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린이의 주식 투자 가설 검증
어렸을 적 강렬한 경험은 어른이 되어서도 큰 영향을 끼친다. 어디서 그런 소리를 들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지만, 주식하면 패가망신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아마 동네 어른들 중에서 주식으로 손해를 보신 분들이 많았던 것 같다. 어린 마음에 '주식 투자는 위험한 것이구나'라는 선입견이 생겼다.
주식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성인이 되어서도 많은 영향을 미쳤는데, 주식이나 펀드 등의 투자에 관심을 갖지 않게 되었다. 그저 은행 적금과 예금밖에 몰랐다. 은행에 꼬박꼬박 저금해 두면 때 되면 알아서 원금과 함께 이자까지 주는 데 왜 그렇게 고민하고 손해 볼 각오까지 하며 주식 투자를 하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랬던 내가 사회인으로 첫 발을 내디뎠을 때, 처음으로 주식 투자를 시작했다. 주식 투자에 흥미를 갖고, 주식에 투자를 하여 큰돈을 벌어보겠다는 마음 보단, 직장 동료들과 함께 어울리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 직장 동료와 선배들은 쉬는 시간이면 삼삼오오 모여 주식 종목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주식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외톨이가 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무슨 말인지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여전히 주식 투자에 대한 불신은 있었지만, 조직에서 소외되지 않기 위해 일단, 100만 원 정도로 주식 시작했다.
지금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동양종금(동양종합금융 증권)에서 처음으로 주식 계좌를 개설했다. 주식 개설 소식을 전하며 선배들의 조언을 구했다. 마치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비전을 전수받듯 비밀스레 종목 추천을 받았다.
마치 세상에서 종목 추천을 해준 선배와 나만 알고 있는 고급 정보인 것만 같았다. 추천 종목에 대한 자세한 분석 없이 과감하게 첫 번째 주식을 매수했다. 초보자의 행운이었을까, 며칠 만에 10% 이상의 수익을 얻었다. 기분이 정말 묘했다. 그토록 불신하던 주식에서 내가 불로 소득을 얻게 되다니…하지만 곧 낯선 나의 모습을 발견했다.
그 뒤로 나는 틈만 나면 핸드폰 주식어플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사실 투자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소액이었지만, 그래도 사회 초년생의 생돈 같은 내 돈이 들어가 있기에 마음이 쓰였다. 주식이 오르면 오르는 대로, 떨어지면 떨어지는 대로 핸드폰을 자주 보게 되었다. 핸드폰 액정 화면에서 수시로 변하는 그 숫자 때문에 감정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초심자의 행운이 끝나갔는지 그 주식 가격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일에 집중이 되질 않았다. 주식창을 확인할 때마다 떨어졌다. 결국 투자 원금 이하까지 떨어졌고, 더 이상의 손해를 볼 자신이 없어 손절했다.
그 이후로도 '카더라 통신'을 맹신하며, 주식 매수매도를 되풀이했다. 투자한 주식이 오르면 마치 세상에서 제일 훌륭한 투자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가도, 주식이 떨어지면 세상의 패배자, 낙오자가 된 것만 같았다. 이런 롤러코스터 같은 기분이 사실 썩 유쾌하진 않았다. 주식 가격이 올라 기분 좋은 것보다 이 롤러코스터 같은 기분이 더 불쾌했다. 그래서 과감하게 주식을 그만두기로 했다. 그렇게 여섯 달만에 주식과의 첫 만남은 약간의 수익(?)을 남기며 마무리했다.
주식은 더욱 남의 이야기가 되었다. 경기가 불황이든 호황이든, 코스피가 2천 포인트를 돌파하든, 3천 포인트를 돌파하든 남의 이야기였다. 대신 주식에 대한 투자보단 나 스스로에 대한 투자가 더 남는다는 생각으로 자기 계발에 열심히 투자를 했다. 많은 돈을 벌지는 못했지만, 자기 계발을 통해 지금 이렇게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작년에 110권, 올해는 약 140여 권의 독서를 하고 있다. 250여 권의 책 중 경제/경영 관련 도서의 비중은 약 50% 정도로 120권을 넘게 읽었다. 이렇게 비중이 높은 데는 사실 목적이 있었다. 올 해는 사업을 시작하고 싶었기에 때문이다.
대표이사는 사업에 대한 관련 지식과 정보뿐만 아니라, 회사의 재무제표를 읽을 줄 알아야 하고, 세무 회계 지식, 투자 관련 지식 등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관련 분야의 책들을 읽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책은 플랫폼 사업을 하기 위한 플랫폼 관련 도서들이었다. 이런 책들을 읽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플랫폼 사업을 하고 있다.
경제 및 투자 관련 책들도 많이 읽었는데, 이런 분야의 책을 읽었다고 내가 이 분야의 전문가가 되었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신문기사나 유튜브 경제 전문 채널에서 언급되는 내용들, 전문가들이 하는 말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정도가 되었을 뿐이다.
대부분의 스타트업 대표들이 사업을 시작할 때 주식 시장 상장을 염두에 둔다. 꿈은 커야 하지 않는가? 나 또한 내가 설립한 회사가 상장되는 꿈을 꾸고 있다. 굳이 상장 목적이 아니더라도 개인사업이 아닌, '법인'기업을 운영하는 대표자는 주식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 법인은 주식과 그 주식을 소유하고 있는 주주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이후, 주식 시장은 폭락을 거듭한 뒤, '동학 개미 운동'의 광풍이 불었고, 너도나도 주식 투자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한 수요를 반영한 덕분인지 시중에는 주식 투자 관련 책들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책 제목만 보면 책에서 시키는 대로만 하면 나도 곧 주식으로 부자가 될 것만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녹녹지 않다. 노력 없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
나는 고전을 좋아한다. 고전의 장점은 세월이 흐르면서 모든 것이 변하는 가운데에서도 살아남아 우리에게 전달되는 그 불멸의 생명력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감히 '진리'라고까지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진리에 가까운 통찰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현대적 주식시장만 봐왔기 때문에 주식시장은 현대에 와서야 생겨났다고 오해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주식 시장은 생각보다 그 역사가 오래되었다. 17세기 초, 유럽에서 아시아와의 해상 무역은 지금 말로 소위 로또였다. 동쪽으로 떠난 선박이 무사히 복귀하면 소위 대박을, 해적을 만나거나, 폭풍을 만나 돌아오지 못하면 소위 쪽박이었다. 이에 네덜란드 상인들은 위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최초의 주식회사(동인도회사)를 만들게 되었다. 이후 주식을 환불은 불가하나 투자자들에게 되파는 건 인정한다고 주주들에게 선언하게 되면서 최초의 주식 시장이 등장했다.
400년이 넘는 역사를 갖고 있는 주식시장이기에 주식 관련 책도 많다. 하지만 시시각각 변하는 주식시장을 예측하기란 그 시대의 천재들에게도 쉬운 문제는 아니었다. 만유 인력의 법칙을 발견해 낸, 아이작 뉴턴과 같이 천재적인 두뇌를 보유한 사람조차도 잘못된 주식 투자로 많은 손실을 입었다. 얼마나 호되게 당했는지 그 뒤, 뉴턴 앞에서 주식은 금기어가 되었을 정도였다.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주식시장답게 주식 관련 서적 중에도 고전이라 불릴만한 책들이 존재한다. 안타깝게도 고전 책들도 주식시장에서 특정 종목에 대한 예측을 정확히 하는 방법은 가르쳐주지 않는다. 하지만, 변동이 심한 주식 시장에서 수 세대가 지난 지금에도 읽히는 책이라면 읽어봐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 주식 투자를 대하는 자세와 태도, 시장을 바라보는 눈(통찰력)을 갖는 데 많은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마음으로 고전 책들 찾아 읽기 시작했다. 첫 번째 책은 벤저민 그레이엄의 '현명한 투자자'였다. 두껍다. 너무 두껍다. 그리고 초보자에겐 너무나 어려웠다. 솔직히 경제 및 주식에 대한 배경지식이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완독을 한 것만으로도 스스로 대견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책을 읽든 한 가지만이라도 얻는 것이 있다면 그 책은 나에게 성공한 책이라는 생각이 하고 있다. 그런 관점에서 이 책은 성공적이다.
다음으로 읽은 책은 앙드레 코스톨라니의 '돈, 뜨겁게 사랑하고 차갑게 다루어라'였다. 700페이지가 넘는 책을 읽은 뒤여서 그런지, 상대적으로 술술 읽혔다. 하지만 결코 쉽게 볼 수 있는 책은 아니다. 책 속 한 문장 한 문장 속에는 작가의 수 십 년의 성공적인 투자 철학이 깃들여져 있기 때문이다. 이런 책들은 의도적으로 읽는 속도를 늦춰, 곱씹으면서 읽어야 한다. 그렇게 100여 권의 경제 관련 책과 주식 투자 관련 고전 책들을 읽었다.
아직도 책을 읽어나가는 중이긴 하지만, 그들이 공통적으로 말했던 것들을 실험해보고 싶었다. 약간의 여윳돈을 활용해 두 번째 주식 투자를 시작하였다. 확실히 첫 번째 주식 투자와는 많이 달랐다. '카더라 통신'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시장 및 종목 분석을 했다. 스스로 정한 기준에 부합하는 종목들을 선별한 뒤 적절한 시점이라고 생각한 시점에 주식 매수를 했다. 핸드폰 주식창에서 눈을 떼지 못했던 그때와는 확실히 달랐다. 주식 시세 확인은 하루나 이틀에 한 번이면 충분했다.
주식 매수를 하기 전 스스로 설정한 가설을 체크했다. 가설 검증을 통해 내 가설이 잘못되었다고 판단했을 때는 바로 가설을 수정하거나, 주식을 매도했다. 주식이 오르더라도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면 과감히 매도했다. 나도 사람인지라, '더 보유하고 있었으면...' 이런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이미 내 손을 떠난 것은 내 것이 아니다. 과감히 포기해야 한다.
이번 단계에서 내가 검증하고 싶었던 가설은 이미 검증되었다. 목표로 했던 수익도 발생했다. 투자 금액이 많지 않았기에 높은 수익률에 비해 수익금은 미미했다. 다만, 코스톨라니가 말했듯, 투자를 통해 돈을 번 것 자체도 기분이 좋지만, 그것보단 가설을 세우고, 그 가설을 검증해 나가는 과정 자체가 즐거웠고, 거기에 더해 내 가설이 맞았을 때는 세상 행복했다.
'내가 투자를 해서 성공하면, 단순히 돈을 벌었기 때문에 기쁜 것이 아니라 내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생각보다 올바르다는 것이 입증됐기 때문에 기쁜 것이다.
- Adnre Kostolany -
사업을 하면서, 사업도 주식 투자와 비슷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사업가는 사업에 대한 아이디어를 갖고 발전시킨다. 이후 비즈니스 모델을 설정하면서 사업에 대한 가설을 세운다. 사업은 결국 가설을 검증해나가면서 머릿속에 있던 아이디어를 현실로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다. 사업가의 비전과 비즈니스 모델이 좋다면, 보다 많은 사람들을 참여시켜 더욱 빨리 목표를 달성할 수도 있다.
우리는 시공간 속에서 현재를 살기 때문에 현재와 과거는 볼 수 있지만, 미래를 볼 수는 없다. 다만, 과거와 현재를 분석해 미래를 예측해보는 것은 가능하다. 사업과 투자를 하기 위해선 과거와 현재를 자기만의 방법으로 분석하여, 미래에 대한 가설을 세워보는 것이 중요하다. 아무리 훌륭한 주식 투자 기법을 알고 있다 하더라도 내 것으로 만들지 못하면 결국 아무 소용이 없게 된다. 자기만의 비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주식 투자를 포함한 그 어떠한 투자를 하기 위해선 공부를 해야 한다. 공부가 선행되지 않으면 10년 전 나처럼 묻지 마 투자를 하게 된다. 사실 이는 투자라기 보단, 투기에 가깝다. 투자 기법에 대한 공부도 중요하긴 하지만 그보다는 먼저 투자에 대한 나만의 철학과 태도를 가져야 한다. 그 뒤 시장과 종목을 분석하여 스스로 그 분야에 대한 통찰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가설 설정을 해보는 것이다. 물론 내가 설정한 가설대로 움직이는 종목은 절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장기 투자를 한다 해도 가설이 올바르게 작동하는지 지속적으로 점검해 봐야 하는 것이다.
나는 현재 전문 투자자도 아니고, 앞으로도 전문 투자자가 될 생각은 없다. 다만, 사업을 시작하며 사업을 함에 있어 투자 관련 지식이 필요했고, 이론적인 지식 획득뿐만 아니라 실행을 통한 경험적 지식을 쌓고 싶어 투자 분야의 하나인 주식 투자를 해 본 것이다. 단지 얄팍한 지식을 활용해 특정 산업, 특정 종목들에 대한 나만의 가설을 세워봤고, 그 가설 검증이 완료되었기 때문에 주식을 매도했다.
고전 책에서 언급되었듯이, 이러한 투자 과정 자체가 재미있었다. 이제 새로운 가설을 세우기 전까지 잠시 투자를 쉬겠지만, 공부를 계속해서 좀 더 발전된 투자 가설을 세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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