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가 있는 호수 <6>

엄마, 오늘 뭐 했어?

by 지영

우리 집 아이들은 자고 일어나는 시간이 이른 편이다.
아침 여섯 시 전후에 눈을 뜨고, 밤 여덟 시면 잠자리에 든다.
처음 듣는 사람들은 으레 묻는다.
엄청 이른 거 아니에요? 하고.

맞다. 이르다.
하지만 이 취침 시간에는 숨겨진 비하인드가 있다.

아이들이 지금보다 더 어릴 때,
나는 육아가 너무 힘들었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땐 그때대로 매일이 버거웠다.

아이들이 일찍 자면
이 힘듦에서 해방되는 시간이 조금은 빨라질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일부러 재우기 시작했다.

졸리지 않은 아이들을 데리고 방으로 들어가
“이제 자는 시간이야”라고 말하고,
눈을 감게 하고, 다시 말하고, 또 말하며
잠을 가르쳤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 했던가
며칠 그렇게 반복하니
이 작은 것들도 금세 익숙해졌다.
사람답게, 잠들었다.

그때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하, 드디어 혼자다.'
그 순간의 안도는 너무 솔직해서
미안함을 끼어들 틈도 주지 않았다.
그게 훗날 마음 한편에 오래 남을 줄도 모른 채

그렇게 길들인 취침 시간은
지금까지도 유효하다.
주말에도, 여행 중에도, 방학 중에도
예외 없이 밤 여덟 시면 잠을 잔다.

이른 아침 눈을 뜬 아이들은
각자 방에서 사부작거리며
엄마가 나오기만을 기다린다.
여섯 시 반, 내가 문을 열고 나오면
그제야 진짜 아침이 시작된다.

등원과 등교 준비로 집 안은 곧 전쟁터가 된다.
아직 혼자 씻기 어려운 호수를 씻겨주고 나면
아이는 혼자 방에 들어가 속옷과 옷을 꺼내 입는다.

호수에게 학교 갈 준비를 하라는 퀘스트를 입력해 두고
나는 호아의 등원 준비를 돕는다.
둘째는 샤워만 도와주면
그 뒤는 척척 알아서 해내는 고마운 아이다.

모든 준비가 끝난 뒤
간단한 조식을 배정하면
아침 전쟁은 어느 정도 마무리된다.

8시 35분, 알람이 울리면
호수는 가방을 들쳐메며 묻는다.

“엄마, 나 학교 갈 시간이지?”
“잠바 입어?”
“오늘 방과 후 하는 날이지?”
“신발 신어?”

매일 똑같은 질문의 메들리
그 질문들이 끝나야

“다녀오겠습니다.”

곧이어
“나 잘 다녀올게.”
“사랑해.”
까지 해야 진짜 등교 인사가 끝난다.

호수는 눈을 뜨는 순간부터
잠들기 직전까지
확인에 확인을 더한 질문을 한다.
매일 같은 질문을, 같은 순서로

이제는 알 때도 되지 않았나,
그만 좀 물어보지…
속으로는 늘 그런 생각을 하지만
어쩌면 그게 이 아이가
세상을 안전하게 붙잡는 방식이라는 걸
나는 알고 있다.

엄마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호수가 묻고 싶으면 묻는 것,
확인해야 하면 확인하는 것
직진을 고수하는 아이에게는 주변을 살필 여력이 없다.




그러던 어느 날,
조금 신기하고 이상한 경험을 했다.
학교에 다녀온 호수가 갑자기 나에게 물었다.

“엄마, 오늘 뭐 했어?”

그 질문 하나로 나는 잠시 멈췄다.
아이는 늘 자기 하루를 먼저 꺼내던 아이였다.
엄마의 하루를 묻는 일은
호수를 키운 십 년 동안 처음이었다. 울컥했다.
공기의 흐름마저 멈춘 것처럼 나는 잠시 망설였고,
당황한 나머지 대답 대신 되물었다.

“엄마 뭐 했냐고 물은 거야?”

호수는 가방을 내려놓고
옷을 벗으며 다시 물어왔다.

“엄마, 자고 있었어?”

“아니… 엄마 쉬고 있었는데.”

그 뒤로 나는
혼이 나간 사람처럼
오전 중 일과를 늘어놓고 있었다.

중문이 없는 우리 집 현관에는 간살 파티션이 있고,
겨울이라 방풍 커튼이 설치되어 있다.
아이가 문을 열고 커튼을 젖히며 들어오는 순간
얼핏 보인 것들
소파 위에 놓인 내 옷가지들
그 몇 가지로 아이는 엄마의 하루를 상상했을 뿐이었다.

보이는 것 몇 조각으로 엄마를 그려봤을 뿐인데
그 상상이 내 마음을 건드렸다.

호수는 엄마의 하루를
자기 방식으로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엄마가 궁금했구나?”

내 질문에 호수는 짧게 대답했다.

“응. 안아 줘.”

안아도 안아도 품에 다 차지 않는 몸
안고 있자니 호수는 늘 그렇듯 고백을 한다.

“엄마, 우주만큼 사랑해.”

우주는 호수가 아는 가장 큰 사랑의 단위다.
하루에도 수십 번 듣는 말이지만
그 말이 습관이든 아니든 나는 믿는다.
호수에게서 나오는 말들 중
이건 의심할 여지없는 절대 고백이니까

아이와의 대화는 때때로 어렵다.
아이는 늘 자기 세계에 있고,
나는 그 뒤를 따라 한참 늦게 도착한다.

그런데 요즘은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오히려 걱정이 사라진다.
‘내 안부를 궁금해했을 리 없는데’
같은 생각조차 할 틈이 없을 만큼
분석할 것도, 설명할 것도 없다.
지금 여기, 다름없이 존재하고 있으니까
분명한 건 아이는 자기만의 질서로 살아가며
그 안에 엄마인 나를 조용히 넣어두고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호수의 질문들은 답을 듣기 위해서가 아니라
늘 생각하고 있다는 신호였을지도 모른다.

그걸 알아차린 그날은 아무 일 없는 하루였는데,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