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의 보물, 호도섬 1박2일 여행기
무인도에 짱박혀서 글을 쓰고 싶었다.
모든 글쓰는 이들의 로망이 그러하듯이, 나는 섬을 찾았다.
섬의 이름은 ‘호도’. 호두과자가 아니라 여우 호자에 섬 도자이다.
요트 면허를 따러갔다가 우연히 알게 된 여우를 닮은 섬. 전날 대천해수욕장에서 하룻밤을 자고, 아침 7시 배로 호도섬에 들어갔다. 참고로 성수기 때는 하루에 3번 운행하고, 비수기 때는 2번, 겨울에는 1번 운행한다.
대천항에서 50분정도 배를 타고 가면 호도섬도 도착한다. 배에서 내리면 정겨운 리어카들이 나를 맞아준다. 미리 예약했던 ‘호도와 추억여행’ 리어카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호도섬은 길이 좁아서 차가 다니지 못한다. 당연히 차를 가지고 들어가지도 못한다. 주요 교통수단은 리어카, 자전거, 스쿠터, 4륜오토바이다.
그냥 자전거 두 대 나란히 세웠을 뿐인데 왜 이렇게 그림같지?
인터넷에서 민박집 음식이 맛있다는 소문을 듣고 당일 아침, 점심, 저녁과 다음날 아침까지 풀코스로 식사를 예약했다. 명불허전. 가자미 튀김에 바지락국, 전, 간장새우, 골뱅이무침 등등 이 모든 것이 단돈 7천원. 비싼 해물은 넘쳐나는데 섬이라 그런지 육고기(?)를 보기가 힘들다.
아침을 먹고 섬을 한바퀴 둘어보았다. 전체 면적이 1.3제곱킬로미터에 전체 60가구밖에 안되는 정말 작은 섬이다. 스쿠터 타고 20분이면 섬을 구석구석 다 돌아볼 수 있다. 섬사람들은 대개 양식과 어업, 민박으로 생계를 유지한다. 사실상 섬 전체 가구가 민박을 한다고 볼 수 있다. 각 집 마다 텃밭을 가꾸고 있어서 굳이 쌈야채를 사갈 필요는 없다. 1960~70년대를 보는 듯한 정겨운 풍경이다. 새마을 운동이 한창일 것 같다.
민박 집에서 거짓말 안 보태고 2분만 걸어나가면 바닷가에 도착한다. 길이 끝나고 구름이 맞닿는 곳이 영화의 한 장면 같다. 그 흔한 파라솔 장사꾼도 없다. 횟집 달랑 하나. 주변에 정자가 많아서 적당히 햇빛을 가리면 된다. 해안을 따라 펼쳐진 백사장이 약 1.8킬로 된다. 규사로 이루어진 모래가 서해답지 않게 하얗고 깨끗하다. (단, 갈매기가 무지 많다)
정말 눈이 쌓인 것처럼 새하얗고 고운 모래. 원래 백사장이 더 풍부했는데, 호도섬이 가난했을 때 모래를 육지에 내다팔았다고 한다. 아까운지고. 그 모래가 다시 쌓일라면 몇 천년, 몇 만년이 걸릴 지도 모르는데. 지금도 이렇게 아름다운데, 그 모래가 지금까지 남아있었다면 얼마나 더 아름다웠을까. 아무리 가난해도 자연을 팔아먹는 건 절대로 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닷가에 게들이 수도 없이 많다.
스마프 마을에 온 듯. 섬에 노인정 하나, 슈퍼 하나, 초등학교 분교 하나, 교회 하나가 전부다. 그 흔한 음식점도 없다. 음식은 각자 민박집에서 투숙객을 대상으로 제공한다. 약 10미터 간격을 두고 카페가 2개 있는데 딱히 경쟁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 중 하나인 등나무 카페에서는 자신의 텃밭에서 키운 수박을 2만원에 판다.
섬 구경을 하다보니 어느새 점심시간. 이름모를 생선 한 마리가 떡하니 놓여있다. 제사상에 오르는 왕조기만 했는데, 아마 놀래미였던 것 같다. 그리고 게장과 게찌게가 엄청 푸짐하게 나왔다. 꽃게는 아니었지만 살은 탱탱하고 부드러웠다. 민박이라해도 전문 식당이 아니라 매끼니 찬을 바꾸기 힘드셨을텐데 아침과 중복되는 반찬이 거의 없었다. 감사한 마음으로 맛있게 냠냠
밤을 먹었으니 다시 섬 구경에 나섰다. 섬 곳곳에 산책로가 있는데 나무가 우거져서 그늘로 다닐 수 있어서 좋았다. 산길을 벗어나면 어느새 바닷가 산책로와 연결된다.
바닷길을 따라 걷다보니 초등학교 분교가 나온다. 전교생 8명. 이 섬에 자리잡고 마을도서관 하나 운영하면서 애들 데리고 글쓰기 서당 하나 열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마을 곳곳에 커다란 바위로 된 탁자와 의자가 널려있다. 따로 자리 빌리지 않고도 얼마든지 눈치 보지 않고 술을 마실 수 있다. 물론 밤에.(낮에는 더워 죽는다). 낮에 달구어진 돌이 밤까지 뜨듯하다. 찜질방처럼 등을 지지며 파도소리를 듣는 재미가 그만이다.
색감이 뭔가 새마을틱하다.
곳곳에 포토존이 있다.
거울에 나 자신도 한 번 돌아보고
등대 주변 갯바위에서는 우럭과 놀래미가 많이 잡힌다고 한다. 나도 난생처음 루어낚시를 한 번 시도해봤지만 그냥 맘편하게 사먹기로 했다.
한참 해수욕도 하고 산책도 하고 돌아오니 나를 기다리고 있는 진수성찬. 육지에서는 비싸서 먹기 힘든 해삼, 소라 등을 맘껏 먹을 수 있다. 산에서 캔 자연산 더덕도 민박 아주머니 사랑합니다. 가족 사진을 보니 따님도 예쁘시더라
알록달록 빨래를 널은 모습마저 정겹다.
어디에나 있는 텃밭
어디에나 있는 똥개 백구
물이 빠진 계류장. 서해안이라 밀물과 썰물의 차이가 크다.
여우에 홀린 듯한 1박2일이었다.
글 쓰러 갔다가 별렀던 글은 한 자도 못 쓰고 여기저기 구경하고 먹느라 바빴다.
1박2일 동안 맛있는 음식을 차려주신 주인내외분께 나갈 때 아이스크림을 잔뜩 사드리고 왔다.
가을에 육고기 잔뜩 가지고 다시 한 번 오겠다는 약속과 함께.
무인도는 아니었지만, 넉넉한 인정이 살아있어서 아름다웠던 호도섬.
나도 나중에 여기에 민박집 하나 차려볼까?
민박집 이름은 '호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