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가 있는 호수 <2>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by 지영

다섯 살이 되던 해,
호수는 다니던 가정어린이집에 1년을 더 다니기로 했다.
원래라면 졸업을 하고 다른 곳으로 옮겨야 했지만
아직 기저귀도 떼지 못했고, 말도 유창하지 않은 아이를
더 큰 기관으로 보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내 아이가 못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기보다는
못하는 아이를 바라보는
어른들의 시선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물론 사랑으로, 기다림으로
아이를 품어주는 교사들이 더 많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조금 더 작은 곳,
조금 더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아이를 두고 싶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건 선택이라기보다 숨기고 싶은 마음에 가까웠다.
나에게만 시간이 멈춰줄 수는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때의 나는 호수의 시간을 그 자리에 잠시 묶어두고 싶었다.




하지만 가정어린이집의 특성상
또래는 적고 영아들이 많은 환경이었기에
호수가 친구들을 보고 따라 배우며 자랄 기회는
사실상 많지 않았다.
결국은 원래 나이에 맞게
부딪혀보는 것이 맞겠다는 생각에 이르렀고,
나는 마음을 다잡아 큰 어린이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집 근처에서 상담을 간 어린이집은
내가 알던 세계와는 달랐다.
규모가 컸고, 1층에는 수영장도 있었다.
가정어린이집만 경험해 본 나에게는
조금 과할 정도로 커 보였다.

상담 시간에 만난 원장님은
첫인상부터 화려한 사람이었다.

“안녕하세요, 어머님~”

자리에 앉자마자
준비된 자료와 파일들이 책상 위에 펼쳐졌다.
묻지 않아도 설명은 끊임없이 이어졌고,
커리큘럼은 그 자료들만큼이나 빽빽했다.

‘아, 큰 기관은 다르긴 다르네.’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입학지원서를 받아 들었다.

“호수가 큰 기관은 처음이라
잘 따라갈 수 있을지 걱정이에요.”

“어머님, 아이들은요.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잘해요.
다 하게 돼요.”

말투는 친절했지만 단호했고, 자신감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나는 그 확신이 부럽기도 했고, 조금은 부담스럽기도 했다.

사실 이미 몇 군데 상담을 다녀온 뒤였지만
마음이 딱 가는 곳은 없었다.
그럼에도 더 미룰 수 없다는 조급함에

나는 결국 결정을 했다.
호수는 그렇게 새 기관에 등원하게 되었다.

아이에게는 별다른 변화가 없어 보였다.
가면 가나보다, 안 가면 안 가나보다
그런 아이였다.
그래서 적응이 어렵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다.

문제는 다른 데서 시작됐다.




등원한 지 사흘째 되던 날 오후,
전화벨이 울렸다.
담임교사였다.

“어머님… 호수가 다른 친구를 물었어요.”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호수는 누군가를 해치거나
공격적인 행동을 하는 아이가 아니었다.

상황을 묻자
친구가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가져오려다
문제가 생겼다고 했다.
말로 의사를 표현하는 데 서툰 아이였으니
아마 행동이 먼저 나갔을 것이다.

집에 돌아와 아이에게 물었다.

“호수야, 오늘 왜 친구를 물었어?”

아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시 물어도, 또 물어도
시선만 다른 데로 흘릴 뿐이었다.

“친구 물면 안 돼. 말로 해야지.”

그제야 들릴 듯 말 듯
“응…” 하고 대답했다.

그럴 수도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타이르고 알려주면 나아질 거라 믿었다.

하지만 그날 이후 전화는 거의 매일 울렸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전화벨이 울리기 전에
이미 ‘죄송합니다’를 입에 물고 있었다.

상황은 매번 달랐지만 결론은 늘 같았다.
우리 아이가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
기저귀를 뗐고, 말도 조금씩 늘어
기본적인 의사소통은 가능해졌다.
나는 그것만으로도 아이는 자라고 있다고 믿고 싶었다.

정작 다른 문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는
끝내 닿지 못한 채
“아직 어려서 그래”라는 말로
하루하루를 넘겼다.



6살 내내
호수는 선생님의 밀착 케어가 필요한 아이였다.
친구들과 어울리면 문제가 생겼고,
선생님 곁에 있을 때만 비로소 안정된 하루를 보냈다.

그렇게 전화는 조금씩 줄었고,
호수는 7살이 되었다.

7살이 되면 학교에 갈 준비를 시작한다.
혼자 해야 할 일들이 늘고,
가만히 앉아 있는 시간도 길어진다.
그만큼, 아이의 어려움은 더 분명해진다.

상담 기간에 만난 7세 담임은
말끝마다 호수를 예뻐하며 숨을 고른 뒤 이렇게 말했다.

“어머님… 혹시 검사 같은 건 안 해보셨어요?”

아,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
이제는 더 이상 ‘남자아이라서’, ‘느려서’라는 말로
가려지지 않는다는 걸 나도 알고 있었다.

“발달센터 같은 곳에서
상담을 한 번 받아보시는 건 어떠세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만 하고 있었지,
정말로 그 문 앞에 서 본 적은 없었다.

상담실을 나와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이의 손을 잡고 있었다.
여전히 작고, 따뜻한 손이었다.
그 온기가 느껴지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애써 웃으며 뭐라도 말해야 했다.

“우리 호수가 어린이집에서
선생님 말 제일 잘 듣는다던데?”

긍정의 눈빛으로 아이는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뭐가 제일 재밌는지, 기억나는 소리는 무엇인지
아이는 모르쇠로 일관했지만
엄마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언제나 맞다고 했다.

그날 처음으로
‘조금 느린 아이’라는 말이
내 마음에서 힘을 잃기 시작했다.
아직은 확신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모른 척만 하고 지나갈 수는 없다는 걸
나도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