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벽보배 Apr 25. 2018

딸 둘에 아들 하나, 그중에 가운데 딸

셋 중의 둘째는 전사로 자라난다. 사랑받기 위해서, 균형 잡기 위해서.

자식이 셋 있는 집에 2번들은 보통 야무지다. 넷 중의 둘째나 셋째의 느낌과는 또 다르게, 애가 셋인 집의 둘째는 묘하게 강한 생명력을 가졌다. 특히 딸 둘, 아들 하나 순서의 집이라면 가운데 낀 딸은 욕심도 많고, 바지런하고, 성격도 유난히 강한 경우가 많다.  

  한국사회가 딸보다 아들을 선호하던 시대에 위에 언니를 두고 또 딸로 태어났으니, 아들이 아니었다는 이유로 아쉬움을 받았던 차에 집안의 기다림을 한 몸에 받고 태어난 남동생을 만나게 되면 관심도와 집중도 면에서 "상대적 애정결핍"이 구도에 놓이기 때문이다.

  혹은 예쁜 막내딸로 세상 귀한 공주로 자라다가 갑자기 집안에 유일한 남동생을 얻어버리고 나서는 원래 내 거였던 관심이 고스란히 "왕자님"에게 옮겨가는 통에 동생이  생기면 많이들 고생한다는 손윗 아가 심통이 자동 업그레이드되고야 마는 것이다.


 결국 집안의 첫아이로 충분한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자란 1번과, 막내로 태어나 집안 사랑 받이의 종결자 역할을 맡게 되는 3번 사이에서 "내 사랑 내 곁에"를 외치며 조금의 관심이라도 더 받고 싶어 고군분투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욕심도 생기고, 바지런해지고, 이쁜 짓을 하는 방법을 자연스레 체득하는 생존형 2번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보통 딸 둘 아들 하나 있는 집의 세명의 자식이 다 자라고 나면, 가운데 딸이 유난히 잘 하고 산다. 상대적으로 "부유"함을 따지는 "잘 산다"가 아닌, 야무지고(때로는 억척스레) 손 덜 가게 뭐든 척척 잘하면서 똑 부러지게 잘 지낸다.

  

  그리고, 내가 딸 둘 아들 하나 있는 우리 집의 그 2번이다.



신이 재능이 몰빵 된 1번, 첫째 딸


우리 집 첫째 딸로 태어난 언니는 어려서부터 예쁘고 순한 애기였다고 한다. 외할머니가 등에 엎고 "경진아~ 랄랄라~"하면 엉덩이를 들썩들썩 흔들어 대는 귀여운 아가. 주먹을 쥐면 살이 삐겨져 나오던 과잉 통통의 유아기를 넘어서자, 비록 북한말을 쓰는지 남한말을 쓰는지 알 수 없는 강원도 두메산골 촌동네일지라도, 동네에서 제일 예쁘게 생긴 여자애로 등극할 만큼 뽀얀 피부에  여리여리한 외모, 눈웃음이 귀여운 여자애였다.

  게다가  예쁘고 착한데 머리도 좋았다는 사실! 5살 되던 해에 알아서 한글을 다 깨치더니, 동네 아이들을 앉혀놓고 옛날이야기를 읽어도 주고 지어도 주던 똑소리 나는 아이였다. 아이큐 검사라는 것이 가능하던 시절 148이라는 숫자를 찍어내며 시골에 천재가 났나 보다 하던 것도 모자라, 따로 돈 주고 "사교육"이랍시고 가르친 것이라고는 집에서 자체적으로 해결이 안나는 피아노 레슨뿐이었던 것 같은데. 그리기면 그리기, 글짓기면 글짓기, 웅변이면 웅변, 노래면 노래, 심지어 작곡대회까지도 나가서 전국구의 상을 쓸어오던.... 엄마 친구 딸이 아니라 "그냥 우리 엄마 딸"이었다. 문제는 그 딸이 내가 아니라는 것.



난 어렸을때 어지간히 언니를 좋아하는 "언니바라기"였다. 사실 지금도 그렇다.
분명 절대 못하는 게 아닌데 티가 날 수가 없던 2번, 둘째 딸

  이러니, 둘째로 태어난 나는 일단 지고 시작했다. 태어난 순서도 2번으로 태어났으니 2등으로 시작한 건데, 내가 5살에 한글을 읽는다 한들(그랬던 것 같지는 않다) 첫째도 그랬으니 당연한 일이고, 교내 글짓기 대회에 나가 상을 타 온다고 해도 언니는 이미 전국구 상을 받아 왔고(금성출판사 전국 글짓기 대회가 있었던 시절), 내가 월말평가에서 전과목에서 1개를 틀리고 온다한들 "올백"퍼레이드가 당연한 언니가 있으니 빛이 날 리가 없는 것이다. 사실, 언니를 뛰어넘을 수 있는 장르가 거의 없었다. 

  

  게다가 나는 어렸을 때부터 탄탄하고 다부진 체격에, 남자애들하고 치고받고 뒹굴며 노는 게 더 익숙한, 늘 어디가 까져있거나, 새까맣고 반질반질하게 타있는, 인형같이 이쁜 언니에 비하면 대체 동생이 맞는가 싶은 외모를 가진 두메산골 제일 기쎈 애라서 동네 할머니들이 "저게 사내놈이 나오려다가 계집애가 나와서 그렇다"는 소리 듣기가 일쑤였다.  그러니 승부근성이 생길 수밖에 없고, 욕심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늘 결핍이 존재했으니까. 비교에서 우위를 점한 적이 거의 없었으니까. 내가 언니를 이길 수 있는 단 하나의 종목은 체육. 나는 언니보다 잘 달렸고 빨랐다. 산도 잘 올랐고 오래 달리기도 잘했다.

동생이 태어나기 전, 언니와 나


태어나면서 그냥 모든 게임 끝내고 나온 귀한 아들, 3번

언니 하나만 있는데도 이렇게 눈에 띄기 힘들었는데, 내가 5살이 되던 해! 내 동생이 태어났다. 네 살 터울의, 무려 남동생. 게다가 엄마의 목숨과 바꿀뻔한 드라마틱한 탄생 비화까지 등에 엎고 태어난 신화 같은 자식이다. 언니는 7살이었을 테니 막내가 태어나는 날 기억이 난다고 했다. 빨갛고 쭈굴 쭈글 하고 되게 못생긴 애기가 동생이라고 해서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나야 뭐. 내 기억에 내 동생이 시작되는 순간엔, 늘 내가 때리고 괴롭히고 있었으니까.


  남동생 놈은 얼굴이 엄청 하얗고 예쁜 아기였다. 정말 나날이 이쁘고 잘생겨지는 애기였다. 요즘 애기들은 다 이쁘고 잘생기고 하지만, 그 당시 시대적 배경과 우리 집이 있던 동네의 촌구석 배경을 깔고 생각하면, 내 동생은 서울에 살았으면 아역 모델이든 배우든 시켜도 충분히 먹힐 만큼 예쁜 애기였다.(이쁘게 나온 사진을 하나 넣고 싶은데, 안타깝게 모든 사진이 본가에 있다) 

  남자애가 분명한데 애교도 많았고 천성이 사랑이 철철 넘치는 아이인 데다가, 아들 귀한 집에 막내아들로 태어나신 덕에 우리 할머니가 집에 오시면 거의 바지를 안 입혀 두려고 하셨을 정도. 동네 할먼니들 사랑도 한 몸에 받아 걸음마를 시작한 이후로도 땅을 밟고 다닐 일이 거의 없을 정도로 늘 누군가의 등에 태워져 있었더랬다. (덕분에 후천적으로 사~알짝 o자 다리가 되었다는 고소미 같은 이야기!!라고 쓰고 아직도 혼자 뭔가 고소하다고 낄낄대는 나는 몇 살인가...)

  신이 그나마 공평하신 부분이 있다면, 잘생긴 아들로 태어난 내 동생은 온 동네 사고를 주도해서 치는 걸 보면 머리는 좋은 게 분명한데, 그 머리는 공부 쪽으로는 전혀 발달할 의지가 없었다는 것. 만약 이 귀한 3번이 공부마저 잘하셨다면 정말 난 어디서 아무도 모르게 소멸됐을지도 모르겠다.

귀염둥이 시절의 남동생. 저시절엔 내가 맨날 괴롭히고 때렸던 기억이...
우리 삼남매의 성격을 드러내는 사진. 친한 1,3번 세트의상! 무릎은 어디서 깨지고 온 2번, 나.


이쯤 되면 둘째는 어쩔 수 없다. 생존은 본능이니까 누구에게 배우지 않아도, 누가 시키지 않아도 이쁨 받는 방법을 알아서 체득하게 된다. 엄마가 일하면 제일 바지런하게 가서 돕는 것도 알아서 하게 되고, 공부를 비롯한  모든 학생으로서의 의무분야를 알아서 열심히 하게 되고, 어디 가서 싸워도 절대 지고 들어오지 않는다. 얻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의 판단은 빨라지며, 최대한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된다. 1번이 어쩌다가 허점을 보인다면, 그 부분만큼은 내가 더 낫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애쓰고(수학이 나를 살릴 줄이야), 혹은 열렬한 투사가 되어 투쟁을 불사하기도 한다. (보통은 3번에 대한 폭력행사가 주를 이룬다)


1번은 2번과도 친하고 3번과도 친한데, 2번과 3번은 친하지만 많이 싸우게 된다. 이유 없이 당하던 3번이 나이가 들수록 자신이 이유 없이 2번에게 공격받았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인지하기 시작하면서 반항하기 때문이다. 나이 터울이 있는 1번과 3번은 엄마와 자식 다음으로 끈끈한 유대관계를 보여준다. 그날그날 누가 1번과 잘 유대하였는가에 따라 편이 하나 늘거나, 줄거나 하게 된다.

 

이런 1,2,3번이 하나로 뭉치는 날은 보통 사고 치는 날이다. 엄마가 숨겨놓고 조금씩 꺼내 주던 과자를 대동 단결하여 몽짱 털어먹는다거나, 커피 우유를 만든다며 대접에 엄마가 아끼는(그 당시만 해도 명절 선물로 주고받을 정도로 비싼 축에 속하던) 굵은 알 커피(빨간 맥 x)를 엄청 소비 해버 리거나, 달고나를 만든다고 주방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동시에 국자를 홀라당 다 태운다거나 하는 그런 것들. 그 후 당연한 수순으로 따라오는 공동 기합의 시간을 통해 우리의 관계는 더 공고해졌다. 다만, 반성문을 쓰기 시작하면 글 쓰는 재주 하나는 빼어난 1번은 후딱 쓰고 고통의 시간을 제일 먼저 종료했고, 막내야 어리니까 반성문 단계는 진입하기 전이고, 하나 남은 나만 반성문 종이와 아주 긴 싸움을 했어야 했을 뿐.




어릴 땐 셋 중에 둘째라 뭔가 태어나면서 기본적으로 조금 불리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1번, 2번, 3번은 태어난 순서대로 모두 하나씩은 얻고 태어난 것 같다. 1번은 첫아이로써의 관심과 사랑과 책임감을, 3번은 막내로의 관심과 사랑과 더불어 1,2번이라는 든든한 지원군을. 불평불만이던 2번은 생존하는 방식을 저절로 깨우치는 축복과, 2번을 지켜주는 1번과 지켜야 할 3번 사이에서의 균형감각을.

게다가, 신이 공평한 건 1,2,3번이 한결같이 한 캐릭터로 쭉~갈 수 없는 역변의 시간들을 끊임없이 제공한다는 점이다. 어느 날은 1번때문에 즐겁고 2,3번을 걱정하다가, 또 어느 날은 1,3번이 집안에 쓰나미를 몰고 와도 2번이 위안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까 나는 따지고 보면 크게 손해 볼 것 없는 2번으로 태어난 것이다. (그러니까 혹시 아직도 마음 한켯이 헛헛한 2번이 있다면 다들 힘내시길)


없는 살림에 애를 셋이나 낳아준 엄마 아빠께 감사하다. 언니가 없었어도, 동생이 없었어도 우리는 이렇게 재밌게 자라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미워했던 시간도, 오래 싸워야 했던 시간도, 불만이 엄청 많았던 시간도 있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그 모든 시간이 소중했다. 여전히 우리는 아직도 다투고, 아직도 갈등이 폭발할 때도 있지만 그 시간도 소중하다. 우리 중에 누구 하나라도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처럼 잘 자라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지금 이 순간에 우리 중 누구 하나가 없었더라면 이라는 가정을 하면, 마음이 괜히 철렁한다. 그리고 제일 감사한 건 세명에게 모두 고루 사랑을 충분히 쏟아내 준 엄마 아빠. 아마 두 분의 사랑이 누구 하나에게라도 일방적이었거나 심하게 치우쳐졌더라면 셋다 제대로 자랄 수 없었거나, 적어도 누구 하나는 빗나갔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좋은 엄마 아빠의 딸로 태어나서 참 좋다. 그러니 잘하고 싶을 수밖에.


모든 여행을 5명의 가족이 함께 다닐 수 없지만, 셋 중 하나라도 엄마 아빠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 우리는 또 나름의 방식으로 지금에든 나중에든 그 시간을 공유할 수 있을 테니까. 최근 '엄마 아빠와의 여행의 시간'을 많이 담당하는 셋 중의 둘째는 많이 행복하다. 어쩐지 인정받는 기분도 들고, 엄마 아빠를 독점하는 기분도 들어서 말이다.

언니와 엄마와 함께하는 여자들끼리의 여행도 좋고, 언니와 단둘이 떠나는 자매 여행도 좋았다. 엄마 아빠와 떠나는 여행은 엄마 아빠 독점에 대한 성취욕도 있었으나, 언니와 동생의 부재에 대한 아쉬움도 함께였다. 동생과의 여행은... 아직 우리끼리의 둘의 여행은 위험하다.(전쟁으로 끝날수 있다.) 하지만 또 생각해보니 특별해질 것도 같다. 


엄마도 아빠도 보고 싶은 밤이다.

언니도 동생도 보고 싶다.

전화라도 한번 해야겠다.

이제, 우리의 여행 이야기를 들려줄 기초 설명은 간단히 다 끝난 듯하다.

다음 편부 턴 정말 우리의 여행 이야기를 풀어내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내 삶, 긴 여행의 시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