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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치영 Mar 06. 2024

부모님과 두 달 동안 여행을 떠나는 날

70대 부모님과 산티아고 걷기 00

 2022년 5월 9일: 대한민국 -> 파리

 2022년 5월 9일 드디어 부모님과 함께 파리행 비행기를 탔다. 2년 전 이루지 못한 부모님과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시작하는 내 버킷리스트가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비행 시각이 바뀌고, 여정도 2시간이나 길어지는 등 출발할 때까지 많은 변수가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비행 날짜가 바뀌거나 취소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순간을 위해 얼마나 많은 준비를 하고 마음을 졸였던가. 일단 비행기를 탔으니 잠시 한숨을 돌렸다.

 여행을 계획하기 시작한 건 2019년도이다. 2018년 홀로 걸었던 그 길이 좋아 부모님과 꼭 한 번 같이 오고자 하는 마음이 들었다. 일찌감치 비행기 티켓을 사고 준비물을 하나씩 하나씩 구입했다. 일정도 짜고 주변에도 알렸다. 그러나 여행을 두 달 앞둔 시점, 아시아뿐 아니라 유럽에서의 코로나 상황 역시 심상치 않았다. 결국 비행기 티켓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혼자였다면 예약을 하지 않았겠지만 부모님과 함께 하니 모든 것을 예약해 두었었다. 환불이 가능한 것도 있었고 불가능한 것도 있었다. 돈도 돈이지만 이날을 위해 시간과 마음을 쏟았기에 너무나 아쉬움이 컸다. 내 마음이 이랬는데 부모님께서도 오죽하셨을까. 겉으로는 상황이 이러니 가지 않는 편이 낫다고 하셨지만 속으로는 아마 많이 아쉬우셨을 것이다. 아빠의 일흔을 기념하는 해이기에 더욱더.

 이러한 시기를 겪었으니 이번 여행은 더욱 알차고 꽉 차고 변수가 없게 진행하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떠나기 전날까지 일을 했다. 코로나 기간 운이 좋게 장기 작품들을 해서 약 10개월간 빠짐없이 청주에서 서울로 출퇴근을 하며 공연을 진행했는데 체력적인 것도 컸지만 사람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너무 커서 살도 많이 빠지고 내 몸의 기운도 쫘악 빠져있었다. 정말이지 이 당시엔 떠나는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준비가 부족했기에 가기 전날까지 숙소를 예약하며 일정을 고민했다. 부모님께서 과연 두 달간 해외에서 잘 지내실 수 있을까? 그리고 나는 과연 부모님과 두 달간 매일 24시간을 함께 할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들로 버스에서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오랜만에 온 공항은 한적했다. 이른 시간이기에 사람들도 많지 않고 문을 열지 않은 상점들도 있었다. 약국에 들러 베드버그 기피제와 친구가 추천해 준 피로 회복제를 샀다. 드디어 파리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한적했던 공항과 달리 비행기는 만석이이었다. 

 '그래, 시작이 반이라고 했으니까... 비행기를 탔으니 무사히 파리에 도착만 하면 돼. 그럼 다 잘될 거야.'라는 생각을 하며 난 잠에 빠져들었다. 

 예약한 공항 근처 호텔에 갔다. 부모님을 모시고 떼제베가 자주 있는 몽파르나스까지 가기가 어려울 것 같아서 공항 근처로 숙소를 잡았다. 여러 고민 끝에 내일 루르드로 가는 열차 역시 공항에서 출발하는 열차로 예매했다. (이 선택이 불러올 내일의 재앙은 정말이지 멘붕이었다.) 

 내가 한 번 가봤던 생장에 도착하는 순간까지 긴장을 놓으면 안 된다. 부모님과 함께 하는 산티아고 걷기는 기대가 크지만 걱정도 무척 크다. 너무 기대하지 말고 부모님 컨디션에 따라 조절하며 다니자고 나 스스로에게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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