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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보배 Oct 23. 2018

인생에 한 번은 엄마 아빠 손잡고 지리산 종주

곧 환갑 아빠와 곧 서른 딸 합작품에, 55세 염여사 지리산을 넘었다.

서른 맞이 이벤트로 지리산 종주를 고른 나란 여자

여자들이 그리도 싱숭생숭해한다는 29살. 30대를 맞이하며 다들 무언가 기념된 것들을 한다거나 산다거나 하는데, 나의 29 가을, 이유도 알 수 없이 그냥 지리산에 꽂혔다. 그냥 지리산이 아니라 이름도 거창한 "지리산 종주". 뭐 가까운 지인 중에 누가 "해보니 좋았다더라", "가보니 멋졌다더라" 얘기를 전한 것도 아니고, 꼭 해보라고 권유를 받은 것도 아니었다. 언제나 여행지를 고를 때 그렇듯, 어쩌다 보니 그냥 훅 꽂혔고, 꽂혔으니 가야겠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서른을 앞둔 마지막 이십 대의 객기라 쳐도 꽤 근사해 보였다.


혼자 여행하던 여성들의 안타까운 사건사고 소식이 간간이 들려오던 때라 혼자 여행을 가는 것 자체를 말리는 사람도 많았는데, 무려 혼자 "지리산행"이라니. 그것도 당일치기도 아니고 1박을 할 요량으로 종주 계획을 짜면서 혼자 간다 하니, 이 겁 없는 아가씨가 정신이 나갔다, 미쳤다 하시며 (뭐 이런 일에 미쳤다까지 하시나 싶지만) 주변에서 모두 뜯어말리기 바빴다. 이 정도의 말림을 당하고 나면 슬금 나도 겁이 나기 마련이지만, 가고 싶은 마음 포기할 길 없고....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게 엄빠 찬스!!(라고 생각하는 딸을 두셨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하핫. 아무나 못 키우는 딸) 휴무를 맞춰 집에 올라가서 저녁을 먹다가 슬금 얘기를 꺼냈다.


"아빠. 지리산 어때?"

일단 시작은 산이라면 금수강산 모든 봉우리를 사랑하시며 백두대간 모든 자락을 밟고 싶어 하시나, 엄마의 동행 거부로 늘 아쉬워하시는 아빠를 공략.

"어우, 지리산 좋지~!! 단풍 들 때 가면 온 골짜기 골짜기 다 멋있지"

"그렇지? 아무래도 올해 단풍놀이는 지리산이 괜찮을 거 같은데, 아빠 어때? 나 갈라고 생각 중인데"

"지리산 간다고? 아, 나는 콜인데, 니네 엄마가 가야 말이지... 경진 엄마! 콜?"

자, 이제 동지를 얻고 손수 난공불락의 요새에 공격 개시를 해주시는 아빠!


"아, 콜은 무슨 콜이야~ 무릎 아프고 힘든데 뭐 지리산까지 가~! 여기서 거기까지 내려 가는 것도 일이구만~ 그냥 집 근처 운악산만 가도 단풍 시뻘겋게, 막 다 불타는 거 같고, 멋지고 좋아! 그냥 거기나 가~ 산에 갈려거든~!!"

"엄마, 광양 와서 하루 자고, 새벽에 일찍 가면 되지 뭘 그래~!! 살면서 지리산 종주 같은 거 한 번은 해야 되지 않겠어? 나 광양에 살 때 와야 잘 데도 있고 숙박비도 안 들고 좋지 "


"뭐?! 지리산 종주!?"


이번엔 엄마 아빠 동시에 토끼눈이다.

"어. 지리산 종주. 이왕 가는 거 이름도 멋지게 종주 한번 해야지~!"

"음... 좋지 지리산 종주.. 하면 좋지... 근데 그거 꽤 힘들 건데.. 괜찮겠어?"

아빠는 그냥 산에 가는 것도 아니고 무려 종주를 하자는 딸이 걱정도 되지만 꽤나 반가운 눈치다.


"아니 뭐 해보는 거지, 안 가봤는데 괜찮을지 어쩔지 어떻게 알아.. 그냥 한 한 달 운동 좀 열심히 하고 몸 만들어서 가는 거지 뭐. 아 엄마도 아빠랑 뭐 젊었을 때 산 잘 다니고, 설악산 대청봉도 막 넘고 했다며~!!"

"야, 그거야 벌써 몇십 년 전 얘긴데~!! 지리산을 내가 이 나이에 어떻게 가~!! 난 안가" (엄마 단호)

"지리산이나 설악산이나 그게 그거지 뭐. 산 가보니 산에 온 사람 다 엄마 나이 드만 뭘 나이 타령이야~!! 염여사 나이에 그만한 체력 되는 사람도 없겠구만. 수영장에서 맨날 펄펄 날아다니면서~?!"

"경진 엄마, 지리산 갈만해~ 설악산보다 훨씬 쉬워~ 그냥 쭉 따라 걸으면 되고, 당신 정도면 뭐 산도 아니야~ 말만 지리산 종주 어쩌는 거지 별것도 없어~"

평소 자신의 운동실력에 남다른 자신감을 보이시는 엄마의 운동 부심을 팍팍 세워주고, 아빠의 거짓말(이것은 분명 거짓말. 지리산이 별거 없을 리가)을 살짝 보태고 나니 엄마는 살짝 흔들리는 눈치다.  


"하긴, 내가 또 한 번 올라가면 다른 사람한테 안 잡히고 잘 올라가지. 내가 다른 건 몰라도 산은 진짜 잘 올라 다녔는데~!! 야야, 내가 연애할 땐 니 아빠랑 설악산 여기저기 다 다녔잖니~!"

"어휴~ 그럼 지리산 가야지~!! 가야지 가야지! 엄마 살면서 '나 지리산 종주했잖아'하는 자랑 하려면 지금 가야지 더 늙으면 가지도 못해 가고 싶어도~!"

"경진 아빠, 진짜 지리산이 설악산보다 쉬워?"(엄마 흔들)

왔다. 거의 다 넘어왔다. 느낌 왔다.

"아 진짜 산도 아니라니까~! '악'자 들어가는 설악산도 종주했으면서 뭘 지리산에 겁내~! 진짜 쉬워~!"(아빠 거짓말 쐐기! 빡!)

"아휴.. 그래도 산 1박 2일 하는 거 자신 없어~!! 니아 빠랑 둘이 가 갈 거면~!!" (엄마 다시 단호)

넘어온 줄 알았더니 이런 식이면, 나도 어쩔 수 없다. 이제 협박으로 방향 전환.

"내가 홀아비 자식이야? 엄마가 없어? 왜 아빠랑만 가래? 갈라면 같이 가야지~? 엄마 아빠랑 다 같이 가야 의미가 있지~!! 다른 여행은 혼자라도 간다고선 잘만 따라오면서 왜 산엔 아빠한테만 가래? 완전 이기적이네? 엄마 안 오면 아빠도 오지 마. 아빠 안 와도 난 혼자 갈 거야"


결론은? 당연히 딸 승. 우리는 한 달 뒤, 지리산으로 간다. 한 달 동안 나는 러닝머신 위를 매일 한 시간씩, 엄마는 수영장의 물살을 더 열심히 갈랐다.


 

야근에 치여 뭐 치밀하게 준비할 것도 없이 달력 펴고 날짜는 휴무 주인 10월 26~27일로 결정. 뉴스에서 말해주는 단풍 절정시기가 1주일이나 지나서 조금 망설였지만, 뭐 단풍 좀 덜 보더라도 핵심은 "지리산 종주"니까. From 노고단 To 중산리.!! 25.5km에 이르는 대장정을 겁도 없이 결정해 버렸다. 2박 3일이 권해진 코스였지만 산에서 고생 고생하며 2박을 하느니, 그냥 가볍게 1박 2일에 끝내기로 했다. 하루 정도는 캠핑하는 마음으로 안 씻고 덜 씻고 잘 수 있지만, 아무리 나라도 2박은 못하겠다 싶었다. 게다가 기간이 늘면 짐도 늘기 마련인데, 늘어난 짐이 결코 우리의 산행에 도움이 될 리가 없기 때문에 짧고 굵게 끝내기로 결정.


지도로 산길 25km의 난이도를 가늠할 수 있었다면, 아마 가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지리산에서 1박을 할 수 있는 대피소는 해당 날짜의 15일 전부터 예약을 시작한다. 국립공원 홈페이지에서 예약이 가능한데, 예약이 순식간에 끝나기 때문에 나름 초조한 마음으로 예매 전쟁에 뛰어들어서 성공을 이루어 냈다. 종주 거리를 딱 반으로 나눠서 벽소령에서 1박을 할까 했는데, 산에 많이 다니신 부장님께서 2일째는 힘들어서 더 못 걸을 테니 첫째 날 최대한 많이 가두는 게 좋다고 팁을 주셔서 세석 대피소에 예약을 했다. 어딜 가더라도 우리 노숙은 면해야지. 비박 이런 건 언감생심 꿈에도 생각 말아야지.




드디어 비장함이 감도는 25일. 엄마 아빠가 광양으로 내려오셨고, 짐을 싸기 시작했다. 1박 2일의 산행에 먹을 식사는 총 4끼. 햇반 12개와 반찬삼아 먹을 3분 요리는 8개를 챙겼다. 짐을 최소화하자니 끼니도 최소화가 돼야 했다. 간식으로 먹을 오이도 사고, 바나나도 사고, 초코바도 사고, 코펠용 가스, 헤드랜턴 같은 것을 아빠 배낭에 챙겼다. 짐 무거워지면 힘들어서 못쓴다고 카메라도 강제 반납당하고, 때맞춰 전해진 전국 비 소식에 우비를 챙겨 넣었다. 보통 안 맞는 게 정상인 일기예보 때문에 내 카메라도 두고 이 우비를 꼭 챙겨야 하는가 입이 댓 발 나왔으나, 산 앞에서는 아빠가 고수이니 그 말을 들을 수밖에.


싸고보니 가방에 햇반이 반이다.


광양에서 출발하면 노고단까지는 1시간 정도 걸리는데 교통편이 참 애매했다. 아빠 차를 가져가자니 노고단에서 출발해서 산 반대편인 중산리로 내려올 텐데, 내려와서 다시 차를 다시 가지러 갈 수도 없어 고민이었다. 그러나, 세상 사람 필요한 건 이미 다 돈벌이로 나와 있다더니 노고단에서 대리운전기사들이 차키를 맡기고 가면 시간을 정해서 중산리로 다시 갖다 준다는 정보를 찾았다. 하긴 우리나라에 산타는 분들이 한두 명이 아닐 테니까. 하지만 생판 남에게 차를 키 채로 맡기자니 좀 께름칙하고, 게다가 아빠도 새벽일찍부터 일어나 운전하고 산까지 타려면 더 힘드실 것 같고, 이래저래 기름 값을 생각하니 그냥 택시로 올라가는 게 낫다 싶었다. 광양에서 콜택시에 문의했더니 6만 5천 원에 성삼재 주차장까지만 가준다 했다. 우리 계획에서 2km 정도는 더 걸어야 하는 사태가 생긴 것! 딱히 다른 방법이 없으니 새벽 5시로 예약을 했다.



이때만 해도 엄마 표정에 여유가 있었다.
노고단, 뭔가 벅차고 두근대던 아침
출발은 산뜻했다.

새벽 6시 성삼재 도착!! 6시 10분부터 지리산 종주를 시작했다. 그리고 아침 7시 10분! 한시간만에 굿모닝 노고단을 외치며 아침으로 가볍게 바나나를 하나씩 먹었다. 뭔가 굉장한 일을 시작하는 기분으로 몹시 설렌달까, 뿌듯하달까, 긍정적인 시작이었다. 노고단에서 노루목까지도 빠른 속도로 도착해서 바나나랑 빵으로 보충 식사를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 정도면 할만하다고 생각하면서 꽤 괜찮은 속도로 이동을 했다. 전북, 경남, 전남이 바라보인다는 삼도봉에서 조금 더 가니 예전에 장터였다는 화개재도 나온다. 소금, 생선을 산나물이랑 바꿔먹는 장터였다는데.... 장 한번 보러 가다가 숨이 넘어가든 호랑이가 물어가든 하겠네 싶었더니, 이게 웬일. 중간중간 "곰 출현 주의" 현수막이 나타나 한 번씩 웃음보를 터지게 했다. 곰 출현 주의라니. 심지어 "가까운 곳에서 활동"하고 계신다니. 저걸 내가 무슨 수로 조심해야 할까. 산에 오질 말았어야 하는가, 산에 곰을 풀지 말았어야 하는가. 그래도 은근 곰 한번 만나고 싶다 생각이 드는 걸 보면 사람이 참 당하기 전까지는 늘 이렇게 위험을 모른다.


삼도봉. 전북, 경남, 전남이 한번에 보이는게 그렇게 의미있는 일일까 생각했다.그저 한나라인데.
사실, 어떻게 주의해야 할까 애매한 표지판. 활동하시는 곰을 무슨수로 조심한단 말인가. 그나저나 너무 사납게 그려서 보는 곰 서운할듯.


이것이 현실.
지리산 종주라니! 말렸어야지!!

어찌어찌 벽소령까지는 왔는데, 드디어 체력이 슬슬 바닥을 드러냈다. 산 한 곳에 올랐다 내려와도 힘든데, 지리산 "종주"라는 이름답게 봉우리도 여러 개 넘어야 한다. 문제는 일단 시작하면 중간에 어찌어찌 빠지기도 애매하게 되어 그렇게 열심히 체력을 다 받쳐 벽소령쯤 오면 이건 뭐 돌아가자니 온만큼 다시 걸어야 하니 그건 못할 짓이고, 계속 가자니 몸이 너무 힘든 진퇴양난의 상황과 만나게 된다. 겨우 한 달 러닝머신 위를 달렸다 한들, 자주 하지 않던 산행을 하는 게 쉬울 리 없는 나도 걱정이고, 평소 관절염이 있는 데다가 여기저기 쑤시는 데가 많은 엄마도 걱정이고, 이런 두 여자의 짐을 다 짊어지게 된 아빠도 슬 걱정이다. 이 사태의 빌미를 제공한 나는 이 악물고 걸어야 하고, 엄마는 비장한 표정으로 더 처지면 못 가니까 자기는 알아서 먼저 가겠다며 앞에 가던 등반객에 붙어 날다람쥐의 속도로 앞서 가시기 시작했다. (훗날 들은 이야기지만, 전혀 원치 않게 엄마의 길잡이가 되었던 그 중년의 커플은 아마도 불륜 커플이었을 것이란다. 둘이 속닥속닥 나누는 이야기나 상황이 묘하게 아침드라마스러워 그나마 힘든 산행에 나름의 에너지원이 되었단다. 더 듣고 싶으면 뒤처지지 말고 따라가야 했으니까. 그 커플 입장에서야 이런 엄마가 얼마나 불편했겠냐마는...)


벽소령에서 세석사이의 6.3km. 인내심의 바닥을 박박 긁어내던 고난길이었다.

벽소령에서 2시 반에 세석으로 출발. 그동안 지나온 구간은 노루목, 삼도봉, 화개재, 토끼봉, 연하천 대피소, 형재봉, 벽소령... 이렇게 중간중간 작은 목표가 될 만한 지표들이 있었는데, 이제 세석까지는 그냥 6.3km를 내동 가야 한다. 오르고, 내리고, 오르고, 내리고. 500m 단위로 있는 표지판이 어찌나 멀어 보이는지 '내가 어쩌자고 이런 고생을 하자고 했는가' 스스로를 원망했다가, '아니 아빠는 이럴 줄 뻔히 알았을 거면서 말렸어야지 또 어쩌자고 냉큼 콜을 외치셨나' 애꿎은 아빠 원망도 한번. '이겨내겠어!! 나는 지지 않아!!'하는 쓸데없이 비장한 다짐도 했다가, 정말 분 단위로 변화하는 인간의 심경변화를 고스란히 느끼면서 나중엔 다리가 걸어가고 있는 건지 그냥 몸이 다리를 끌고 가는 건지 알 수 없는 상태로 움직였다. 혹시 중간에 내려가는 길 안 나오나 기웃기웃 대기도 했지만 이미 여기까지 온 이 상황에선 가는 것 말고 방법이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로 시작하는 구전 동요에 한 발 한 발 박자를 맞추어 걷다가, "산골짝에 다람쥐~" 동요에다가도 박자를 맞춰보고. (등산 초보자들은 나중에 산 탈 때 한 번씩 해보시길. 나름 생각 없이 걸을 때 도움이 된다) 결국 해가 넘어가서 한 손에는 랜턴을 들고 겨우 세석 대피소에 도착했다. 앞서 가시며 '안녕하세요~' 하고 산인사를 나누시던 분들이 모두 도착해 계셨는데, 세석대피소 문 닫고 들어온 그날의 마지막 초보 등산객인 나와 나를 데리고 오신 아빠에게 모두들 박수를 쳐주셨더랬다. 생판 모르는 남들이 박수로 맞아줄 정도이니, 내 꼴이나 어정쩡한 걷는 폼이 어땠을지는 안 봐도 짐작이 될 것이다. 저녁 6시 30분. 거의 12시간 동안 23.1km를 걸었다. 평지도 20km는커녕 10km도 걸을 일이 없는데 그 험한 산을 어쨌거나 걸어 낸 것이다.




지리산 대피소에서 열리는 최고의 만찬

산에 올라올 때 지나가는 사람들과 "안녕하세요~", "수고하세요~" 이런 인사를 나누며 올라갔는데 (무척 아저씨 같다고 생각했지만, 이젠 등산 갈 때마다 모르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매우 잘한다.) 꽤 많은 아저씨들이 자기 키 반만 한 엄청 크고 길쭉한 배낭들을 짊어지고 오셨다. 나는 햇반 몇 개 들어있는 배낭 하나 달랑 매고 왔지만, 걷다 보니 힘이 들어 밥이고 뭐고 다 버려버리고 싶게 힘든데, 저분들은 어떻게 저걸 매고 여길 오르나 싶었다. 게다가 뭔 히말라야 등산을 가도 저만큼은 안 가져갈 거 같은데 대체 뭘 저렇게 매고 나오셨나 했는데..... 세석 대피소에 도착하고 보니 거기에 바로 답이 있었다. 대피소 앞마당 식사 공간에는 이미 먼저 도착하신 등산객들이 차리고 있는 저녁상이 테이블마다 한상 가득이었다. 삼겹살 굽고, 치킨 훈제, 오리 훈제, 부대찌개, 어묵탕, 라면, 난리도 아니다. 소주에 막걸리에 여기저기 술잔도 오가고 디저트라며 배즙에 양파즙에 여기가 과연 지리산 한가운데가 맞나 싶을 정도였다. 내 몸 하나도 끌고 여기까지 오기도 힘든데, 이분들은 아이스박스에 고기를 채우고, 온갖 양념에 식재료를 짊어지고 여기까지 올라오신 것이다.


같은 테이블을 쓰는 옆자리 아저씨가 여기까지 오느라고 수고했다며 도착하자마자 삼겹살 쌈을 입에 넣어주신다. 진짜 태어나서 먹은 삼겹살 중에 제일 맛있는 삼겹살!! 자기 딸은 산에 좀 같이 가자 하면 들은 척도 안 하는데 딸이랑 엄마 아빠가 나란히 지리산까지 오다니 부럽고 샘난다고, 나더러는 착하다고 연신 먹을 것들을 나누어 주신다. 아... 이게 산 인심이구나. 햇반에 3분 요리, 김치에 참치캔이 전부인 우리 가족의 저녁식사는 졸지에 이웃에서 나누어주신 고기며 김치며 라면에, 디저트로 배즙까지! 감사히 받았는 데 있는 거라곤 넉살뿐이고, 드릴수 있는 거라곤 덕담뿐이라, 이 댁 할머니는 만수무강 백세 장수하시길, 저 댁 첫째 딸은 바로 취업되길 빌어드렸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천왕봉 오르는 날 비가 철철

대피소에서 담요를 빌리고 몽골에서 익힌 생수로 이 닦기 + 물티슈로 세수하기 신공을 발휘한 뒤 취침인지 기절인지 쓰러졌는데 빗소리와 바람소리에 잠이 깬 시간은 새벽 4시. 이때부터 부스럭 부스럭 옆 사람들이 짐을 챙긴다. 어차피 비오니 천왕봉에서 일출도 안보이겠고, 어제 너무 무리하신 엄마를 생각하며 6시까지 자기로 했기 때문에 누워서 이리저리 뒤척였다. 여기까지 왔는데 천왕봉 일출도 못 보다니. 천왕봉 일출은 3대가 덕을 쌓아야 본다는데, 일출을 보기는커녕 이리 비가 쏟아지는 걸 보면 대체 우리 조상님들은 무얼 하신 겐가 하며, 괜히 또 조상님 흉도 슬쩍 보고. 그렇다고 안 갈 수 없으니 일어나 아침을 챙겨 먹고 우비를 챙겨 입었다. 그리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엄마랑 "진통제"를 하나씩 챙겨 먹었다.


그래도 하룻밤 쉬었다고 비옷으로 타닥타닥 떨어지는 빗물이 좋았다. 이렇게 비를 맞아본 게 얼마만인지,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랄까? 쓸데없는 동심으로 좋아한 것도 잠시, 이제 다시 현실이다. 하루를 심하게 걷고 뭉친 다리는 묵직하고, 비까지 오니 미끄러워 지지 않으려서 발에 힘이 더 들어가고, 그러니 조금 더 더디고 무겁다. 게다가 비바람에 신발은 젖어서 물이 저벅저벅. 한걸음 디딜 때마다 물이 쭈욱 쭈욱 나왔다 들어가는 그 느낌이라니. 그러나 그런 걸 싫고 좋고를 따지기도 전에 내리치는 빗물에 추워서 흐르는 콧물에 얼굴이 난리가 났다. 그렇다고 여기까지 와서, 날씨 탓을 하느라고 1.7km 앞에 둔 천왕봉을 포기할 수는 없으니 기어오르기 시작. 미끄러운 바위산을 기어오르다 보니 이미 손은 앞발 인양 쓰고 있다.


날이 맑았어도 힘들었을 텐데 비까지 철철 와 버리니, 엄마의 짜증은 이미 "짜증"의 수준을 지났다. "내가 안 온다고~~! 안 온다고 했는데 꼭 끌고 오더니 이게 뭐야. 설악산보다 쉽다더니 쉽기는 개뿔 어디가 쉬어 어디가!"라며 이제 걸음걸음 타박과 잔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우리보다 먼저 올라갔다가 내려오시는 분들이 바람이 어마어마하다고 겁을 주시기도 하고, 고도 때문에 비가 진눈깨비로 날린다는 소식을 주시기도 하는데, 걸음걸음 엄마한테 혼나가며 이게 여행인가 고행인가 그렇게 천왕봉을 향했다. '내가 내무덤을 팠지, 욕이 먹고 싶으면 곱게나 적당히 장난을 치지 내가 어쩌자고 이걸 하자고 했더가, 말이 좋아 지리산 종주지 이러다 사람 잡으면 어쩌나' 싶은 반성과 '이제 내려가면 엄마한테 등 싸대기 몇 대는 입 꾹 다물고 맞아줘야지' 하는 비장한 다짐으로 묵묵히 입 다물고 궂은 날씨를 헤치며 걷다 보니 드디어 천왕봉 비석까지 도착하고야 말았다.



엄마가 쓰러졌을까 봐

천왕봉을 찍고 중산리로 내려오면서, 앞으로 지리산에 올 일이 생겨도 절대 중산리 쪽에서 천왕봉엔 오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오로지 돌계단 + 계단. 끝도 없는 오르막. 그리고 또 계단. 정말 뭐 산을 오르내리는 재미도 없고 말 그대로 고행길이다. 내리막 계단을 계속 내려오자니 드디어 무릎이 삐그덕 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이 정도이니, 평소에 무릎이 썩 좋지 않은 엄마는 어땠겠는가. 어째 속도가 처지나 싶어 돌아보니, 이미 정면으로 걷는 직립보행으로는 계단을 내려오지 못해서 엄마는 아빠랑 마주 보며(뒤돌아서) 아빠 손을 꼭 잡고 거꾸로 내려오고 계셨다. 그리고 진통제도 한알 더 드셨다. 내가 엄마한테 너무 무리한 요구를 했구나 싶어서 정말 미안하고 걱정되는 마음이었는데, 거꾸로 천천히 내려오니 당연히 엄마 아빠의 속도가 나보다 늦을 수밖에. 나 먼저 천천히 내려가는데도 한참 가다 뒤돌아보면 저 멀리서 보이고, 또 조금 가다가 안 보이면 불안하고 걱정되고... 그러던 차에 119 구급대원들이 들것을 들고 후다닥 뛰어올라가시는데, 정말 엄마가 쓰러진 줄 알고 가슴이 철렁했다. 다행히 엄마가 쓰러진 건 아니지만, 다시는 이렇게 산행으로 엄마를 힘들게 하지 않겠다고 다짐 또 다짐.

비가 철철 오는 하산길, 엄마는 힘들고 딸은 어쨌거나 천왕봉을 보고 신이 났다.


핸드폰엔 물이 잔뜩 들어가서 돌아와 드라이기로 말려야 했다.


내려오는 길에 만난 풍경들. 사실 더 멋졌는데 아쉽다.



산에서 인생을 배운다.

그렇게 일주일 같은 1박 2일 산행으로 지리산 종주를 끝내고 집에 와서 뜨신물로 씻고 바로 드러누우니 세상 내 집만큼 편한 데가 또 있는가 감사한 마음이 절로 들었다. 그래도 천왕봉엘 찍고 온 사진을 보면서 "결국 우리 지리산 종주했잖아~!!!" 하는 성취감에 그동안의 고생은 생각도 나지 않고 그저 벅차고 기쁘기만 했다. 기상이 너무 악화되어서 5분도 못 서있고 내려서야 했고, 멋진 경치도 볼 수 없었지만. 결국 목표한 곳에 포기 없이 왔다는 사실에 뿌듯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부터 던가, 마음이 산란하고 머리가 복잡하면 아빠랑 가까운 산에 올랐다. 혹은 회사 직원분들을 따라나서 부러 산엘 찾아가기도 했다.(보통 부장님들은 산을 엄청 좋아하신다. 가고 싶을 땐 결심만 하면 언제든 갈 수 있다.) 복잡한 머리로 산을 오르기 시작해도, 심장이 터질 것 같이 힘들게 오르다 보면 복잡한 마음은 어느새 잊게 되는 게 좋았다. 산을 걷고 또 걷다가 이제 더 이상은 못 가겠다 싶어 포기하고 싶어 질 만큼 힘든 순간에 뒤를 돌아보면 그동안에 오른 길이 멋지고, 또 잠시 숨을 고르고 나면 여기까지 오른 것이 아까워 중간에 포기하고 내려가는 대신 다시 한번 앞으로 향하게 하는 것이 좋았다. 그리고 목표로 정한 산 정상에 오르고 나서의 그 성취감이 좋았다. 어쩌면 사람 사는 인생이 이렇게 큰 산을 한번 오르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닌가 하는 깨달음을 얻은 것도, 마음이 아주 산란했던 20대의 어느 날 산에 올랐을 때였다.


인생에도 열심히 올라야 하는 순간이 있고, 숨을 고르고 쉬어야 하는 순간이 있고, 또 가다가 주변을 둘러보면 정말 아름다운 풍경이 있는데 길만 보고 걸었구나 반성하고 돌아봐야 하는 순간이 있다. 어느 순간엔 성취감을 느낄 것이고, 또 내려오면서는 오르면서 보지 못한 풍경을 보며 조금 더 여유 있는 마음으로 즐기게 되기도 하겠지. 산을 힘들게 오르다 보면 또 조금 쉬운 길이 나오고, 또 쉽다 마음 놓으면 다시 오르막이 나오던 것처럼, 결국 세상살이, 인생살이도 이것과 비슷하지 않겠는가.


생판 처음 보는 사람들끼리 서로를 응원하고 격려하고, 인사를, 음식을, 덕담을 나누니 없던 기운도 조금 더 생기기도 했다. 이런 것처럼 인생도 뭐 있겠는가. 가족의 사랑과 지지, 이웃의 덕담과 응원으로 우리가 사는 세상도 산을 넘듯 함께 가면 어떻게든 모두 같이 가게 되는 것 아닐까.


소중한 동행

1박 2일 지리산 종주라는 힘든 길, 결국 엄마는 나와 함께 가길 선택해 주셨다. 본인에게도 힘들고 어려운 도전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겠지만, 천방지축 둘째 딸이 "여기는 꼭 가고 싶다고, 그래서 나는 어떻게든 가야겠다"라고 했을 때 결국 함께 가겠다고 선택하셨다. 혼자 너무 뒤처지면 기운이 빠져서 갈 수 없다고 뒤에서 재촉해주시고 기다려 주시다가, 정말인지 이제는 도저히 못 가겠다고 했을 때는 앞에서 손을 잡아끌어주시던 아빠 덕분에 지리산 종주길에서 무사히 힘든 고비고비를 넘었다.


이런 나의 엄마와 아빠는 1박 2일의 등산길뿐만 아니라 나의 모든 인생길에서 나를 온전히 지지해주시는 분들이다. 나를 낳겠다 선택하는 순간부터 그러했고, 여전히 지금까지 나의 모든 순간을 지지해주고 응원해주고, 넘어져도 괜찮다고 우리가 있으니 걱정 말라고 뒤에서 든든히 받쳐주시는 분들이다. 이런 나의 부모님의 손을 잡고 어디든 갈 수 있는 것, 이렇게 크고 험한 산을 넘을 수 있는 것, 재미있는 것을 해 볼 수 있는 것, 처음의 순간들을 맞이하는 것, 그런 시간이 우리에게 얼마나 더 남았는가 싶어 그 모든 순간이 정말 소중하다. 언젠가 나에게도 나의 남편, 나의 아이들이 생겼을 때 내가 나의 엄마 아빠가 그렇게 해주셨던 것처럼 순수한 동행을 하겠다고 다짐한다. 내가 받은 온전한 사랑을 아낌없이 주는 사람이 되어야지.


이렇게 우리는 지리산 종주라는 이벤트를 우리의 추억 한 페이지에 남겼다. 그리고 아직도 조금 험산 등산을 할 때면 뻥을 서말쯤 보태서 엄청 스펙터클한 이야기로 만들어서 여지없이 꺼내어 보곤 한다. 그래, 그때 우리가 지리산 종주를 안 했으면 어쩔 뻔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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