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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피 Mar 01. 2023

7. 지금이 소중한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좋아하는 것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극적인 감정을 피하려고 애를 쓰다 보니 어느새 작은 즐거움조차도 돌아보지 않 뜨겁지 않은 사람이 되어있었다. '언제부터 이렇게 싫어하는 것만 가득한 세상에서 살고 있었지' 하며 내가 좋아하는 것들, 하고 싶은 것들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돈과 시간, 신체적 여유 세 가지 모두 충분하지는 않아서 그중에 우선순위를 고민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돈이라도 지키지 싶어 그냥 넘어가는 일도 다반사였다. 그래도 뭔가 하고 싶은 것을 할까 말까 주저할 때에는 잔소리라고는 일절 안 하시는 외할머니가 유일하게 해주셨던 조언을 떠올리곤 한다. 그러고 나면 그게 단지 맛있는 것 하나 더 먹는 일에 불과하더라도 '즐길 수 있다면 그 순간을 놓치지 말자'는 생각이 들곤 한다.


"할머니처럼 나이가 먹으면 여행 가서 좋은 걸 봐도 즐겁지 않고, 맛있는 걸 먹어도 먹는 낙도 없. 젊어서 즐길 수 있을 때 여행도 다니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어."

 



잃어버린 일상의 추억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는 왕복 6차선 도로에서 차들의 소음 사이로 큰 소리로 부르는 노래를 숨기며 왁왁 감정을 풀어내며 걷는 소녀가 있었다. 밤에 곧잘 '코끼리가 내 심장을 밟고 지나가는 것처럼 속이 아파, 엄마. 답답해서 잠을 못 자겠어.' 하고 어른이 되어서야 홧병으로 진단 받었던, 마음의 아픔을 토로하던 아이였다. 그래도 그 길을 걸을 때에는 답답하게 막혀있던 마음의 창을 열고 환기를 시키며 자유를 만끽했다.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러대기도 하고, 노래를 부르다 흥을 견디지 못하고 몸을 흔들어대기도 하고, 마음의 고조를 따라 둥둥 떠오를 것처럼 흩날리는 나뭇잎과 달리기를 하기도 했다. 집과 주민센터까지 2키로 남짓한 그 길이 소녀의 걸음으로 적어도 왕복 한 시간 정도 걸 짧지 않은 거리였지만 버스 대신 걷는 것을 택했고 자유로웠던 그 길이 끝나는 것이 못내 아쉬웠던 적이 많았다. 주변 풍광이 거의 없 앞만 보며 공항을 오가는 무수한 차들만 지나치는 그 광활한 대로가 내게는 질풍노도를 겪는 시기의 대나무 숲이었다.


그 일상은 동네를 떠나 도심으로 이사 오면서 끝이 났고, 언젠가부터는 걷는 것도 고통스러운 건강상태가 되었고, 타고난 재능인 줄 알았던 노래도 오랜 시간 입을 닫으면서 남들보다 더한 고음불가가 되었다. 그때의 그 장면은 완전히 추억 속으로 담긴 나만의 필름 속에만 존재한다.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당연한 일상이 언젠가부터 점점 당연하지  그렇게 자꾸 잃어버리는 것들이 늘어가면서 상실감을 느꼈다. 사는 동안 과거의 경험이 상대적으로 긴 시간이라 그런지 여전히 자꾸 과거의 아쉬움과 후회를 두고 현재의 내가 얻은 새로운 것에 집중하지 못했다. 우습다. 누군가 내게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언제로 가고 싶냐' 물으면 나는 어느 때고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가난 때문에 행복이 저 창 밖으로 도망가서는 이제야 먹고사는 데까지 온 가족이 겪은 아픔들을 다시 겪고 싶지 않다. 과거의 언제고 그렇게 즐겁지 않았는데 지금에 만족하지도 못해서 자꾸만 과거의 눈부신 찰나를 끌어모아 그림을 그려대고 있었다.




지금이 소중한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과거를 되새기지 말고 미래를 바라지 마라.
과거는 사라졌고 미래는 닥치지 않았다.
현재에 (일어나는) 현상(法)을 (매 순간) 바로 거기서 통찰하라.'
부처님 말씀. <한 밤의 슬기로운 님의 경> 中"


후회와 불안의 고통에 얽매이지 말고 지금 누릴 수 있는 것에 조금 더 집중해 보자. 지금 이 순간을, 그리고 지나온 시간들을 조금 더 살만하게 그렇게. 지금은 미래의 과거니까 미래에 후회하지 않도록.


내가 살고 있는 것은 현재니까 지금 좋아하는 걸 하면서 이 순간만큼은 조금 더 즐겁고 편안한 일상으로 담아보고 싶다. 이 역시 시간이 지나 내 과거가 되겠지만 그때의 내가 행복했다면 나는 또 미래의 어느 순간에 할 수 있는 새로운 걸 시도할 수 있겠지.

평범한 것들을 누리지 못하고 '언젠가 좋은 날이 되면' 같은 가정으로 미뤄두었던 미래를 지금 누려보자.

과거의 행위가 당연한 게 아니게 되었다면, 지금은 그게 특별하게 느껴질 테니까 나는 이제 그 시간을 스스로에게 선물하듯이 주려고 한다. 그리고 그 시간을 충분히 음미하고 누려보려 한다.


좋아하는 것들
- 파란 하늘과 바람 따라 움직이는 구름을 바라보는 일
- 일상을 벗어나서 공연을 보는 것을 좋아하고 관극 하면서 느낀 생각을 정리하는 일
- 퇴근하고 침대에 머리를 거꾸로 내어놓고 목 근육을 이완하면서 바흐의 음악을 듣는 일
- 비 오는 날의 물비린내와 얕은 풀내음


가까운 미래에 하고 싶은 일

    -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러 가는 일, 추억을 만드는 일

    - 봄에 꽃시장 구경 가는 일, 꽃가위로 꽃을 다듬으며 생화의 생명력을 느끼는 일






삶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지만
그럼에도 살아서 좋았습니다.

새벽에 쨍한 차가운 공기
꽃이 피기 전 부는 달큼한 바람
해질 무렵 우러나는 노을의 냄새
어느 하루도 눈 부시지 않는 날이 없었습니다.  

지금 삶이 힘든 당신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당신은 이 모든 걸 매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대단하지 않은 하루가 지나고
또 별거 아닌 하루가 온다 해도
인생을 살 가치가 있습니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노희경 作, 드라마 <눈이 부시게>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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