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가 있는 호수 <4>

여긴 아니구나

by 지영

감기 기운이 있는지 기침을 하던 호수를 데리고

동네 소아과를 찾았다.

하원 시간과 겹친 병원은 아이들과 보호자로 가득 차 있었다.


체온을 재고 증상을 이야기한 뒤

호수와 나는 대기실 끝쪽 의자에 나란히 앉았다.

사람이 많아 오래 기다려야 할 것 같아

TV가 잘 보이는 자리를 골랐다.

화면 속에서는 뽀로로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때 호수가 갑자기 상기된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나랑 같은 반 애야!”


호수가 가리킨 쪽을 바라보니

또래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서 있었다.


“같은 반이야?

친구한테 인사는 했어?”


내 말에 호수는 그 아이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눈이 마주친 그 아이는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호수가 착각한 건가, 아이니까 그럴 수도 있지—

그렇게 생각하려던 찰나였다.


그 여자아이가 우리 쪽으로 다가오더니

호수를 보며 사납게 말했다.


“야! 너, 내가 나 쳐다보지 말랬지!”


그 말을 들은 호수는

나를 올려다봤고, 나는 아이를 바라봤다.


“친구야, 호수한테 그렇게 말하지 마.”


감정을 최대한 덜어내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 아이는 들은 척도 하지 않은 채 뒤돌아 가버렸다.


당황스러움이 지나가자 늦게 화가 올라왔다.

호수에게 다시 물었다.

정말 같은 반 아이가 맞냐고.

호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좀전의 그 아이는 호수에게 적대적이었다.

하지만 단 한 번의 장면만으로 아이를 단정할 수는 없었다.


찜찜한 마음으로 진료를 기다리던 그때,

그 아이는 다시 우리 쪽으로 와

또 한 번 호수에게 쏘아붙였다.


“나 쳐다보지 말라니까?”


아이 엄마인 내가 옆에 있는데도

이게 맞나 싶은 행동이었다.

나는 아이의 부모를 찾았다.

아이가 있던 쪽을 보며 물었다.


“혹시 아이 어머님이세요?”


“왜요?”


짧은 대답이 돌아왔다.


“따님이 저희 아이에게 와서 함부로 말을 해요.

하지 못하게 해주셨으면 합니다.”


정중하게 말했지만

그 말은 공기 속으로 흩어졌다.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병원이라는 장소가 나를 붙잡았다.

여기서 더 커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

참아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하지만 그 아이는 계속 몰래 호수를 놀리고 있었다.


요즘 세상에 남의 집 아이를 훈육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있었기에

나는 호수에게 말했다.


“보지 마. 그냥 무시해.”


그리고 아이를 내 쪽으로 끌어당겨 꼭 안았다.

아이 앞에서 언성을 높일 수도 없고,

병원에서 다툴 일도 아니었다.

참아야 했다. 참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안고 있는 팔 안쪽에서 화가 계속 끓어올랐다.

어디에도 흘려보낼 곳이 없었다.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온 후

호수는 병원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놀라지 않았냐는 물음에도

어린이집에서 누가 괴롭히냐는 질문에도

호수는 아무렇지 않은 듯

공룡 피규어를 들고 집 안을 뛰어다녔다.

나는 그 침묵이 더 마음에 걸렸다.




다음 날 아침,

호수 담임에게 전화를 걸었다.

밖에서 이 정도라면 어린이집 안에서는

더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실은 어제 병원에서…”


자초지종을 설명하며

그 아이가 누구인지, 원에서 혹시 그런 일이 있는지,

앞으로는 신경을 써달라고 말했다.

돌아온 대답은 뜻밖이었다.


“어머님~ 그런 일 절대 없어요~

원에서 호수를 얼마나 잘 챙겨주는 친구인데요.”


믿을 수 없었다.

병원에서의 그 아이는

분명 호수에게 적대적이었다.

하지만 한 번의 일로

문제를 키우고 싶지 않았던 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맺었다.


“그래도… 한 번만 더 지켜봐 주세요."


그때 담임이 덧붙였다.


“그리고 그 ○○이 어머님이 좀 세셔서요~”


무슨 뜻이냐고 묻자

아무렇지 않게 이런 말이 돌아왔다.


“소싯적에 좀 노신 분이라, 소위 일진? 그런 분이라

저희가 뭐라고 말씀드리기 좀 그래요~”


순간,

내가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일진 엄마가 무서워

아이의 행동을 전달하지 못한다?’

이게 교육현장에서 가능한 이야기인가


어이없는 통화를 끝내고

나는 다시 어린이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원장님과 통화하고 싶다고 했다.

담임의 이런 태도가 과연 맞는 것인지 묻고 싶었다.

자리에 없다며 전달하겠다는 말만 남겼지만

그날 저녁까지 전화는 오지 않았다.


원장에게서 전화가 온 건

다음 날 오전 열 시쯤이었다.

무슨 일인지도 모른 채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담임과의 통화 이후

내가 원장과 연결을 요청했다는 사실조차

전달받지 못했다는 말이었다.


담임과의 통화 내용을 그대로 전했고,

혹시라도 다른 아이들도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지는 않을지

그게 걱정된다고 말했다.


원장은 잠시 말을 고르더니

이렇게 말했다.


“제가 자세한 상황을 잘 몰라서요~

그래도 어머님이 많이 화가 나신 것 같으니

너무 죄송하네요~”


죄송하다는 말에 나는 오히려 화가 났다.
상황은 모르겠지만,
상대가 화가 나 있으니 일단 미안하다는 식의 사과
그 말에는 문제의 본질도,
아이들을 책임지는 태도도 없었다.


통화를 마친 뒤에도

담임에게서 별도의 연락은 오지 않았다.


내가 예민한 걸까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예민함을 감안하더라도

이 어린이집의 교사 대처는 납득할 수 없었다.

아이들을 위해 뭐든 하겠다던 사람들은

도대체 어디에 있었을까


이상하게도

그 이후부터 호수의 원 생활은 조금씩 달라졌다.

자리에 잘 앉아 있지 않으면 그냥 앉히지 않고,

공부 시간에도 혼자 두는 경우가 잦아졌다는 말을 들었다.

함께 하도록 다독이기보다

‘어쩔 수 없는 아이’로 한 발 물러난 느낌이었다.


물론 아이를 억지로 시킬 수는 없다.

하지만 노력조차 하지 않은

그냥 두고 본다는 말은 방치와 다르지 않았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마음속에서 아주 분명한 문장이 떠올랐다.


‘아, 여긴 아니구나.’

‘우리 아이가 다닐 곳이 아니구나."


그날 오후, 나는 퇴소를 결정했다.

한참을 망설이다

어린이집에 전화를 걸어 내 결정을 전했고,

돌아온 대답은 짧았다.


“네~ 알겠습니다~”


사실 나는, 일정 시간의 면담이나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에 대한

질문 정도는 있을 거라 예상했다.

안 좋은 감정을 최대한 담지 않으려 고른 말들이

잠시라도 오해 없이 전달되길 바랐던 터라

그 즉답은 생각보다 크게 남았다.


애써 고른 말들이 허공으로 흩어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모든 것이 이미 정해진 사람처럼

나는 아이의 손을 잡고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매일 등원하던 현관이 낯설었다.


아이의 물건들을 전달받기 위해

말없이 그 자리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원장이 밖으로 나왔다.


원장은 나를 향해 밝게 웃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화려하고 당당한 모습이었다.

웃는 얼굴이 소름끼치게 느껴진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어머님~ 7살인데 퇴소는 조금…

뭐, 어련히 잘 생각하셨겠어요~

조심해서 가세요~”


들어와서 이야기를 나누자는 말도 없었고,

호수를 향한 말 한마디도 없었다.


현관문 앞,

호수의 손을 잡고 서 있는 나에게

툭 던지듯 건넨 말이었다.


호수를 잡고 있는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뒷목이 뻐근해지고, 얼굴 아래에서 열감이 올라왔다.


그 말투,

그 표정,

그 미묘한 비아냥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나는 고개를 숙여 인사하지도 않았고,

뒤돌아보지도 않았다.

그곳을 나서며 든 생각은 단 하나였다.


그동안

우리 아이가 받았던 대접이

아마도 이 정도였겠구나.


그걸 깨닫는 순간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


그날 이후 나는 자주 생각한다.

아이를 키운다는 건

아이의 마음을 지키는 일이기도 하지만,

어른의 세계로부터

아이를 떼어내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