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방향으로 걷고 있었다.
우리 집에서 센터까지의 길은
차로는 삼, 사 분, 걸어서 가면 십 분 남짓이다.
물론 성인 보폭을 기준으로 했을 때의 이야기지만
호수는 걷는 걸 좋아한다.
풍경을 즐긴다거나 바람을 느끼기 때문은 아니다.
차에 타면 몸이 불편해지는 아이여서,
걷는 쪽이 훨씬 편했기 때문이다.
아기 때의 호수는 차에만 타면 잠들던 아이였다.
멀미 같은 건 걱정하지 않아도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아이가 크고 나서야
차 안에서 느끼는 불편함이 시작됐다.
처음엔 호수도 그 감각을 몰라
“토할 것 같아”라는 말로 표현했다.
나는 그게 멀미라는 걸 알았고,
멀리 나갈 땐 미리 재우거나
미리 약을 준비하는 쪽을 택했다.
이미 청개구리가 되어버린 아이에게
‘버텨보자’는 말은 잘 통하지 않았다.
그래서 호수는 걷는 걸 좋아하게 되었고,
힘들기보다는 재밌는 일로 받아들였다.
이런 걸 보면
엄마의 성향을 닮았나 싶기도 하다.
나는 특별한 목적 없이 걷는 걸 좋아하고,
생각이 많아질수록 발걸음이 느려지는 편이다.
이유는 다르지만 우리는 같은 방향으로 걷고 있었다.
어느 날, 딱 걷기 좋은 날씨에
호수와 센터까지 걸어가게 되었다.
아이의 작은 손을 쥐고 걷고 있자니
아주 오래된 장면 하나가 떠올랐다.
그때도 호수는 이렇게 작아 보였고,
나는 아이를 안고 있었지만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다.
한동안은 말이 되지 않았다.
기억은 있었지만 문장으로는 엮이지 않았고,
시간은 흐르는데 이야기는 멈춰 있었다.
그래서 나는 말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못했다는 편이 맞겠다.
그 시절의 나는
아이의 상처를 정면으로 바라볼 용기가 없었다.
지금은 조금 다르다.
내가 회상 속으로 잠시 깊어져도
내 손을 잡은 아이는 여전히 웃고 있다.
무슨 할 말이 저리도 많은지
조막만 한 입은 좀처럼 닫힐 줄 모르고
연신 곤충들의 이름을 늘어놓는다.
“엄마, 사마귀는 있잖아…”
곤충 서른 마리쯤 설명을 듣고 나서야
내가 말을 꺼낼 수 있는 틈이 생겼다.
“호수야, 이렇게 걷는 거 힘들지 않아?”
아이의 얼굴이 환하게 폈다.
“응! 하나도 안 힘들어.”
“엄마, 나 지금 행복해!”
아이들은 참 쉽게 ‘행복’이라는 말을 꺼낸다.
별다를 것 없는 하루에, 별다를 것 없는 길 위에서도
호수는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뭐가 그렇게 행복한데?”
호수는 기다렸다는 듯 대답을 쏟아냈다.
“엄마랑 손잡고 걷는 것도 행복하고,
센터 가는 것도 행복하고…”
서너 가지 이유를 말한 뒤 아이는 나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엄마도 행복해?”
그 질문 앞에서
엄마가 아이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대답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잠시 침묵했다.
아이의 행복을 듣고 있으면서도 내 대답이 망설여졌다.
조금만 더 생각하다간 눈물이 날 것 같아
나는 말을 돌렸다.
“호수야, 오늘 날씨 참 좋다.”
눈치채지 못해서였겠지만 아이는 더 묻지 않았다.
고마웠다.
엄마의 뒤편을, 아직은 궁금해하지 않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