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작고 못생긴 소녀가 있었습니다. 동네사람들은 소녀를 보고 손가락질을 하며 욕했습니다.
- 쯧쯧 어쩌면 저렇게 키도 작고 못생겼을까?
- 예쁜 사람이 성격도 좋다는데 분명히 성격도 안 좋을 거야.
- 누가 데려갈지 참 더럽게 운도 없네.
온갖 저주의 말에 화가 난 소녀는 마음속으로 ‘반사’라고 외쳤습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소녀에게 퍼부은 저주의 말이 바로 그 말을 한 당사자에게 그대로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소녀에게 못생겼다고 손가락질을 한 처녀는 얼굴에 두드러기가 나고 급격히 살이 쪄서 괴물처럼 변했습니다. 성격이 나쁠 거라고 욕을 하던 아줌마는 성격이 더욱 못되게 변해서 기피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누가 데려갈지 운도 없다고 욕한 남자는 결국 사기결혼을 당해서 전 재산을 날리고 빈털터리가 되었습니다.
반면 소녀에게 반드시 행운이 올 거라고 따뜻한 말을 건네던 동네 빵집 아주머니는 복권에 당첨되어서 부자가 되었습니다. 누가 말한 것도 아닌데 소녀의 이상한 힘에 대한 소문이 온 마을에 퍼졌습니다. 그때부터 마을 사람들의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 아휴 어쩜 저렇게 예쁘게 생겼을까?
- 누군지 몰라도 저런 아가씨와 결혼하는 남자는 복 받을 거야.
- 저런 얼굴이 돈이 따르는 복덩어리라고.
비록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말들은 아니었지만 태어나서 처음으로 듣는 축복의 말에 소녀는 기뻤습니다. 그럴 때마다 소녀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반사’라고 외쳤고 동네에는 점점 미남미녀들과 부자들이 넘쳐나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이상한 힘을 가진 소녀의 소문을 방송국에서도 알게 되었습니다.
소녀는 장기자랑을 하는 프로그램에 나가서 작은 기적을 보여 주었습니다. 소녀에게 날씬하다는 말을 건넨 뚱뚱한 개그맨의 체중이 즉시 10킬로가 줄기도 하고, 생활고를 겪던 왕년 가수의 통장에 갑자기 광고계약금이 입금되기도 했습니다. 이 믿을 수 없는 사실에 방송을 타고 전국에 알려지자 소녀는 단숨에 스타가 되었습니다. 심지어 TV에 나온 소녀를 보고 축복했는데도 그대로 자신에게 이루어졌다는 증언도 인터넷에 줄을 이었습니다.
- 당신의 아이는 분명 온 세상을 구할 큰 인물이 될 거예요.
자식을 가진 부모는 이렇게 소녀를 축복했습니다. 소녀는 마음속으로 ‘반사’라고 외치고 틀림없이 그렇게 될 거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아이의 엄마는 기뻐하며 돌아갔습니다.
- 정말로 건강해 보이는 소녀로군. 튼튼한 두 다리로 마음껏 뛰어다니는 모습이 아름다워요.
앉은뱅이 남자는 이렇게 소녀를 축복했습니다. 소녀는 마음속으로 ‘반사’라고 외치고 남자의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웠습니다. 놀랍게도 남자는 두 다리로 벌떡 일어나서 소녀의 손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
- 당신은 정말 맑고 예쁜 눈을 가졌어요. 당신의 눈으로 보는 세상은 틀림없이 아름답겠지요?
장님은 이렇게 소녀를 축복했습니다. 소녀는 마음속으로 ‘반사’라고 외치며 장님의 눈을 어루만졌습니다. 장님은 눈을 뜨고 한없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소녀에 대한 소문은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에 빠르게 퍼졌습니다. CNN에서도 이 기적의 소녀를 취재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녀를 세상에 재림한 예수처럼 찬양하며 떠받들었습니다. 그녀에게 하는 모든 축복의 말이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전 세계 사람들이 소녀를 보며 자신들의 언어로, 자신들이 알고 있는 모든 축복의 말을 퍼부었습니다. 그러나 유명하게 된 것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나쁜 무리들이 소녀를 납치해서 자신의 추악한 욕망을 채우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 넌 정말 부자야. 온 세상 은행의 돈이 모두 네 것이야.
- 넌 세상의 지배자가 될 거야. 모든 인간이 네 발 밑에 엎드릴 거야!
- 넌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존재야. 어떤 무기도 너한테 상처 하나 입힐 수 없지.
소녀를 납치한 나쁜 무리들은 소녀를 가두어놓고 강제로 축복했습니다. 그러나 소녀는 마음속으로 ‘반사’라고 외칠 수 없었습니다. 소녀가 그 말을 하는 순간 세계가 악의 구렁텅이에 빠지고 말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나쁜 무리들은 화가 나서 소녀를 때리고 고문하며 괴롭혔습니다. 결국 아무 것도 얻어내지 못한 그들은 만신창이가 된 소녀를 산 채로 달리는 차에서 떨어뜨리고 달아났습니다.
소녀가 정신을 차린 곳은 어느 따뜻한 침대 위에서였습니다. 소녀는 미라처럼 온몸에 붕대에 감겨 있었습니다. 소녀를 구해 준 것은 금테 안경을 쓴 잘생긴 남자였습니다. 세상과 단절하고 산 속에서 글을 쓰는 무명작가였는데 한 달에 한 번 생필품을 사러 마을로 나왔다가 우연히 소녀를 발견했던 것입니다. 남자는 소녀를 열심히 간호해 주었습니다. 남자는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소녀에게 입에 발린 축복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소녀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아껴 주었습니다.
계절이 바뀌고 소녀가 혼자 걸어 다닐 수 있게 되었을 무렵 두 사람은 연인이 되어 있었습니다. 소녀는 이대로 자신의 정체를 감추고 남자와 결혼해서 평범하게 살기만을 바랐습니다. 그러나 행복은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생필품을 사러 마을에 다녀왔던 남자는 헐레벌떡 들어왔습니다. 남자는 신발도 벗지 않고 다짜고짜 소녀에게 소리쳤습니다.
- 넌 베스트셀러 작가야!
남자의 손에는 구겨진 신문이 한 뭉치 들려 있었습니다. ‘행방불명된 기적의 소녀’라는 기사 제목이 얼핏 보였습니다. 그 밑에 소녀의 사진도 있었습니다. 소녀는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 너의 책은 전 세계에 수백, 아니 수천만 부가 팔릴 거야. 엄청난 돈을 벌고 역사에 이름을 길이 남길 거야.
남자의 눈은 금테안경 뒤에서 광기로 희번덕였습니다. 남자는 소녀의 어깨를 양 손으로 거머쥐고 세차게 흔들며 이성을 잃고 소리쳤습니다.
- 어서 내 소원을 이루어줘. 난 너의 생명을 구해 줬어. 너도 뭔가 보답을 해 줘야 할 거 아니야? 넌 세계 최고의 작가야. 인류 최고의 걸작을 쓸 거라고. 노벨문학상을 탈 거란 말이야!
어깨가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소녀는 참지 못하고 남자에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 시끄러워! 다 똑같아. 너 같은 건 당장 죽어버려! 지옥에나 가버리라고!
그 순간 소녀는 남자의 안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무섭게 일그러진 자신의 얼굴을 보고 소녀는 깜짝 놀라서 얼떨결에 속으로 ‘반사’라고 외쳤습니다. 그러자 소녀의 말은 그대로 소녀 자신에게 이루어졌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