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우가 오려는지 ‘천해(天海)’의 색이 짙은 먹색으로 변했다.
‘천해’란 말 그대로 하늘에 있는 바다였다. 하늘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방대한 물의 층이 형성되어 있었다. 지상의 사람들은 이것을 하늘의 바다라는 의미로 ‘천해’라고 불렀다.
지상에도 한때 엄청난 양의 물로 이루어진 ‘바다’라는 것이 있었다는 전설이 있다. 전설에 의하면 사람들이 땅과 바다를 고갈시키고 오염시키자 이에 분노한 신이 지상의 물을 모두 하늘로 끌어올려 ‘천해’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날 이후로 물이 고갈된 지상은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없는 황무지가 되었다.
찬란했던 문명은 퇴보하고 비참한 원시상태가 수백 년간 계속 되었다. 아무도 ‘천해’까지 올라가 보지 못했지만 그것이 진짜 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점처럼 까마득해 보이는 물고기들이 무리지어 노니는 모습을 지상에서도 관찰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이 물고기들을 ‘인면어’라고 불렀다. 물에 굴절되어 오로라처럼 아롱거리는 햇살사이로 노니는 수많은 물고기떼의 그림자는 때로 장엄해 보이기까지 했다.
“타오 형, 아직도 많이 남았어?”
루루가 폐허가 된 초고층 빌딩의 옥상에서 거대한 물레를 돌려 계속 밧줄을 풀어내며 말했다. 뾰족하게 자란 송곳니가 하얗게 반짝거렸다. 타오는 그 옆에서 루루가 풀어주는 밧줄의 꼬인 부분을 곧게 펴는 작업에 여념이 없었다.
루루는 올해로 14살이 되는 곱슬머리의 앳된 소년이었다. 그보다 4살이 많은 타오는 제법 팔에 탄탄한 근육이 오른 과묵한 소년이었다. 마을에서 낚시행사에 참여한다는 것은 성인으로서 인정받는다는 의미가 있었다. 오늘은 루루의 성인식을 겸하는 날이었기에 루루의 얼굴에는 다소 흥분된 표정이 떠나지 않았다.
타오는 루루에게 친형 못지않게 절친한 동네 형이었다. 둘은 엄청난 길이의 밧줄을 연에다가 묶어 하늘로 띄워 올리고 있었다. 그 주위에는 수십 명의 마을 남자들이 손에 작살을 들고 대기하고 있었다. 태양이 지며 서쪽 바다가 타는 듯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날이 어두워지자 연에 매달린 찌가 자동적으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연’이라고는 해도 종이 쪼가리와 대나무로 만든 허름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풍선과 가열기관으로 이루어진 일종의 소형 열기구였다. ‘연’을 매달은 밧줄을 감고 있던 물레는 바람에 못 이겨 삐걱 삐걱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다. 밧줄은 어느새 몇 바퀴만 돌리면 끝이 보일 정도로 거의 다 풀려 있었다.
“이제 거의 다 됐어. 큰 고기를 잡으려면 연을 바다 깊숙이 찔러 넣어야 한다고.”
타오는 옆을 돌아보지도 않고 꼬인 밧줄을 푸는 작업에만 열중했다. 지금 이 작업을 확실히 해두지 않으면 나중에 감아 들일 때 엄청난 고생을 한다는 것쯤은 타오도 알 수 있었다.
‘연’을 이용한 낚시는 마을의 유일한 생존수단이었다. ‘천해’가 생긴 이후로 지상은 순식간에 사막화가 진행되었다. 그 결과 지상은 식물도 동물도 자라지 못하는 불모의 땅이 되어버려 사람들은 멸종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생명력의 상징이었다는 바퀴벌레마저 멸종되어 간혹 콘크리트로 된 고대 유적의 벽화에서나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있었다. 지상에서 살아 움직이는 존재라고는 인간밖에 없었다. 인간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이 바로 ‘연’을 이용해서 천해에 무진장으로 널려있는 인면어들을 낚는 것이었다.
물론 식수 등도 파이프와 모터를 이용해서 천해로부터 공급받았지만 지상에 식물을 키울 정도의 여유는 없었다. 인면어의 고기는 완전 영양체였다. 식물을 섭취하지 않아도 비타민 결핍에 걸리는 일은 없었다. 인간들의 식생활이 완전 육식으로 변한지 수백 년이 지나자 사람들의 송곳니는 육식동물의 그것처럼 점점 날카롭게 진화되었다.
‘연’의 옆면에는 갈고리만한 낚싯바늘과 발광물질이 칠해진 거대한 찌가 대여섯 개 매달려 있었다. 천해에 사는 생물은 중력의 영향을 적게 받아서 거대하게 성장하기 때문에 바늘의 크기가 그 정도는 되어야 했다. 가장 작은 인면어라고 하더라도 몸길이가 최소한 3m 이상이었다. 40여 년 전 촌장의 성년식 날 잡혔다던 인면어는 자그마치 18m가 넘는 괴물이었다.
괴어의 머리통은 박제가 되어 촌장의 집 벽에 걸려 있었는데 한 벽면을 가득 채울 정도로 엄청난 크기였다. 그것은 흡사 거대한 사람의 두개골을 닮아있었다. 그놈을 잡는데 마을 장정 300여 명이 동원되어 4시간 동안 밧줄을 붙잡고 혈투를 벌였다는 이야기는 머지않아 신화가 될 것이 분명했다. 거대한 낚시 바늘의 끝에는 사람의 모습을 본뜬 허수아비가 미끼로 꽂혀 있었다. 왜 그런지 몰라도 인면어들은 사람의 모습과 채취에 홀린다고 했다. 오늘은 루루의 성년식이기에 허수아비는 루루가 입던 옷을 입고 있었다.
“엇차! 이제 다 풀렸다. 이제 인면어가 미끼를 물기만 기다리면 돼.”
타오가 상체를 뒤로 젖히며 기지개를 폈다. 그의 반듯한 이마에는 땀이 구슬처럼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형, 근데 오늘 미끼가 내 모습인 걸 보니까 기분이 좀 이상하다.”
“…… 너도 알잖아. ‘미끼’는 마을 사람들이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형상을 본뜬다는 마을의 관습을.”
타오의 얼굴에는 뭔지 모를 슬픔이 서려 있는 듯했다.
“그건 나도 알아. 근데 왜 하필 오늘인지…… 오늘은 5년 전에 엄마가 돌아가셨던 날인데…….”
…… 넌 낚시에 참가하는 게 이번이 처음이지?”
“응, 꼭 잘해내서 훌륭한 한 명의 남자로 인정받고 말거야. 근데 형은 이제 익숙하겠다. 벌써 미끼가 형의 형상을 본뜬 것만 3번이나 됐잖아?”
“…… 그래…….”
“형도 처음 낚시에 나갔을 때는 인면어를 붙들고 불쌍하니까 죽이지 말라고 울고불고 했었다며? 헤헷. 두고 봐. 나는 남자답게 절대로 그러지 않을 테니까.”
“…… 너도 곧 그 이유를 알게 될 거야.”
타오는 입을 굳게 다문 채 고개를 들어 검푸른 천해만을 올려 보았다. 태양이 완전히 져서 어두컴컴한 천해에는 노란 불빛만이 해류에 따라 너울너울 춤추고 있었다.
“형, 그게 무슨 뜻이야?”
“쉿! 찌가 움직인다!”
노란 불빛이 갑자기 미친 듯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 주변에 거대한 검은 그림자가 몸부림치는 모습이 보였다.
“봐…… 봤어? 지금?”
“엄청 크다!”
창과 화살을 들고 모여든 마을 어른들이 저마다 한 마디씩 했다.
“침착하거라. 이제 모두 달라붙어서 밧줄을 당긴다.”
키가 조그마하고 머리가 벗겨진 마을 촌장이 지시를 내리자 50여 명의 남자들이 밧줄에 달라붙었다. 타오와 루루도 재빨리 물레를 버려두고 합세했다. 지금이야말로 한 명의 남자로서의 당당한 모습을 마을 어른들에게 보여 줄 절호의 기회였던 것이다.
“영차! 영차!”
“뒤쪽 사람들도 힘 좀 쓰라고. 이러다가 천해로 끌려 올라가겠어!”
“앗! 연이 해류를 탔다! 오른쪽으로 당겨!”
“힘 엄청 좋은 놈이군!”
마을 청년들의 고함소리가 울려 퍼지며 낚시는 본격적으로 활기를 띄었다. 루루는 자신이 이런 사나이들 사이에서 한몫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가슴이 벅차도록 자랑스러웠다.
‘엄마…… 저 벌써 이렇게 자랐어요…….’
루루는 땀으로 범벅이 된 채 엄마의 죽음을 떠올렸다.
“루루야, 미안하다…… 엄마 먼저 천해로 가야겠구나…….”
엄마는 핏기가 없어 파리해진 얼굴로 말했다. 지독한 영양실조에다 유행병 감염으로 더 이상 살아날 가망이 없었다.
“안 돼, 엄마. 죽지 마!”
루루는 엄마의 배에 얼굴을 파묻고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엄마의 배는 무덤처럼 둥그렇게 솟아 있었다. 임신 중이었다. 아빠는 6개월 전 루루와 아내, 그리고 뱃속에 남겨진 아이를 남겨둔 채 유행병으로 목숨을 잃었다.
“아냐…… 엄마는 죽는 게 아니야…… 저 하늘의 바다로 올라가서 행복하게 살 수 있단다…… 거긴 날씨도 온화하고 먹을 것도 많이 있데…….”
엄마는 억지로 희미하게 웃어보였다.
“다만…… 다만 네 동생을 남기고 가지 못하는 것이 한스럽구나.”
“싫어! 그럼 나도 같이 죽을 거야. 나도 데려가, 흑흑.”
“루루야…… 너는 아직 지상에서 할 일이…… 많이 있잖니…… 부디 아빠 못지않은 훌륭한 남자로 자라겠다고…… 엄마랑…… 약속해줘…… 엄마가 마음 편히 떠날 수 있게…….”
“으응…… 약…… 약속할께…… 흐윽…….”
그리고 곧 루루의 엄마는 숨을 거두고 하늘나라로 올라갔다. 루루의 동생을 뱃속에 품은 채로.
하늘나라로 간다는 것은 비유가 아니었다. 말 그대로 루루의 엄마는 죽자마자 하늘로 점점 떠올라 까마득히 올라갔던 것이다. 신기하게도 사람은 죽으면 몸 전체에 이상한 부력이 생겨서 공중에 떠올라 천해로 올라갔다. 죽은 다음에야 갈 수 있는 그곳. 더러운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청정무구한 그곳. 지상의 사람들에게 있어 천해는 일종의 낙원으로 생각되었다. 무엇보다도 식량이 될 수 있는 인면어가 풍부하다는 것은 확실한 사실이었으니까.
“놈의 꼬리가 보인다!”
“힘을 더 써 봐!”
“더 이상은 무리야. 부력이 세서 밧줄이 끊어지겠어!”
“화살을 가져와라! 놈의 부레를 터뜨려야겠다!”
퓻! 퓻!
다른 청년들이 화살을 날리자 그중 하나가 인면어의 등짝에 꽂혔다. 그러자 푸쉬-하며 공기가 빠지는 소리가 나더니 인면어는 힘을 잃고 장정들의 힘에 끌려오기 시작했다. 천해에 사는 생물들은 부레에 수소를 채워서 하늘도 아니고 물속도 아닌 천해를 자유자재로 비행할 수 있었다. 가끔 방향감각을 잃은 인면어는 지상 부근까지 접근했다가 그물에 잡히는 경우도 있었다.
“자, 이제 거의 다 됐다! 저 정도 크기면 앞으로 일주일간은 먹을 수 있겠는 걸?”
“그물! 누가 그물을 가져와!”
드디어 거대한 인면어의 모습에 눈앞에 보였다. 마치 비행선을 밧줄로 묶어놓은 듯 몸길이가 10m는 될 듯한 거대한 몸집에 루루는 압도되었다. 루루는 인면어의 요리만 먹어봤지 실제로 살아있는 인면어를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14세가 되어야만 낚시에 참가할 자격이 주어지고 그 이전의 어린이들은 구경하는 것조차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인면어는 전체적으로 새와 물고기를 합쳐놓은 것 같은 기괴한 모습이었다. 각각 1m에 달하는 거대한 네 개의 지느러미는 새의 날개처럼 늠름하게 펼쳐져 있었고 몸뚱이에 촘촘히 박힌 비늘 하나하나는 새의 깃털처럼 가운데 심을 중심으로 갈라져서 하늘거렸다. 지상에 근접한 인면어가 4개의 지느러미로 날갯짓을 할 때마다 엄청난 흙먼지가 날려서 루루는 눈을 똑바로 뜰 수가 없었다.
인면어의 얼굴은 마을 사람들이 천으로 덮어서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해야 인면어가 날뛰지 않고 고분고분해진다는 것이었다. 다만 천 사이로 사람의 머리털 같은 것이 길게 삐져나와 있는 것이 보였다. 낚싯바늘은 놈의 앞 손에 해당하는 지느러미에 꽂혀 있었다. 가만히 보니 지느러미는 사람의 손바닥을 그대로 확대해서 손가락 사이에 막을 씌운 것 같은 형상을 하고 있었다. 손 같기도 하고 날개 같기도 한 지느러미로 미끼를 움켜잡으려다 바늘에 걸린 것이리라. 인면어는 땅바닥에 떨어져서 미친 듯이 몸부림을 쳤다. 그 바람에 그물을 잡고 있던 청년들이 힘을 이기지 못하고 저만치 나가 떨어졌다.
“어서 창으로 찔러라!”
푹! 푹! 푹!
너덧 명이 달려들어 인면어의 몸을 찌르자 인면어의 몸에서 붉은 피가 뿜어져 나왔다. 엄청난 양의 피에 주변은 온통 구역질나는 비린내가 진동을 했다. 부레가 터지고 피가 빠져나간 인면어는 죽은 듯이 늘어져 숨만 씩 씩 내쉬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젖은 천이 얼굴에 착 달라붙었다가 숨을 내쉬면 다시 부풀어 올랐다. 천이 달라붙을 때 살짝 보이는 인면어의 옆얼굴은 흡사 사람의 얼굴처럼 보였다.
“자, 루루. 이제 네 차례다.”
촌장이 루루에게 창을 하나 건넸다. 쇠로 만든 창의 차갑고 묵직한 느낌이 손에 전해지자 루루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걸로 물고기의 얼굴을 찌르는 거다. 그럼 넌 마을에서 한 명의 남자로 당당하게 인정받는 거야.”
자랑스러운 순간이었다. 이제야 돌아가신 엄마와의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막상 찌르려고 하니 알 수 없는 거부감이 루루의 몸을 옭아매었다. 인면어의 얼굴을 덮은 천의 윤곽이 흡사 사람의 얼굴 윤곽과 비슷해 보였기 때문이었을까.
“무얼 하고 있느냐! 어서 찌르거라!”
촌장이 다시 재촉하는 순간 세찬 바람이 휘몰아치면서 인면어의 얼굴을 덮었던 천이 벗겨졌다.
“아…… 아…… 이…… 이건?”
루루의 얼굴이 경악으로 굳어졌다. 동그란 눈이 놀라움으로 튀어나올 듯이 커졌다.
“어…… 엄마!”
인면어의 얼굴은 틀림없이 죽은 엄마의 얼굴이었다. 인면어도 루루를 알아보는지 퀭한 눈빛으로 힘없이 웃어 보였다. 예기치 못했던 사태에 사람들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침묵을 깬 것은 촌장이었다.
“음…… 어쩔 수 없지. 원래는 얼굴을 가린 상태에서 찌르게 한 후 알려주는 게 순서이지만 어쩔 수 없구나. 루루야 잘 듣거라. 이제부터 마을의 비밀에 대해 가르쳐 주겠다. 너도 알다시피 사람은 죽으면 누구나 천해로 올라간단다. 어린이들은 죽은 사람이 그곳에서 행복한 삶을 누린다고 알고 있지만 그것은 거짓말이다. 실상은 죽은 사람은 천해에서 물고기, 즉 인면어로 변해서 제2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이란다.”
“이…… 인면어로?”
“그렇다. 나는 젊었을 적 호기심으로 죽은 사람을 관에 가둔 채 무거운 돌로 눌러 천해에 올라가는 것을 막은 적이 있었지. 보름 후에 관 뚜껑을 열어보니 시체는 개인지 돼지인지 모를 이상한 형태로 변해 있었다. 다시 뚜껑을 닫고 또 보름이 지난 후에 열어보니 이번에는 물고기와 같은 형상이 되어 있었다. 물론 물이 없어서 죽어 썩어 있는 상태였지만. 인간은 엄마의 뱃속에서 계통발생을 되풀이한다. 즉 태아는 물고기의 형상에서 개나 돼지의 형상으로 변했다가 결국 진화의 정점에 있는 인간의 형상을 가지게 되지. 그러나 죽은 후에는 이 과정이 거꾸로 일어나는 것 같다. 어쨌든 변신 후의 물고기는 인간과는 완전히 다른 종이 되지만 과거의 모습과 기억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살아생전의 가족들의 형상과 소지품을 미끼로 삼는 것이지. 지능이 퇴화한 인면어는 배우자나 아이들의 냄새에 이끌려 와서 바늘에 걸리게 되는 거야.”
“…… 그런 잔인한 짓을! 자식을 미끼로 삼다니! 그럼 우리들은 지금까지 우리 가족들을 먹고 살아왔다는 것인가요?”
“루루, 너도 보면 알겠지만 이것들은 이미 인간이 아니야. 그렇지만 얼굴이 죽은 가족과 닮았다면 누구라도 마음이 편치 않겠지. 그래서 우리 마을은 규칙을 정해서 공평하게 돌아가면서 자신의 가족이었던 인면어를 잡아 공동으로 나누어 먹었던 것이다. 대개는 이 의식을 14세가 되는 해 성년식 때 하게 되지. 그 이전에는 너무 어려서 마을의 비밀을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이란다. 루루야…… 너도 알다시피 지상에는 먹을 것이 아무것도 없다. 우리가 지금까지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마을의 관습 덕분이란다. 마을의 일원이 되려면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일이야. 루루 너도, 또 너의 엄마도 누군가의 가족이었던 인면어를 먹고 지금까지 살아왔다는 것을 기억하려무나.”
“싫어요! 이건 분명히 우리 엄마라고요! 타오 형 뭐라고 말 좀 해줘.”
“…… 미안하다.”
“형!”
타오는 루루의 시선을 외면한 채 고개를 돌렸다. 타오 대신해서 촌장이 입을 열었다.
“타오는 이미 자신의 죽은 형제 3명을 낚아 마을을 위해 내놓았다. 우리 집 벽에 걸려 있는 괴어는 사실 우리 아버지였지. 누구든 마음이 아프지만 마을 전체를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일이야. 자, 루루 어서 창을 들어라. 그리고 저 괴물을 찌르거라.”
“싫어! 절대로 못해!”
루루는 인면어의 머리를 끌어안고 울부짖었다. 인면어는 초점 없이 멍한 눈동자로 루루를 내려다보았다. 검은 눈동자가 눈 전체 크기로 커져서 정말 물고기의 눈동자 같았다. 마지막 발작일까. 갑자기 인면어의 눈동자가 생기를 띄더니 괴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박쥐의 초음파와도 같은 소름끼치는 소리에 마을 사람들은 얼굴을 찡그리고 양 손바닥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네가 정 그렇게 나온다면 어쩔 수 없구나.”
촌장이 손짓으로 신호를 보내자 마을 청년들이 손에 몽둥이를 들고 루루를 둘러쌌다. 그 중에는 내키지 않는 표정의 타오도 섞여 있었다.
“자, 공격하라! 저 배신자를 죽이고 식량을 되찾자!”
촌장의 명령이 떨어지자 청년들의 몽둥이가 인정사정없이 루루의 머리로 날아들었다. 루루는 겁에 질려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때,
“아악!”
갑자기 맨 앞에서 달려든 남자가 얼굴을 감싸 쥐고 바닥에 쓰러졌다. 그의 뺨에서 살점이 뭉텅 떨어져 나가 하얀 치아가 핏물 사이로 드러나 보였다.
“아니……? 이게 뭐지?”
“으아악- 뭐가 막 날아다니면서 문다!”
“인면어의 유생이야! 아까 인면어가 동료들에게 신호를 보냈어!”
마을 사람들은 공포에 질려 우왕좌왕했다. 사람 팔뚝만한 물체들이 번개처럼 날아들며 사람들을 사정없이 물어뜯었다. 그때마다 사람들의 처절한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때 루루는 보았다. 천해에서 수천수만 마리의 작은 인면어들이 비행기처럼 지느러미를 펼치고 맹렬한 속도로 다가오는 것을. 마치 커다란 먹구름이 몰려오는 것 같이 공포스러운 광경이었다. 루루는 감격에 겨운 표정으로 외쳤다.
“봐…… 나의…… 나의 동생들이야!”
작은 인면어들의 얼굴을 하나같이 루루의 얼굴을 쏙 빼닮아 있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