렌지 주스와 또르띠야를 먹으며 쉬고 있었다. 날도 덥고 발목도 아프니 무리하지 말고 쉬엄쉬엄 가야 하니까. 보호대를 해서 더 뜨거워진 발목에 요청한 얼음을 대며 식히고 있을 때, K 군에게 어디쯤이냐는 연락이 왔다. 에스테야에 도착해 알베르게를 찾고 있다길래 나는 바에서 쉬고 있으며 조금 늦게 도착할 거 같다는 소식을 전했다. K 군은 걷는 속도가 달라 J 언니와도 떨어졌다며 걱정을 했다. 그러던 중 테이블에 함께 앉아도 되냐고 물어보는 친구가 있었다. 우리는 짧게나마 함께 앉아 얘기를 나눴는데 이 친구는 독일에서 3D 프린팅을 한다고 했다. 짧은 휴가를 즐기러 이 길을 걷고 있으며 길 위에서 영감을 받아 피아노를 연주해 CD로 제작하고 싶다고 했다. 말은 잘 통하지 않았지만 역시 진심으로 상대방 얘기에 귀 기울이니 신기하게도 모두 이해할 수 있었다. 이후 에스테야 초입에 만나 우리가 예약한 알베르게에 함께 묵게 됐다. _그리곤 다신 만날 수 없었는데 그 친구는 집으로 돌아가 피아노 연주곡을 만들었을까? 궁금하다.
쉬엄쉬엄 걷는다고 해도 왼쪽 발목이 계속 불편하고 아팠다. 뜨거워진 발목을 시킬 겸 그늘진 터널 끝에 앉아 양말을 벗고 쉬고 있었다. 누군가 괜찮냐고 물어보며 말을 걸어왔다. 미국인 로리와 영국인 세라였다. 그녀들은 길 위에서 만나 함께 걷는 중이었는데 나이가 꽤 많아 보였지만 행복하고 건강해 보였다. 특히 로리는 작고 다부진 모습이었는데 야외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이었다. 내 발목을 보더니 밴드를 바꾸는 게 나을 거라고 말하며 자신의 배낭에서 구급상자를 꺼냈다. 그리고 나선 아주 자연스럽게 내 왼쪽 발목을 자신의 다리 위에 얹고 밴드를 바꾸고 붕대를 감아주었다.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오래 걸어 냄새도 나고 땀도 많이 났을 텐데 아무렇지 않게 치료해주고 걱정해줬다. 붕대를 감아주면서도 계속 말을 했는데 이 길을 걸으며 “썬”이라는 한국인 아들이 생겼다고 말하며 내 이름을 물었다. 그러곤 꼭 기억하겠다고 길에서 만나서 반갑게 인사하자고 얘기를 나누곤 헤어졌다. 이 길이 가진 가장 큰 장점은 서로가 모르는 사이인데도 친절하게 대하고 같은 길을 걷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서로 응원하고 걱정해준다는 것이다. 누구보다 이 길을 위해 어떤 마음과 준비를 거쳐왔는지, 얼마나 간절한 지를 잘 알기에... 참 고맙고 아름다운 길. 그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
또다시 벤치에 앉아 잠시 쉬고 난 뒤 배낭을 멜 때 발목 보호대가 없어졌다는 걸 알았다. 아마 로리가 붕대를 감아준 이후 배낭 옆에 끼워두고 걸었는데 아무래도 물통을 뺄 때 떨어졌나 보다. 한국에서보다 비싸게 사서 다시 찾으러 갈까 하다가 내게 필요 없기 때문에 더 필요한 사람에게 가려고 떨어진 모양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리고 두어 번 더 쉬고 나서야 에스테야에 도착했다.
알베르게에 도착하자 다들 걱정했다며 수고했다고 격려해줬다. 하루 떨어져서 걸었을 뿐인데 무척 반가웠다. 오늘의 알베르게는 한 방에 1층 침대 4개가 있는 유스호스텔 같은 곳이었다. 오늘은 우리끼리만 방을 사용할 수 있으니 좋다. 샤워실에 들어간 내 옷을 J 언니가 얼른 챙겨가서 함께 세탁을 하고 장을 보러 마을로 내려갔다. 주방이 작아 냉동식품과 샐러드 위주로 저녁거리를 사고 내일 먹을 간식도 샀다. 전자레인지에 돌려먹는 냉동식품 맛이 나쁘지 않았다.
오늘 처음으로 혼자 걸었는데 멋진 경치와 친절하고 좋은 사람들을 만난 덕분에 외롭지 않게 잘 도착할 수 있었다. 아까 독일 친구와 바에서 이 길 위에서 무얼 하고 싶냐는 이야기를 할 때 나는 언젠가 내 책, 내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말했다. 분명 그런 시간이 오겠지만 지금은 그저 건강히 걷고, 걷는 순간 행복감을 느끼는 것에 만족한다.
오늘 아프면서 걸어보니 이 길은 누구나 자신만의 아픔을 가지고 걷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게 육체적인 고통이든 정신적인 고통이든. 그런데 그 고통에만 집중하면 길 위의 아름다움을 놓치게 된다. 그러니 너무 고통에 빠지지 말고 주변도 돌아보자. 그리고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여기에서 얻으려 말자. 그저 건강히 아프지 않게 완주하면 좋겠다. 내일도 무사히, 부엔 까미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