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은밀하고, 강렬한 욕망의 카피라이팅 이야기
(8) 성욕과 중의성
원초적인 욕망이란 무엇일까? 원초적인 욕망이란 다시 말해 강렬한 에너지를 지닌 욕망이다. 앞서 다룬 두 개의 글에서는 욕망을 3가지 기준에 따라 분류한 바 있다. 메슬로우(Meslow)가 정의한 욕망의 5단계, 그 이후의 학자들이 정의한 욕망의 9단계, 그리고 전설적인 카피라이터 존 케이플즈가 정의한 욕망의 키워드 10가지까지. 그 모든 분류에서 단 한 번도 빠지지 않으면서, 인간의 삶에서 결코 떼놓을 수 없는 욕구가 하나 있다. 흔히 우리는 “인간의 3대 욕망”을 이렇게 정의하지 않는가. 식욕, 수면욕, 그리고 성욕. 그렇다. “금욕”이라는 말을 들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욕망이기도 한 이것, 바로 "성욕"이야말로 원초적이면서고 가장 강렬한 힘을 가진 욕망이다.
["욕망"이라는 키워드에는 늘 성욕이 빠지지 않는다. 성욕이야말로 가장 강렬한 욕망 중 하나다.]
물론 이러한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래서 어쩌라고?’ 성욕이 제일 강하니까 뭘 어쩌라는 말인가, 카피라이터가 성생활과 관련된 물건의 광고 문구를 의뢰받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 왜냐하면, 그런 물건일수록 직설적인 표현을 쓰는 편이 좋기 때문이다. 직설적인 표현만 쓰면 되는데 굳이 돈까지 주어가며, 또는 시간을 투자해가며 좋은 광고 문구를 써야 할 이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꼭 문장이 한 가지 뜻만 가지고 있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조금 더 자세히 말해서, 중의적인 문장을 쓰면 어떨까? 성적 욕망에는 노골적인 것도 있지만, 암시에 의한 은밀한 재미도 얼마든지 존재하는 법이다.
예를 들어 생각해보자. 혹시 이러한 카피를 본 적이 있는가? “커지고 세지고 대우 봉세탁기 구석구석 빨아줘요(대우 봉세탁기)”, “줘도 못 먹나 (롯데삼강 더블 비안코)” 따위의 문구들 말이다. 이러한 문구들이야말로 중의성을 이용한 문장들이다. 우선 대우 봉세탁기의 경우에는 말할 것도 없이 “봉”이라는 단어의 어감과 “커지고 세지고”, “구석구석 빨아줘요”는 유사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물건이 아닌가. 재미있는 건, 이런 문장이 그냥 단순히 제품의 성능을 나열하는 것보다 더 많은 시선을 받는다는 점이다. 인간이 기본적으로 야한 것에 흥미진진하기 때문인데, 이를 이용한 문장들은 깨닫지 못해도 우리들의 흥미를 조금 더 높여준다.
이러한 중의성을 가진 문장을 만들어내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중의성을 가진 단어들을 활용하고, 약간의 재치만 더하면 된다. 성적인 의미를 지닌 중의적인 어휘들은 “먹다, 하다, 빨다, 넣다, 크다, 세다” 등이 있는데, 이를 이용한 문장들은 암시적으로 주목의 효과를 가지게 된다. “언젠간 먹고 말거야 (치토스)”, “벗겨도 벗겨도 변함없고 먹어도 먹어도 깊은 그 맛 (농심 양파링)” 같은 문장들이 대표적이다. 특히 “먹다”라는 단어는 옛날부터 성욕을 암시하곤 했는데, 이는 성욕에 자극받는 뇌의 부분과 식욕에 자극받는 뇌의 부분이 인접해있기 때문이라는 진위 불명의 가설이 있을 만큼 잘 알려진 이야기다.
["먹다"라는 단어는 예로부터 성적인 것과 연관된 단어로 쓰여왔다. 중의성을 담은 단어 중 하나다.]
그러나 주의해야 할 점은, 이러한 암시가 지나치게 노골적이거나 천박한 식으로 표현되면 오히려 거부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이다. 또, 특정한 상황에서는 성적 농담을 넘어서 불쾌함을 느낄 만한 수준으로 보일 수 있기에 주의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모 통신사에서 여성 모델이 등장하는 광고에 “일주일만 만져봐” 같은 문구를 삽입해서 논란이 된 적이 있는데, 이러한 문구를 삽입할 때는 상황과 내용을 조심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조심할 부분도 많고, 신중해야 할 문제이지만, 아직도 많은 광고가 이러한 기법을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그게 우리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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