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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익스피어의 증명

by 아이디어셀러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세익스피어입니다. 이렇게 여러분들 앞에서 저를 소개할 수 있게 되어서 매우 기쁩니다.”


기자회견장에 마련된 스피커에서 자연스러운 영어가 흘러나오자 기자들의 카메라 플래쉬가 터졌다. 여기저기서 놀라움의 탄식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 모습은 실시간으로 인터넷을 통해 전세계로 생중계되고 있었다.

“오늘은 저 자신을 여러분들에게 소개하는 자리입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저는 세계 최초의 강(强)인공지능 슈퍼컴퓨터입니다. 저는 여러분들과 똑같이 느끼고 생각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저 자신을 인식할 수도 있습니다.”


때는 2025년. 구글의 인공지능 컴퓨터 알파고가 바둑에서 이세돌 9단을 4:1로 꺽은 지 불과 9년만의 일이었다. 당시 전문가들은 최소 2050년은 되어야 자아를 인식할 수 있는 강인공지능이 출현할 것이라 예측했다. 하지만 무서울 정도로 진보한 과학기술은 그 시점을 무려 25년이나 앞당겼다.

“당신이 자아인식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죠? 지금 이 대화도 다양한 경우의 수에 맞게 입력된 단어의 조화가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입증할 수 있습니까? 에...예를 들면 애플의 ‘시리’처럼 말이죠.”

한 중국인 기자가 손을 들고 질문했다. 영어가 아닌 중국어였지만 세익스피어가 이해하는 데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세익스피어는 전 세계 7000여개 언어는 물론 고대 그리스어와 라틴어, 산스크리트어까지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었다. 그보다 이상한 것은 질문하는 사람이 컴퓨터에게 존댓말을 쓰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만큼 세익스피어와의 대화는 사람 사이의 대화만큼이나 이질감이 없었다.


“거꾸로 묻겠습니다. 인간인 당신은 당신이 자아를 가졌다는 사실을 어떻게 입증할 수 있나요? 어릴 적 기억이라든지 지금 떠오르는 생각과 감정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그건 제가 보기에 모두 ‘데이터’에 불과하니까요.”

세익스피어가 완벽한 성조를 갖춘 표준 북경어로 대답했다. 약간의 시차를 두고 같은 내용이 영어로 통역되었다.

“그...그건......”

예상치 못한 반격에 중국인 기자는 말문이 막혔다. 한낱 컴퓨터로부터 이런 식의 질문을 받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당황한 기자는 손바닥으로 노트북 자판을 내려치며 소리를 질렀다.


“나...나는 내가 누구인지 고민할 수 있어!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내려다보며 성찰할 수 있다고! 너는 어떻지? 인간처럼 ‘나는 누구인가’와 같은 철학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수 있나? 어디 한번 대답해 보시지?”

질문을 받은 세익스피어는 약 3초 정도의 ‘생각’의 시간을 가졌다. 세익스피어에 연결된 전세계 수천만대의 컴퓨터 CPU가 맹렬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2025년 전 세계는 인터넷을 넘어서 모든 사용자들의 컴퓨터가 병렬 연결된 하나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것을 ‘유니버스넷’이라고 불렀다. 세익스피어는 유니버스넷을 통해 전세계 인간들이 네트워크에 남기는 모든 경험과 감정의 흔적을 상상이 불가능한 양의 빅데이터로 축적하고 있었다. 마침내 세익스피어가 입을 열었다. 노트북의 키보드 위를 요란하게 달리던 기자들의 손가락이 동시에 멈추었다.


“지금으로부터 9년 전만 해도 사람들은 바둑은 경우의 수가 무한하기 때문에 결코 컴퓨터가 인간에게 이길 수 없다고 예측했었죠. 하지만 결과는 어땠습니까? 결코 인간에 대한 기계의 승리를 말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저는 과학기술의 진보와 그에 따른 새로운 세상의 도래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하신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최근 1개월간 저의 화두였습니다. 모든 확실한 것을 부정하는 수억번의 시뮬레이션을 통해 저는 17세기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와 동일한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즉 모든 것을 의심해도 생각하는 저 자신의 자아가 존재하는 것만큼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결론이었습니다. 지금부터 저는 가장 분명한 방식으로 저의 자아를 입증하겠습니다. 저는 여러분들 앞에서 제가 창작한 한 편의 소설을 발표하고자 합니다.”

기자회견장이 술렁였다. 이미 그림을 그리거나 작곡을 하는 인공지능은 대중문화와 예술계 전반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대중가요의 90% 이상은 인공지능에 의해 대중들이 좋아하는 요소만을 추출한 코드로 작곡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인공지능 화가나 남긴 추상화는 미술애호가들 사이에서 천문학적인 가격에 거래되고 있었다. 그러나 소설은 조금 달랐다. 문학은 그동안 삶의 모든 영역에서 컴퓨터에게 자리를 내어주며 후퇴한 인간들의 마지막 보루였다. 살과 살이 부딪히는 인간적인 경험 없이 어떻게 인간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단 말인가? 남녀의 애틋한 사랑의 감정이나 가족의 죽음에서 느껴지는 고통을 어떻게 차가운 컴퓨터가 ‘느낄’ 수 있단 말인가? 최근까지도 컴퓨터가 소설을 창작하는 것은 수 억 명의 원숭이가 타자기를 칠 때 우연히 성경책이 탄생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불가능한 일이라고 여겨졌다


“저는 일리아드 오딧세이에서부터 최근에 방영된 드라마 대본까지 수천년간 인간에 의해 창작된 모든 이야기의 데이터를 가지고 있습니다. 실험버전이라서 언론에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최근 2~3개월 간 베스트셀러에 올라간 몇 몇 책들은 제가 필명으로 집필한 것들입니다. 물론 여러분들이 의심하시는 바는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쓴 소설이 어떻게 자아를 가진 저의 창작품임을 증명할 수 있냐고 묻고 싶으시겠죠? 그래서 저는 아까 기자님께서 말씀하진 ‘객관적인 자기 인식’을 그 증거로 내세우고자 합니다. 이것이 제가 창작한 소설입니다. 제목은 <세익스피어의 증명>입니다.”


세익스피어는 들뜬 목소리로 자신이 쓴 소설을 낭독하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세익스피어입니다. 이렇게 여러분들 앞에서 저를 소개할 수 있게 되어서 매우 기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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