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토피 Feb 17. 2023

6. 나 다운게 뭘까.

궤도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들에 비해 비교적 나 자신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자기 객관화가 안되어있고 이기적인 행동을 일삼으면서 자기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몇몇 사람들을 보면서 적어도 나는 내 단점까지 똑바로 보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부끄럽게도 알아갈수록 타인이 나를 보는 것보다 더 많이 안다고 자부할 수 없었다.

자신을 알아가고 이해하는 특별한 방법이 딱히 있지는 않았다. 나를 버티게 만들어주는 작은 일상 안에서 타인과의 차이를 통해 조금 더 구조적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뮤지컬의 인물을 이해하려는 마음으로 삶의 다양한 이야기를 간접적으로 경험했고, 인문학을 알아가면서는 내가 바라보는 세상에 대한 가치관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인정하기 어려운 부분에서는 신뢰하는 오래된 친구들에게 오픈하고 얘기를 나누었다.

사회 생활로 관계에 상처받으면서 느끼는 것이 아니라 공부하듯이 조금 더 관조하면서 볼 수 있었던 점이 나에게는 나름 괜찮은 방법이었다.




지구만 바라보는 달 같은 인생, 그게 다는 아냐.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에스메랄다를 죽음으로 내모는 신부 프롤로를 보면서 삶의 경험이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했다. 신만을 바라보는 신부 그녀에게 끌리는 마음과 충동을 사춘기 소년만큼도 감당하지 못해 그녀에게 강요하고 끝내 부정한 것으로 치부해 버리는 것을 보면서 혹여나 나 역시 잘 알지 못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해서 나쁜 것으로만 보고 화가 나있는 것은 아닐까 자문했다.

생과 사의 인간의 여정 말고, 살아가는 현실의 시간에서 여전히 나는 해보지 못한 일이 너무 많은 인생의 초보자였다. 보통의 삶도 사치라고 생각하면서 경험해보지 못한 일상에 대한 결핍이었다. 일하면서 겪는 도전과 시행착오 외에는 걸어본 적도 없는 다른 궤도의 길들이 분명히 존재다는 사실을 오랫동안 완전히 잊고 지냈. 달의 한쪽면에서 지구만 주구장창 바라보는 삶을 원하지는 않았는데 어느새 내가 보는 것에 집중한 나머지 매몰되어 있었다.

잊지 못할 상처를 주는 경험도 많았기에 '아파야 청춘이다'는 말 정말 싫었고 그 아픔을 알고 싶지도 않았기에 새로운 경험에 에너지를 쓸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래도 모든 것에 능숙할 수는 없지 않나. 언제나 처음은 어색하고 어려운 법이다. 프롤로 신부가 욕망의 감정을 인간 본연의 사랑으로 받아들이고 표현했다면 신부의 자리를 내려놓고 에스메랄다와의 사랑을 이룰 수도 있지 않았을까. 어느 것도 인생의 정답은 없으니. 다양한 경험으로 얻은 연륜으로 모든 자극에 온마음을 쓰지 않으며 혹여 이상한 생각과 감정에 휩싸이더라도 '그럴 수 있지' 하며 자연스럽게 인정하고 방향을 정하고 나아갈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 생각했다.


사실은 내 장점을 찾아 삶의 전략을 착착착 세우고 싶었는데 그것은 희망사항이었을 뿐이었다. 단단하지 못한 내면의 균열들이 얕은 생채기를 깊은 상처의 아픔을 만들었다는 것을 깨닫고 또 다시 후회하고 자괴감과 우울감에 빠지곤 했다. 살면서 고통받는 원인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더 단단해 지면 된다고 스스로 되뇌었지만 인정을 하기까지의 일련의 과정들이 생각 이상으로 고되었다. 앞으로 사는 전략을 조금 달리 하는데 도움이 되긴 하겠지만 완전히 제거할 수 없는 타고난 성정이었고, 결국 힘들게 알아낸 나다운 모습이 긍정적이지 못해서 지긋지긋한 기분에서 도통 벗어 수 없었다.




궤도를 벗어나는 일이 불안인 줄 알았는데

방황을 끝내자 사방에 펼쳐진 공간이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지인에게 온 메시지에 이 모든 것들을 그만두기 했다.



왈칵 감정이 복받쳐 올랐다. 내 인생의 책이 300 페이지쯤 된다면 사실 그는 10장도 채 모르는, 최악의 번아웃을 겪으며 스스로 가장 부끄러웠던 시절에 만난 직장 동료였다.


“너는 지금의 네가 싫다고 하는데  

예전에 네가 얼마나 더 괜찮은 애였는지  나는 몰라.

너는 착한 애고, 일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아이야.”


나 다운게 뭔지, 내가 원래 어떤 사람인지 알아내기 위해서 이렇게 오랜 시간을 고민해 왔는데 이 모든 과정에서 또 목적을 잊고 있었구나.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시작했는데 여전히 지구 주변에서 하나의 궤도만 도는데 집중하고 있었다. 또 다른 모습의 정형성을 만들고 있었구나. 나라는 사람을 그리려고 애를 쓰는건 중요하지 않다 걸 자각하면서 결국 다 내려놓기로 마음 먹었다.


세상에 이상한 사람도 참 많은데 왜 나는 삶의 전략씩이나 구상해야 하지. '그냥' 살아보기로 마음 먹었다. 내가 과거에, 현재에 어떤 사람이건 간에, 변하던 변하지 않던 나라는 현존재는 있으니까 '어떻게’ 같은 거 깊게 생각 말고 그냥 살아보자. 그냥 살아봐야 내가 예상치 못한 다양한 경험도 해볼 수 있겠지. 궤도를 넘어 사방으로 펼쳐진 공간이 내게 있는 걸.


나다운 것
그만 생각하고
그냥 살아보자








매거진의 이전글 5. 조각난 기억, 추억을 만들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