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가 있는 호수 <5>

문 너머에서 알게 된 것들

by 지영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였다.
호수와 센터 방문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문도 모르는 호수는 그저 엄마가 시키는 대로
이리저리 휘둘리며 준비를 당했다.

“호수야, 오늘은 엄마랑 공부 조금 하러 갈 거야.”

공부라는 말을 아는지 모르는지
호수는 마냥 신이 나서 챙겨 나갈 공룡을 고르고 있었다.

“크앙—”

티라노사우루스가 된 호수는
집 안 곳곳을 누비며 포효했다.
그렇게 포획한 공룡 한 마리와 나는 센터로 향했다.

센터에 도착해 상담실로 들어선 호수는
처음 보는 장난감들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우와, 엄마 이거 봐.”

좀처럼 진정되지 않는 아이를 간신히 달래
언어치료실에 들여보내고 나는 대기실 의자에 앉았다.
몸은 의자 위에 붙여놓았지만
온 신경은 언어치료실 문에 매달아 두었다.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작은 소리 하나에도
심장이 먼저 반응했다.
손은 괜히 옷자락만 만지작거렸고
시계 초침 소리는 유난히 크게 들렸다.




호수는 언어치료와 미술치료를 병행하기로 했다.
언어 발달은 또래보다 서너 해 느렸다.
발음은 부정확했고,
말의 맥락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부분에서도
함께 살펴봐야 할 점이 많았다.

첫 치료는 쉽지 않았다.
처음 마주한 치료 시스템에
호수는 온몸으로 거부를 표현했다.
울고, 떼를 쓰고, 바닥에 드러눕고 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아이가 다칠까 봐 선생님은
호수를 꼭 안아 진정시키기도 하셨고,
호수는 몇 번이나 문을 박차고 나와 나에게로 달려왔다.

40분의 치료 시간 중 반절 이상은
울음과 고성으로 흘러갔다.
호수는 자기가 알고 있는
모든 거부 방법을 총동원하고 있었다.
그만큼 힘들다는 말이었다.

도망치듯 데리고 나오고 싶었다.
이게 정말 아이를 위한 걸까,
아니면 내가 안심하고 싶어서 아이를 밀어 넣고 있는 걸까
하지만 이 시간을 견뎌야만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말도 이미 여러 번 들은 터였다.

낯설고 어려운 것 투성이인 치료실에서
아이의 힘이 조금 빠지기를, 저항이 체념으로 바뀌기를
나는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몇 차례 더 진행되자 우는 시간은 조금씩 줄어들었다.
호수 나름대로
‘아무리 울어도 달라지지 않는구나’를 깨달았을 것이다.
선생님은 매 시간 최대한 재미있게, 게임처럼
아이의 흥미를 끌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해주셨다.

언어치료가 조금씩 안정되어 가는 동안
내 걱정은 미술치료로 옮겨갔다.

그때는 몰랐지만
아이들이 그리는 그림에는
말 대신 마음이 먼저 나온다고 했다.
색 하나, 선 하나
사람의 얼굴과 나무의 모양까지
그때의 마음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경우가 많다고

호수가 그린 그림들은 온통 검은색이었다.
사람은 울고 있었고
뾰족한 이빨을 드러낸 동물들이 종이 가득했다.
검은색은 종이 가장자리까지 번져 있었고
울고 있는 얼굴의 입은 이상하리만치 크게 벌어져 있었다.
전문가가 아닌 내가 봐도 그 그림들은 참담했다.

이게 일곱 살 아이의 마음이란 말인가
그동안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렇게 우울하고 공포로 가득 찬 그림을
매일 내 앞에서 해맑게 웃던 호수가 그리고 있었다니

집에서 그림을 그릴 때의 호수는
그저 의미 없는 낙서를 할 뿐이었다.
‘조금 이상한데’ 하고 넘길 만한 그림조차 없었다.
작은 몸에 난 상처들은 그렇게 말없이
호수 마음속에 자리를 잡고 곪아가고 있었다.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나에게
미술 선생님은 밝게 웃으며 말했다.

“어머님, 괜찮아요. 앞으로 즐겁게 치유하면 돼요.”

아이 안에 있는 상처들을 표현하고 꺼내 놓는 과정이
이미 시작이라며 최대한 편안한 분위기에서
호수와 시간을 만들어 가겠다고 했다.

그 말에 가슴이 미어졌다.
내가 엄마인데, 아이 마음이 이렇게 새까매질 동안
어떻게 모를 수가 있었을까
매일 웃고 뛰는 아이를 보며
시끄럽다고 혼내고 모른다고 다그쳤던 내가 떠올랐다.

진정되지 않는 마음은 몸 밖으로 흘러나온 것처럼
귓가에서 심장 뛰는 소리가 들렸다.
목구멍에 심장이 걸린 듯 숨이 막혔다.

정신을 차려야 했다.
이제라도 알게 된 것을 감사해야 했다.
지금보다 더 사랑을 주고 더 많이 보듬으면 된다.
한글을 조금 늦게 알면 어떤가. 아이 마음이 이런데

하지만 이제서야 알게 된 나는, 나쁜 엄마였다.
그 사실을 부정할 말도, 덮을 말도
그날의 나는 갖고 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