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실 지음,유유출판사,2021
에세이는 한 사람의 결과 바닥을 그대로 드러내는
적나라하고도 무서운 장르라고 생각한다.
좋은 에세이가 되는 삶을 살아온 작가와 같이 일하고 노는 시간을 사랑한다.
그들 곁에서 '나만 아는 작가의 말'을 수집하고 편집해, 원고와 내 삶에 반영한다.
독서를 꽤 하는 편이지만 에세이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 글에는 내가 알고 싶지 않은 작가의 생활과 생각, 참견 같은 것들이 일기처럼 나열되어 있기 때문이다.
잔잔한 파도를 볼 때 지겹다는 생각이 들 듯이 에세이라는 분야의 책도 나에게는 그런 파도와 같았다.
간간히 시간이 날 때마다 사다 쟁여 둔 책을 꺼내 읽는데 요즘 가장 많이 읽는 것이 에세이다.
독서를 하며 머리 굴리지 않아도 되고 작가의 참신하고 발랄한 생각과 말도 마음에 들었다.
때로는 사회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토로하기도 한다.
에세이는 읽다 보면 '나도 쓰겠는데?'라는 생각을 많은 사람들이 하는 것 같다.
글을 쓰고 싶은 예비 작가들이 가장 접근하기 쉬운 분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함정이 있다.
이 책의 저자가 말한 것처럼 자신을 적나라하게 모두 드러내야 하기 때문에 자칫 일기가 될 수 있다.
감정적인 글이 될 수 있고 평소의 편협했던 생각들을 담아낼 때도 있다.
출판사로 들어오는 투고 원고 중 80% 이상이 에세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읽어 보면 똑같다.
어제 읽었던 투고 원고와 그저께 읽었던 투고 원고와 다를 게 없다.
그럼 우리는 에세이를 어떻게 써야 할까.
저자가 <에세이 만드는 법>을 썼으니
저자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면 편집자가 혹할 만한 책을 쓸 수 있을 것이다.
에세이의 타깃 독자는 '대중'이다.
누구라고 특정할 수 없다. 아주 많은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독자가 될 것이다.
그럼 그들에게 어떻게, 어떤 이야기를 풀어야 할까.
요즘은 솔직 담백하게 쓴 글이 인기다.
이런 거까지 쓰나? 너무 까발리는 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드는 그 글을 써보자.
몇 번의 퇴고 과정을 거치다 보면 글은 정제되어 나만의 유니크한 글이 탄생할 것이고,
그 원고는 편집자의 손에 있을 것이다.
유의할 점은 절대 일기를 쓰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는 아무도 당신의 일기에 관심이 없다.
에세이는 흔히 '잡문'이라고 불리곤 한다.
처음엔 나의 장르를 '잡문'이라고 함부로 말하는 사람을 보면 모멸감을 느꼈다.
그러던 어느 날 정여울 작가님이 네이버 오디오 클립 '월간 정여울'에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걸 들었다.
타인이 에세이를 '잡문'이라 부를 때는 이 장르를 가볍게 보는 편견이 들어 있을 것이나,
스스로 나의 장르를 '잡문'이라 말할 때 그것은 자기 비하도, 겸손도 아닌 단단한 자신감이 된다고.
'잡스러다'는 것은 반듯하게 그어진 경계나 선 따위는 가볍게 뛰어넘어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라고.
나는 잡종 편집자다.
세상의 모든 좋은 것과 좋은 사람을 책을 만들 수 있는 잡종 에세이 편집자다.
앞으로도 매일 고민하고 가끔 실패하고, 종종 팔면서
나는 계속 '잡문' 편집자로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