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벽보배 Jun 27. 2018

우리말 공부, 하고 계신가요?

정말 영어가 문제였을까? (7년 전 나의 글에서 찾은 뜨금한 자기반성)

#1. 

IMF 이후 우리나라는 늘 경제난 속에서 허덕이는 모양입니다. 경제난, 취업난, 부도, 구조조정... 언제나 팍팍하고 때로는 섬뜩하기까지 한 용어들이 아직 서른도 되지 않은 저에게 10년 이상 지속된 온 기억으로 남아있으니까요. 해마다 "최악의 경제난"이라고 해오는 걸 보면 분명 좋아지지는 않고 있나 봅니다. 이런 팍팍하고 쪼들리는 대한민국은 지금 영어 공부 중입니다. 목적 없는 스펙을 쌓기 위한 대학생들부터, 취업을 준비하는 청춘들,

해외진출이 아니면 길이 없다고 압박받으며 경제난이 데리고 올 구조조정의 위기에서 살아남기 위한 직장인들까지 충분히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 영어는 피해갈 수 없는 과제입니다.


#2.

우리처럼 뒤늦게 배워 고생하지 말라는 부모의 넘치는 사랑에 힘입어 아직 우리말도 시작하지 못한 아가들도 영어공부를 시작합니다. 영어유치원, 영어캠프, 조기유학까지... 영어교육이라는 명분으로 가족을 갈라놓고 "기러기 아빠"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으니 이 정도면 대한민국은 영어교육에 중독되어 있다는 생각을 안 할 수 없습니다. 분명 경제는 어렵다는데, 영어교육을 위한 지출은 점점 늘어만 갑니다. 교육비뿐만 아니라 좋은 스펙을 만들기 위해 반복해서 응시하는 각종 영어 시험 응시료도 절대 싼 값이 아닙니다. 강남과 종로뿐만 아니라, 어느 동네에서나 고개를 들면 영어학원의 간판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영어"유치원이라는 이유로 아이 한 명이 대학 등록금과 맞먹는 돈을 내고 유치원에 다니고 영어캠프는 물론, 방학을 이용한 초등학생들의 단기 어학연수는 수천만 원이 넘지만 이미 유행처럼 번져 나가고 있습니다. 대학생들도 학기 중 휴학 및 어학연수는 이제 필수코스처럼 되어 있다고 합니다. 분명. 경제는 어려워졌다는데 말입니다.


#3.

TOEIC, Speaking, OPIC, TEPS, TOEFL.... 시험의 종류도 다양합니다. 듣기, 쓰기, 말하기, 문법, 단어...... 공부하려는 분야도 아주 세분화되어있지요. 하긴 들어야 말하고, 말해야 대화가 되고, 말로만 할게 아니라 쓰기도 해야 하는데 문법과 구조에 맞게 쓰려니 문법도 국어와 전혀 다르니 다시 배워야 하고, 이 모든 것들을 하려면 단어를 알아야 하니 단어도 열심히 외웁니다."글"부터 "말"까지 총체적으로 배우기 위해 모두들 전력질주를 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영어를 넘어 중국어, 일본어 등 제 2 외국어까지 합세하고 있습니다.


#4.

이 즈음에서 질문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국어공부" 하고 계십니까?

수능 언어영역 이후, 대학의 전공 관련과 제외하고. 순수하게 개인의 "우리말 실력"을 위해서 공부해보신 적 혹시 있으신가요? 아나운서나 언론인의 꿈을 갖고 계신 분이라면 아마 한국어 능력시험을 위해 공부하셨겠지만

대부분 많은 분들이 국어공부를 해보신 적은 거의 없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말, 우리글이니 알아듣고, 말하고, 쓰는데 큰 불편은 없으실 테니까요. 다시 한번 질문드립니다.

"한글과 한국어", 정말 제대로 쓰고 계신가요?



#5.

한국어와 한글을 검색해보면 ['한국어'는 전통적으로 한민족이 쓰는 언어를 이르는 말이며, '한글'은 한민족이 쓰는 언어를 표기하기 위해서 쓰는 문자의 이름]이라고 나옵니다. 하지만 한글, 한국어 모두 제대로 쓰는, '한민족의 범주에 들어있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 만 같아 안타까운 심정입니다. 영어 단어와 철자는 달달 외우면서 한글 맞춤법을 외우는 사람은 받아쓰기 공부를 하는 초등학생 이외에는 보지 못했습니다. 영어 writing은 문장의 구조와 배열, 접속사 등을 꼼꼼히 살피면서 배우고 연습하기를 반복하지만 한국어 작문 공부를 하는 사람은 보지 못했습니다. 영어공부를 위해서 좋은 영어문장이나 연설문을 찾아 읽고 외우는 사람은 봤지만, 한국어 공부를 위해서 좋은 책과 명 문장을 찾아 읽거나 필사하는 사람은 거의 만나지 못했습니다. 학습량도 극히 적은 가운데 인터넷과 각종 휴대기기의 발달로 외계어가 난무해가는 현실 속에서 한글과 한국어가 무너지 고 있습니다. 인터넷 채팅이나 각종 메시지를 보내면서 알고 틀린 것인지 모르고 틀린 것인지 알 수 없는 실수들을 많이 봅니다. 게다가 짧은 문장으로 가볍게 글을 남기는 SNS의 특성으로 점점 긴 문장 읽기를 기피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읽기도 싫어하니 쓰지도 않게 되지요. 그러다 보니 제대로 된 문장을 쓸 줄 아는 사람도 적어지고 있습니다.


문장이 그러한데, 문단을 넘어 격에 맞는 글을 쓰는 사람도 찾기 힘든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작가나 직업으로 글을 쓰시는 분들을 제외하고 주위에 평범한 일반인들을 기준으로 쓰고 있습니다.) 말하기도 예외는 아닙니다. 적절한 단어의 사용, 접속사의 사용, 높임말의 사용.... 사실 어느 나라 말보다 어려운 한국어를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은 적습니다.


정규 교육과정이 끝나는 동시에 국어공부에 대한 위기의식은 아무도 느끼지 않습니다. 거리에 넘쳐나는 영어학원에 비하여 일반인을 위한 "국어학원"이 없는 것이 그 반증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모국어라도 제대로 구사하는 사람들이 적은 것입니다. 분명 많이 배우신 분들인데도 잘못된 한국어를 구사하시는 걸 보고 깜짝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6.

정말 영어가 문제인 것인지 생각해보았습니다. 물론 글로벌 시대에 세계인의 공용어인 영어는 반드시 필요한 부분입니다. 하지만, 영어만 잘하면 좋은 대학교에 가고, 좋은 직장에 취직하고, 안정적인 회사생활을 할 수 있을까요? 취업에서 영어는 한 두 개 항목에 해당하는 평가요소입니다. 공인인증 시험 점수나 회화 정도가 그것이지요. 하지만 나머지는 모두 한국어로 이루어집니다. 간단한 자기소개부터 심층면접까지 모든 대답이 우리말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입사를 준비할 때 몇 번의 회사 면접 과정에서 문제의 핵심을 읽지 못한 채 다른 대답을 하는 응시자, 자기소개조차 달달 외우고 와서 웅얼거리던 응시자, 면접시험의 문제를 앞에 두고 어찌할 줄 모르는 응시자, 말을 더듬거나, 틀린 높임법을 사용하는 응시자 등 우리말이 문제인분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과연 그분들은 국어공부에 신경 써 보신 적이 있을까요? 정말 영어 때문에 취업에 실패하고 계신 건가요?


자기소개서를 봐 달라는 친구, 후배(가끔은 선배)들의 글을 읽어보면 끝까지 읽고 싶지 않은 글을 써서 부탁하는 친구들이 많습니다. 글의 내용이 정돈되어있지 않고, 호기심도 생기지 않는 데다가 문법도 틀리고 심지어 맞춤법도 엉망인 자기소개서를 그대로 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린아이들은 아직 우리말과 글, 문법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완성되지 않은 시기이기 때문에 읽고 쓰고 말하면서 익혀야 합니다. 다양한 책을 읽는 과정에서 배경지식은 증가하게 되고, 작문 연습 과정에서도 논리적으로 사고하는 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말하는 과정에서는 자신감과, 말하는 자체의 요령도 배우게 되지요. 당연히 우리말의 뜻을 알아야 외국어로도 무슨 뜻인지 이미지가 구체화될 수 있습니다. 우리말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다른 언어에 대한 더 빠르고 정확한 학습도 가능한 것입니다. 


성인들도 예외는 아닙니다. 회사에서 작성하는 각종 문서와 보고서, 제안서들은 외국계 회사가 아니고서야 우리말로 쓰이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회사에 들어와서 직급이 높다고 모두 다 올바른 국어생활을 하고 계시지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솔직히 어디에 제출하기 부끄러울 정도로 잘못된 문장을 쓰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간결한 프레젠테이션이나 발표의 자리에서 적재적소에 알맞은 단어를 쓰시며 유창하게 말씀하시는 분들보다는

쓰여 있는 자료를 보고 읽는데 급급하실 만큼 말하는데 자신 없는 분들을 많이 봅니다.


#7.

날로 경쟁이 치열한 사회에서 분명히 영어, 제2외국어 모두 중요합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 가장 중요한 근본을 잊고 가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지금 우리말, 우리 글을 공부하자고 쓰고 있는 저 조차 틀린 문장, 잘못 쓴 단어, 고르지 못한 문단 구성까지 부족함이 많아 부끄럽고 조심스럽습니다. 다만, 하루하루 같이 노력해 가야 할 것 같아 조심스럽게 적어봅니다. 시험 보듯 공부해야 한다고, 한국어 시험도 봐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시험공부가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공부일 수도 있겠지만, 한글과 한국어는 평생 써야 할 우리의 글과 말입니다. 읽고, 쓰고, 모르는 단어를 찾아보고, 말하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시험 점수를 취득하기 위한 일회성 공부가 아니라 평생을 노력하고 다듬으며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기본이 혁신"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기본은 우리말과 글에서 출발합니다.


근본 없는 배움은 더디고 위태롭습니다.

영어만 하면 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시길 바랍니다.

영어 때문에 안되었다는 생각을 빨리 깨 버리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소중한 말과 글을 바로쓰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저부터 더 노력하겠습니다.






오래 가지고 있던 블로그를 접으며, 그 안에 있는 글들을 따로 저장하고 분류하면서 오랜만에 내가 쓴 글을 읽었다. 분명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 어리고, 경험도 적고, 덜 다듬어졌을 텐데... 우리말에 대해 생각하고 글을 쓰면서 심지어 화가 나 있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하는 이 글을 읽으니, 지금의 나는 어린 시절의 내 모습에 스스로 비추어 보았을 때 부끄러울 만큼 독서량도 적어지고 통찰의 주제와 범위도 굉장히 좁아진 게 아닌가 싶다. 스스로 노력하겠다고 했던 그 마음 그대로, 노력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그리고, 이 글이 누군가의 다짐에 동기부여가 되어주길 바란다. 아주 조금이라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