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없는 자리에
등굣길은 갓 입학한 아이들의 말소리로 가득했다.
몸보다 커다란 새 가방이 햇빛을 받아 반짝였고,
홍조 띤 얼굴마다 설렘과 긴장이 나란히 묻어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도 괜히 더 씩씩해 보이려 애쓰는,
1학년 새내기들이었다.
우리 동 끝자락, 놀이터 옆으로 난 계단을 오르면
길 건너로 학교가 보인다.
짧은 횡단보도 하나만 건너면 닿을 수 있는 거리.
고작 3분 남짓이었지만
혼자 어딜 다녀본 적 없는 호수는
어깨부터 잔뜩 굳어 있었다.
나는 애써 형님이 된 호수를 치켜세웠다.
용기를 심어주고 싶은 마음이 말보다 앞서 있었다.
“우와, 이제 우리 호수 초등학생이네?
이제 애기 아니야. 형님이다.”
실내화로 갈아 신는 동안에도
호수의 얼굴은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호수야, 잘 다녀와.”
응원을 가득 담아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큰 가방을 메고 있어도 여전히 한 품에 쏙 들어오는 몸.
사랑한다는 말을 끝으로 호수는 문 안으로 사라졌다.
나는 아이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걱정과 기대가 반반쯤 섞인 채로,
선뜻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적응 기간 3주 동안은
안내 선생님들이 아이들 반까지 동행해 준다고 했다.
4학년까지 다녔던 나의 모교였지만
너무 많은 것이 변해 있었다.
그래서인지 낯설었다.
내가 다니던 학교에 이제 내 아들이 다닌다는 사실이.
또래 아이들 사이에 섞여
호수도 제법 잘 지내주기를 바라며
나는 천천히 발걸음을 돌렸다.
아이들의 자라남은
어른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위대하다고 했던가.
그 말을, 오늘만큼은 내 아이에게도
조심스럽게 건네보고 싶었다.
집에 돌아온 지 얼마나 지났을까.
전화벨이 울렸다.
‘설마…’
확인한 화면에는
1학년 2반 호수 담임이라는 글자가 떠 있었다.
요동치는 심장을 부여잡고 전화를 받았다.
“네, 선생님!”
“안녕하세요 어머님, 저 호수 담임인데요…”
조금 상기된 목소리였다.
말끝마다 급함이 묻어 있었다.
“어머님, 지금 호수가 교실 밖으로…”
선생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호수였다.
“선생님, 호수 지금 집에 왔어요.”
잘 달래서 다시 데리고 가겠다는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아이는 현관에 서서 숨을 몰아쉬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 왔냐고 묻자 뛰어왔는지 거친 숨을 내쉬며
“그냥…”
이라고 말했다.
실내화를 신은 채 어찌할 바를 모르는 아이에게
잠시만 기다리라 말하고 급히 옷가지를 챙겼다.
다시 학교에 가야 한다는 말에
호수는 아무 말 없이 내 손을 잡았다.
학교 가는 길이 이렇게 멀었던가.
발걸음이 무거워서 시간까지 느려진 걸까.
아이의 손을 잡고 다시 걷는 학굣길은 유난히도 적막했다.
그날 이후로 호수의 탈출은 반복되었다.
수업 중 교실을 뛰쳐나가
층층마다 숨어 다니는 일이 잦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일도 더는 특별하지 않았다.
다시 데려다주는 일이 어느새 하루의 일정이 되었다.
전화가 울릴 때마다 아이의 모습은 사라졌고,
혹시 뛰다가 차에 치이지는 않았을지
끔찍한 상상이 먼저 앞섰다.
막막함은 하루에도 몇 번씩 쌓여갔다.
안되겠다 싶어 아이를 등교시킨 뒤에는
학교 후문, 강당 계단에 앉아 보초를 서기 시작했다.
적어도 후문 쪽이나 운동장 쪽은
내가 볼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처음에는 한 시간.
다음에는 두 시간.
어떤 날은 하교 직전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었다.
나조차도 어찌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타이르고 달래도 아이는 어김없이 사라졌고,
“죄송합니다”라는 말로는
이미 벌어진 이 민폐를 되돌릴 수 없었다.
유난스럽지만 않다면,
공부를 잘하지 못해도 괜찮으니
학교에 있는 시간만큼은
웃고, 떠들며 무사히 지내다 오기를 바랐다.
그렇게 하루를 버티다 보면
뭐라도 하나쯤은 아이에게 남지 않을까,
그 정도의 작은 희망이었다.
하지만 그 바람마저
하루에 한 겹씩,
조용히 벗겨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