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팽이가 있는 호수 <8>

이름을 얻은 날

by 지영

호수는 오지 않았으면 했던 여덟 살이 되었다.

입학을 앞둔 밤들은 유난히 길었다.
잠은 쉽게 오지 않았고, 고민이 깊어지는 쪽을 택했다.
아이는 점점 산만해졌고, 말들은 늘 한 박자씩 엇나갔다.
학교에 들어갈 준비는 나만 서두르고 있는 일처럼 느껴졌다.
아이의 시간과 내 시간 사이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간극이 벌어지고 있었다.

몇 날 며칠을 통화 버튼에서 망설이다
끝내 정신과에 전화를 걸었다.
예약이 가능한지 묻는 내 목소리는
허락을 구하는 사람처럼 조심스러웠다.

“어쩌죠. 소아정신과는 교수님이 한 분이시라….”

대학병원 소아정신과는 예약조차 어려웠다.
짧게는 일 년, 길게는 그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는 말에
결국 로컬 병원을 찾았다.
그 선택은 두려움이라기보다 결단에 가까웠다.
더는 미룰 수 없다는 생각이 나를 조용히 앞으로 밀어냈다.
호수의 어려움을 정면으로 바라봐야 할 시간이었다.

천천히 타이르고 가르치면 될 거라 믿어온 시간들.
어쩌면 그것은 나의 자만이었는지도 모른다.
아이를 과대평가한 것이 아니라, 아이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사랑’이라는 말로 덮어두고 있었던 건 아닐까.

병원 예약일 아침은 여느 날과 다르지 않았다.
둘째를 등원시키고, 일부러 천천히 준비했다.
서두르고 싶지 않았다.
문을 나서는 순간 지금의 호수가 사라질 것만 같아서,
다른 아이가 되어 돌아올 것만 같아서.

아직 어떤 진단도 듣지 않았지만,
내 생각은 바람이 멎은 들판처럼
한 방향으로도 움직이지 못한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병원은 생각보다 삭막하지 않았다.
깔끔했고, 지나치게 조용했다.
대기실 한가운데 TV에서는 아주 작은 소리로 뉴스가 흘러나왔고,
병원 이름의 글씨체처럼 의자들은 또박또박 줄지어 있었다.

“김호수 님, 보호자님과 들어오세요.”

호명에 정신을 차리고 노크를 한 뒤 진료실로 들어갔다.
정면에는 월넛색 책장이,
낮은 테이블 위에는 인형과 몇 가지 교구들이 놓여 있었다.
진료실 안쪽 데스크에는 나이가 지긋한 의사 선생님이 앉아 계셨다.

짧게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았다.
호수에게도 인사를 시켰지만,
아이는 낯선 공간이 신기한지
이곳저곳을 열어보고 만지며 자기만의 속도로 탐색을 시작했다.

“병원에는 어떻게 오시게 되셨나요?”

그 질문 앞에서 준비해 두었던 말들은 흩어졌다.
머릿속에서 여러 번 정리해 두었던 문장들이
입 밖으로 나오자 모양을 잃었다.

“아이가… 장난이 심한 건지, 산만한 건지….”

두서없는 설명을 듣던 의사는
아이를 잠시 두고 나가 있으라고 했다.
진료실 밖에서 건네받은 검사지는
ADHD 설문과 몇 가지 평가표였다.
질문 하나하나가 놀라울 만큼 호수와 닮아 있었다.
‘역시’라는 생각이 마음속에 천천히 자리를 잡을 즈음,
다시 들어오라는 말이 들렸다.

“아이는 ADHD가 맞고,
지적 능력 검사를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생각보다 담담했다.
오래전부터 마음 한편에서
이 말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이름을 얻은 셈이었다.

그저 산만하고 말 안 듣는 아이보다,
조금 불편하고,
조금 어려움이 있는 아이라는 설명이
엄마에게도, 세상에게도 덜 막막할 것 같았다.

호수는 새 장난감을 허공에 휘두르며
알 수 없는 흉내를 내고 있었다.
아이의 소리와 창밖을 지나는 차들의 경적이 겹쳐 울렸다.
잠시 정적이 내려앉을 것 같던 순간, 의사가 말을 이었다.

“현재로서는 약을 복용할 정도는 아니고,
지능 검사를 해본 뒤 다시 이야기 나누는 게 좋겠습니다.”

검사는 한두 시간가량 걸리는 웩슬러 지능검사였다.
아이의 인지 전반을 살피는 신뢰도 높은 검사라고 했다.
임상심리사는 아이의 생활 전반에 대해 질문했다.
자조 능력과 일상에서의 수행에 관한 것들이었다.
생각을 거듭할수록 못하는 것들만 떠올랐다.
대답을 할수록 시선은 자꾸 호수에게로 향했다.

지루해진 아이는 언제 집에 가냐고 물었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금방 끝날 거야.
선생님이 우리 호수가 얼마나 똑똑한지 궁금하신가 봐.”

호수는 대답하지 않고 돌아앉았다.
시작도 하지 않았지만,
아이의 불편함이 그 등 뒤로 전해졌다.
억지로 웃던 내 얼굴도 조금씩 굳어갔다.

검사가 끝나자 선생님은 크게 숨을 내쉬었다.

“집중이 잘 안 돼서 못한 문제가 좀 많네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은 한참 뒤에야 몸 안으로 내려왔다.

“전반적으로 또래보다 지능이 낮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결과를 종합해 봐야겠지만요.”

나는 결과지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종이 위 숫자들이 서서히 흐려지는 걸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마음 한편에 남아 있던 의아함에 마침표가 찍혔다.

그래서였구나.
그래서 이해하지 못했던 거구나.

결과지에는 지적장애 수준이라는
말이 몇 개의 숫자로 적혀 있었다.
시험지 정답을 미리 훔쳐본 기분이 들었다.

다만 몇몇 항목에서는 또래와 비슷한 수준이었고,
장애라고 단정하기도 정상이라고 말하기도 어려워
‘경계선 지능’이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는 상태.

경계선이라는 말은
아이보다 어른을 안심시키는 단어처럼 들렸다.
나는 여전히 설명하는 쪽에 남아 있었다.

아이들은 경험하고 배우면서 지능이 충분히 오를 수 있고,
입학 후 학교생활에서 어려움이 생기면
그때 약을 고민해도 된다는 말로 진료는 마무리되었다.

긴 시간이 끝나고 호수와 병원을 나섰다.
설명인지 선고인지 모를 말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엄마, 이제 집에 가?”

아이의 손을 꽉 잡았다.
여전히 호수였지만,
내가 다른 호수를 만들어버린 것만 같았다.
아이의 나이는 하나 늘었지만,
나는 한동안 아이를 같은 방식으로 부르지 못할 것 같다.
이름은 같았지만 설명은 달라졌고,
설명은 삶을 바꾸기도 하니까.

병원 문턱을 넘으며 무언가를 건넌 기분이 들었다.
다만 어디에 도착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집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학교에 다니는 호수를 떠올렸다.
별 탈 없이 초등학생이 되어버린 아이를,
나는 과연 만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