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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보배 Jun 17. 2019

마추픽추로 환갑여행을? 가족 남미 여행의 시작.

신혼여행지로 꽁꽁 숨겨두었던 마추픽추를 환갑여행으로 풀었다.

사실, 마추픽추는 나의 꿈의 신혼여행지였다.

"넌 그렇게 여행을 사정없이 다니면, 나중에 신혼여행은 대체 어디로 갈 거야?"

이탈리아, 스페인, 발리, 하와이, 팔라우 기타 등등의 익히 알려진 "신혼여행지"를 모두 휩쓸고 다니는 나에게 종종 사람들이 묻는 질문이다. 하긴 5대양 6대주를 모두 휩쓸겠다는 기세로 돌아다니니 궁금하긴 하겠다만, 올지도 안 올지도 모르는 "신혼여행"을 굳이 따지겠다면 물론 아직 몰디브도, 칸쿤도 남겨두었다. 피지도 숨겨두었고 갈려고 마음만 먹어봐라 어디든 못 찾아내겠는가! 신행이라는데 어디라고 안 즐겁겠는가! 하지만, 나의 꿈의 신혼여행지는 따로 있었다. 바로 "마.추.픽.추" 비행기를 타본 적도 없는 어렸을 때부터 꼭 한 번은 가겠다고, 그리고 나이가 좀 들어서는 여기는 반드시 내 남자의 손을 꼭 잡고 신혼여행으로 가야겠다고 벼르던 곳.


꼭 가고 싶은 곳인데, 이걸 "신혼여행지"로 정하고 났더니, 예상 못한 변수가 나타났는데 바로 나의 "결혼 가능성"이었다. 언제나 모든 글에 열심히 쓰고 있지만, "비혼 주의자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기를 쓰고 꼭 시집을 가겠다는 생각도 없어서, 자연스레 인연이 생기면 가고 아님 말겠다!"라는 생각으로 데면데면 결혼을 대하다 보니, 남들은 쑥쑥 시집 장가 잘도 가더라만(그러고 뭐 또 더러 휙휙 잘도 돌아오기도 하더라만, 흠흠), 내 나이를 대놓고 쓰진 않겠지만 한국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적령기"라 할 나이는 넘어선 것 같은(아직도 아니라고 하고 싶은 겐가) 나이가 되었고, 그러다 보니 이건 뭐 "신혼"이 생기더라도 체력이 후달려서 마추픽추를 못 가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생각을 휙 고쳐먹었다.


"올해는 추석 연휴 즈음으로 남미 갈 거야. 페루. 마추픽추 보러. 난 무조건 갈 거니까 엄마랑 아빠도 갈 거면 빨랑 말해. 늘 하는 얘기지만 나중에 얘기하면 비행기 표 값 엄청 올라!"라고 올해의 가족여행지를 발표했다. 해마다 설날 연휴나 추석 연휴 중 적어도 한 번은 길게 휴가를 만들어서 엄빠 손잡고 여행 가는 것이 일상인 우리 집에서 올해는 어디인가 하고 기다렸을 엄마 아빠도 순간 일동 당황.


"뭐? 어디??" 뭔 추???"

"페루. 마추픽추. 아 왜 티비에 뭐 몇 대 불가사의 해서 가끔 나오잖아. 산 위에 돌 촘촘하게 쌓아가지고~! 그 왜 전에 유희열하고 이적하고 윤상하고 꽃청춘 찍으러 가서 막 빙빙 돌고 하던거~! 거기 간다고"

"아니, 불가사의건 불가사리건간에 거기가 어딘데~!?

"음.. 남미. 미국 밑에 있는 땅덩이.? 비행기 타면 한.... 25~30시간 걸릴걸?

"어이구 야, 난 안 간다 비행기 많이 타는 거 싫어" 예상대로 아빠는 대번에 기권.

"어머~! 난 무조건 가야지~~!" 엄마는 대번에 찬성.

이놈의 집은 뭐 이렇게 여행에 대해선 반전이 없나. 이렇게 결정해도 어차피 가면 제일 호기심 넘치게 신나서 구경하실 분은 아빠인 것도 변함없을 텐데 일단 튕기고 보는 게 아빠의 오랜 매력이다.


"늘 얘기하지만 엄마랑 단둘이는 안가. 특히 여기는 아빠 안 가면 엄마랑 둘이 갈 데는 아니야 여긴. 내가 내 몸 하나는 어떻게 끌고 다녀도 엄마까진 책임 못 지니까,  아빠 가면 엄마랑 같이 가는 거고 아님 나 혼자 가는 거야."

"아우 맞아 경진 아빠~! 그냥 가자 그럴 때 못 이기는 척 따라가야지, 언제 가보겠어~빨리 간다고 그래~! 나도 가야지~! 나 이번에 환갑여행 그걸로 해 그럼~!!!"

응? 환갑여행이요 어머님? 스케일도 남다르게 지금 남미...로 가시겠다고요? 환갑 핑계로 지금 여행을 몇 번을 갔는데요...? 떡 줄 사람 생각 별로 없었...지만 뭐 어차피 가족여행 발표였으니 이런저런 구실을 붙여서 그...래 봅시다 그럼.

"아빠 살아생전에 남미 한 번은 가봐야지 이번에 안 가면 못가~! 더 늙기 전에 가야지~! 그냥 가 이번에~! 나 표 산다!!"

이렇게 또 얼렁뚱땅 우리 아빠는 남미를 여행하도록 결정당했고, 일단 지구에 페루라는 나라가 어디에 있든지 말든지, 비행기를 몇 번을 얼마나 타는지 상관없는 엄마는 이미 신이 나셨다.  

여기요 어머님, 저 여기를 좀 가겠다고요. (제가 찍었지만 다시 봐도 멋지군요)


환갑여행에 으르신 두 분 추가! 효도관광으로 변한 나의 신혼여행지

"호경아 호경아, 우리 가을에 진짜로 남미 간대! 너네도 갈 거야?" 엄마가 호경 이모에게 우리의 여행 소식을 알린다. 자, 일단 호경이가 누구인지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 그래야 이 요상 야릇한 여행단의 구성원이 설명이 되리라. 호경이는 이웃에서 대략 23년간 지낸 이웃집의 첫째 아들의 이름이며, 정확히는 '호경 이모' 혹은 '미자씨'라고 불리는, 친이모보다 더 친한 가족 같은 옆집 아줌마를 부르는 대명사이다. 그러니까 호경이를 부를 때 호경이가 없으면 그것은 호경이의 엄마인, 내가 이모라 부르는 김미자 여사를 부르는 것이다. 내 나이 13살 즈음에 첫 만남을 시작으로 나의 모든 진상짓을 보아왔으며, 지랄 맞은 모든 성격과 간혹 드러나는 쓸데없는 착함을 알고 있는 또 하나의 가족이랄까. 엄마랑 엄청 싸우고 있으면 화해를 시키기 위하여 온갖 노력을 하기도 하고, 싸한 분위기가 연출될 것 같은(예를 들면 화난 나와 욕먹을 예정이 있는 동생이 참석하는 가족 식사) 가족모임에 특별 초대되어 그 살얼음판을 기꺼이 함께 건너 주시기도 하는 분. 천성이 선함이기도 하거니와 우리 엄마 아빠처럼 빈손으로 시작하여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 분이라 엄마는 본인의 젊은 시절이 떠오르기라도 하는 듯 유난히 마음을 쓰곤 한다. (뭐 엄마가 쓰는 마음의 삼십 배 정도 이모가 엄마한테 더 잘하는 게 사실이다.)


내가 터키에서 외노자 생활을 할 때 엄마와 함께 특별 초청되어 초특급 귀빈 대접을 받으며 생전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입문하신 이모는 늦게 배운 도둑질 날 새는 줄 모른다더니 다음 여행은 어디든 따라가겠다고 선언을 했고, 엄마는 당연스럽게 호경 이모에게 연락을 했던 것이다.


'에이, 설마 한 30시간 날아가야 하는 "남미"를 오겠어...?' 하는 나의 예상을 어이없을 정도로 가볍게 깨부수더니 이모와 아저씨 둘 다 동참하시겠다고 발 벗고 나서 여행사의 여행 상품들을 찾고(어마 무시한 가격대를 보고 놀라셨다지), 책까지 사서 읽으시는 열정을 보이셨다. 그렇다. 동유럽 가족여행에 이어, 이번 남미 여행도 또 이렇게 신박한 조합이 알아서 만들어 지고야 말았다. 엄마, 아빠, 옆집 아줌마 아저씨. 그리고 이분들의 길잡이가 될 나. 모두의 나이를 합치면 대략 250살쯤 되는 이 5인 자유 여행단은 이렇게 꾸려지게 되었다.  

제가 남미로 모신...합하면 대충 200살 넘는 으르신들.


남미여행, 최소의 연차로 최대의 여행 시간을!!

국인 노동자였던(과거형입니다, 드디어 한국이에요!) 나의 경우 한 번씩 돌아오는 휴가가 2주쯤 되기 때문에 비교적 넉넉한 시간이 있지만, 한국에서 일하는 아빠, 아저씨, 이모의 경우 너무 긴 휴가를 낼 수는 없었다. 한국에서 페루까지 가려면 적어도 오가는 길에 3-4일 정도의 시간을 써야 했고, 아무리 회사에 배 째라 내공을 지른다 해도 한계는 분명히 있었다. 그래서 최소한의 투자(연차)로 최대한의 효과(여행기간)를 내기 위해 추석 연휴에 휴가를 붙여 가기로 했고, 우리가 생각하는 기간의 앞뒤 시간을 분석해서 Case표를 만들었다. 소요되는 연차와, 실제 여행이 가능한 날의 수, 경유해야 하는 횟수를 정리했고, 연휴 전후임을 감안할 때 출발일을 조정하며 항공료가 가장 저렴한 날짜를 찾았다.

게다가 으르신들을 모시고 여행할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것은 으르신들의 체력이다. 특히 비행기로 장거리를 이동하게 될수록 초반에 이동하면서 에너지 소모가 크기 때문에 모시고 다니는 으르신들의 체력 수준을 잘 생각해야 긴 여행을 조금이나마 더 편하게 다닐 수 있다. 그래서 체력을 다 불사 지르고 내일이 없을 것처럼 놀다 올 것인지, 우리에겐 내일도 있고 출근도 해야 하니 적당히 하고 올 것인지를 고려한 경우의 수도 따로 분리했다.

(이런 표를 만들면서 나도 참 징하다는 생각을 스스로도 여러 번 했다. 주변에서? 그냥 업을 변경하는 게 어떠냐고...) 그리고 최종 선택은 으르신들의 의견을 종합했다. 


"표 보고 제일 맘에 드는 걸로 골라서 알려주세요" 이런 질문을 받았는데 "난 몰라, 니가 알아서 해, 아무거나 니 맘대로"라는 답이 나오면 가족여행이고 뭐고 그냥 다 버리고 혼자 갈 생각이었는데, 또 이럴 땐 의견들을 잘 주시는 걸 보면 촉이 좋으신 분들이다.


남미여행 후 새벽 1시에 집에 와서 담날 7시 출근하면 쓰러질까? 쉼 없이 놀며 불태우자는 계획
하루 덜 보고 하루 더 쉬고 사람답게 출근할까? 으르신들의 체력을 고려한 일정

                                                                                                                                                                           

여러 가지 변수를 고려하여 최종적으로 결정된 여행 계획 초안


미국으로 돌아? 유럽으로 돌아?

한국에서 페루 리마로 가는 가장 빠른(약 25시간) 방법은 애틀란타에서 단 1번 경유하는 방법이었고, 저렴한 방법은 유럽 쪽으로 2번 경유(약 29시간)를 해서 가는 방법이었다. 인당 50만원 정도의 금액차이가 나는데 엄마 아빠 두 분만 오시면 눈 딱 감고 돈 백만원 더 써서 한 번만 갈아타고 편하게 오시라고 하겠지만, 인원이 4명이면 그 돈만 200만원이나 되기 때문에 마음에 부담이 확 생긴다. 물론 인당 비용이고, 내가 모두 내는 돈이 아니지만 이미 이 여행을 준비하는 입장에서는 "우리" 여행비용이라고 인식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휴, 200만원이면 우리가 더 좋은 데서 자고 더 맛있는 거 먹을 수 있는데!" 뭐 이런 생각이랄까.


게다가 내가 터키에서 출발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으르신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우리가 만나기로 결정되는 접선장소까지 오셔야 했다. 우리가 만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였는데, 유럽 어드메에서 만나서 같이 이동하는 방법과, 미국 쪽으로 돌아서 페루 리마 공항까지 알아서 온 다음 만나는 것. 비행기를 타고 환승을 하는 정도야 알아서 하시겠지만서도 불안함은 가시지 않았고, 특히 한창 까다롭게 출입국 심사가 바뀌었다는 미국 공항이 계속 걱정이었다. 혹여나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생각만 해도 아찔한 일이었다.


솔직한 마음의 가장 큰 부분은 '200만원이 아깝다'였으나, "아유~ 그냥 한번 더 내렸다 타는 게 다리도 한번 더 펴고 좋아~! 그리고 그냥 나 만나서 편하게 가는 게 이래저래 맘도 편하지 않겠어?"라고 포장된 나의 유도에 가족들은 모두 넘어가 주셨고, 우리는 유럽 마드리드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리고, 마드리드 공항에서 이산가족 상봉까지 피를 바짝바짝 말리는 에피소드 하나쯤은 당연히 만들어 주셨지)

                                                                  

서울-리마 오는 항공편 일정. 어휴. 으르신들 이걸 다 타셨어요?!!


집으로 가는 길은 아무리 길어도 버틸만하다.



엉덩이가 얼얼할 만큼 비행기를 타야 하는 것이 걱정이었다. 언제 어떻게 누구에게 닥칠지 모른다는 고산병 걱정도 한가득이었다. 그래도 이 여행은 어찌저찌 추억을 잔뜩 남기고 끝이 났고, 나는 이제 이 여행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써 내려가 볼까 한다.

인생에 한 번은 사막을 만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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