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두드리기 전
검사라는 말이 귀에 남은 채 며칠이 흘렀다.
흘렀다고 말하기에는
시간이 제자리에 걸려 있었던 것 같기도 했다.
호수는 여전히 웃었고,
여전히 내 옆에 있었다.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는데
내 눈에만 세상이 조금 다르게 보였다.
초등학교 앞을 지나다가 무심코 걸음을 늦췄다.
교문을 나서는 아이들은 시끄러웠고,
어른들보다 훨씬 분주해 보였다.
그 사이에서 호수의 모습을 자꾸만 떠올렸다.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 문 앞을 맴돌고 있었다는 걸.
다만 들어가지 않았을 뿐이다.
휴대폰에 저장된 번호들이
어느새 눈에 자주 밟혔다.
‘발달센터’,
‘아동심리’,
‘언어치료’
검색 기록은 쌓였지만
전화를 거는 손은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아이에게 붙는 단어 하나가
아이의 전부가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늦은 밤,
아이들이 잠든 뒤
혼자 불을 켜고 앉아
다시 검색창을 열었다.
‘ADHD’
‘느린 아이’
설명들은 구체적이었고,
공통점과 그렇지 않은 점들이
번갈아 눈에 들어왔다.
호수는 그 사이 어디쯤에 있는 것 같았다.
확신이 생기지 않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아직 아이를 데리고
그 문 안으로 들어간 적이 없었으니까.
그럼에도
다음 해면 학교에 가야 한다는 사실이
자꾸만 등을 떠밀었다.
말은 좀 더 해야 하지 않을까,
교실에 앉아 있을 수는 있을까
아무것도 모르면서도
한 가지 생각만은 분명해졌다.
더 미루면 이건 아이의 시간이 아니라
내 겁이 되는 거라는 것
다음날 아침,
저장해 두었던 번호 하나를 눌렀다.
통화 연결음이 울리는 동안
나는 숨을 고르고
또 골랐다.
마치
이 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노크하듯이
통화는 생각보다 짧게 끝났다.
상담 가능 날짜를 묻고, 아이 나이를 말하고,
이름을 남겼다.
전화를 끊고 나서도
한동안 휴대폰을 내려놓지 못했다.
내가 방금 한 일이 대단한 결단인지,
아니면 별일 아닌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상담 당일,
나는 호수를 데리고 가지 않았다.
처음부터 아이를 그 공간에 데려가는 것이
괜히 더 겁이 났다.
어른들만의 방에서 먼저 이 이야기를 꺼내고 싶었다.
센터는 생각보다 조용했다.
아이들 특유의 소란스러움보다는
파스텔톤으로 정돈된 아담한 곳이었다.
상담실에 들어서자
치료사는 웃으며 자리를 권했다.
“어머님은 아이에 대해
제일 오래 지켜보신 분이에요.”
그 말이 이상하게도 나를 더 긴장시켰다.
질문은 천천히 시작됐다.
언제 말을 시작했는지, 혼자 잘 노는 편인지,
낯선 환경에서는 어떤지
나는 최대한 담담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말끝마다 설명을 덧붙이고 싶어졌다.
‘원래는 이런 애가 아닌데’,
‘요즘은 좀 나아졌는데’
치료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메모를 했다.
그 침묵이 나를 더 솔직하게 만들었다.
“어린이집에서는
어떤 점이 가장 힘들다고 하시던가요?”
나는 물었던 일,
전화가 잦았던 날들,
선생님 곁에 있어야만
안정됐던 시간을 이야기했다.
말하다 보니
한 장면씩 떠올라 목이 자주 막혔다.
치료사는 잠시 생각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어머님이 말씀해 주신 걸로 보면
언어만의 문제로 보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그 말은 조심스러웠고,
확정적인 어조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내 귀에는 또렷하게 남았다.
언어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말
그동안 나는
말만 잘하면 괜찮아질 거라고 믿고 있었다.
조금 느릴 뿐이고, 조금만 더 기다리면
다 따라갈 수 있을 거라고
치료사는 말을 이었다.
아이에게는
자기 조절, 주의집중, 감정 표현 같은 것들도
함께 살펴봐야 한다고 했다.
설명은 길지 않았지만
내 마음은 생각보다 많이 흔들렸다.
“정확한 건 아이를 직접 만나봐야 알 수 있어요.”
그 말을 들었을 때
이상하게도 안도와 두려움이 동시에 밀려왔다.
아직 확정된 건 없다는 안도,
이제는 정말 피할 수 없다는 두려움
상담을 마치고 나오는 길,
센터 문을 열자 바깥공기가 조금 낯설게 느껴졌다.
나는 잠시 그 자리에 서서 숨을 고르다가
아이 얼굴을 떠올렸다.
아무것도 모른 채
어린이집에서 놀고 있을 아이
그날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계속 같은 생각을 했다.
이 문을 연 이상, 다시 닫을 수는 없겠구나
그리고 어렴풋이 알았다.
이제부터는 아이의 문제보다
내 마음을 먼저 마주하게 될 거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