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대한 해상도를 높이는 엔트로피 세계관
학창 시절 수재 소리 들을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공부를 곧잘 했다. 하지만 나에게 깊은 좌절을 안겨준 과목이 있었으니, 바로 '물리'였다. 문과생이었다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겠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이과생이었다. 물리법칙들에 대한 이해 없이 암기만 하려고 했으니, 성적이 좋을 리가 없었다. 그러니 당연히 재미도 없었다. 악순환이었다. 물리책은 흡사 외계어로 쓰인 책처럼 느껴졌다. 뉴턴, 아인슈타인이 원망스러웠다. 왜 그런 법칙들은 발견해서, 시련을 줬을까... 그렇게 고등학교 3년 동안 괴롭힘을 당했다. 그런데 이런 '물리 기피 현상'은 나뿐만은 아닌 것 같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의 물리 I 선택 요인 분석, 이상하, 최혁준. 2013] 연구 논문에 따르면 수능에서 과학탐구 증 선택과목으로 물리과목을 선택한 비중이 제일 낮았다고 한다. 이과생 수 자체도 줄어들고 있는 판국에, 이과생들로부터도 외면받고 있는 물리라니... '물리 기피 현상'은 생각보다 더 심각한 수준으로 보인다.
이러한 '물리 기피'현상은 물리라는 학문이 어렵기 때문이다. '찐' 문과생뿐만 아니라 물리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물리학자들에게도 물리는 어려운 학문이다. 오죽하면 21세기 천재 물리학자 중의 한 명이었던 리처드 파인만은 물리학의 한 분야인 '양자역학'을 두고 이런 말을 했다.
다른 건 몰라도 양자역학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단 한 명도 없다는 것만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학창 시절 거의 혐오 수준으로 싫어하던 물리과목을,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19년 만에 다시 관심을 갖게 되었다. 6~7년 전쯤, 읽었던 책에서 추천도서로 적혀있던 '코스모스'라는 책을 구매를 했다. 하지만 너무 두껍고 내용이 어려워 그 당시의 나의 지식수준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아 책장에 고이 모셔두었다. 한 달 전 우연한 계기로 다시 읽게 되었는데 여전히 대부분의 내용은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이상하게도 독서 진도는 나갔다. 그렇게 그 책을 2 회독하고 나니, 천문우주, 물리, 화학, 생물, 지리학 등 자연과학에 관심이 생겼다. 그 뒤 궁금한 것이 많은 어린아이처럼 '왜? 어떻게?'라는 질문을 계속하였다.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관련 책들을 읽었다. 그렇게 엔트로피에 대해 알게 되었고, 이렇게 글까지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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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듯, 알고 보니 물리가 어려운 것도 다 이유가 있었다. '물리학'을 영어로는 "PHYSICS"라고 한다. '자연'이라는 뜻을 가진 그리스어 ‘physis’와 '학문'을 뜻하는 ‘–ics’의 합성어다. 즉, 물리학은 수학과 함께 우리를 쌍으로 힘들게만 하는 학문이 아닌, 자연에 대한 보편적 지식(앎)을 추구하는 학문이다. 자연에서 주기적, 반복적, 공통적으로 일어나는 현상들을 연구하여 법칙을 발견하는 학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물리학을 이해하려면 우리가 사는 세상과 그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들에 관심이 많아야 한다. 자연이란 얼마나 위대한 존재인가? 그 존재를 이해하는 학문이기에 그토록 어려웠던 것이다. 그저 순전히 암기만 해서는 안 되는 학문이었다. 물리학의 다양한 물리법칙들은 우리의 살고 있는 세상과 우리의 삶이 따르는 법칙이었다.
나 또한 물리학을 잘 이해하지 못하기에 물리법칙들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논하고 싶지는 않다. 뉴턴, 아인슈탄인, 하이젠베르크, 파인만, 보일 등 수많은 천재 과학자들에 의해 이미 검증된 물리법칙들을 그저 이해하고 우리의 삶에 적용하면 된다.(이해도 쉽지는 않다)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야 한다. 인류학자 막스 글루크만(Max Gluckman)은 "과학이란 우리 세대의 가장 어리석은 사람조차 지난 세대의 천재보다 앞서갈 수 있는 학문을 말한다."라고 말했다.
물리학의 다양한 법칙들 중 우리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고, 삶의 태도와 방식에 대해 고민해 볼 수 있는 법칙이 있다. 바로 엔트로피의 법칙이다. '엔트로피'의 저자 제러미 리프킨은 엔트로피에 대한 세계관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책에서 '엔트로피 법칙은 특별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 힘은 워낙 절대적이어서, 이 법칙을 충분히 이해하기만 하면 인생관이 바뀔 것이다. 이렇게 거의 신비스러울 정도의 매력이 있기 때문에 엔트로피 법칙은 받아들이기조차 두려운 것이다.'라고 말했다.
세계관을 바꾸기 위해선 우리가 오랫동안 진리라고 믿어온 것들을 그 뿌리부터 흔들어야 한다. 근본부터 변화를 주어야 하기 때문에 당연히 어렵고, 때론 거부감마저 든다. 아마 몇 백 년 전,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도 그랬을 것이다. 하늘이 지구를 중심으로 돈다고 철석같이 믿었는데, 지구가 태양을 돈다니... 내가 그 당시에 살았었다 해도 미친 사람의 헛소리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사람들이 그 새로운 진리를 받아들이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세계관이 바뀌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어느 한 과학자의 낯선 주장이 아닌, 수많은 과학자들에 의해 증명된 법칙이라면 우리는 사실로 받아들여야 한다.
엔트로피를 이해하기 위해 우선 열역학 제1법칙과 제2법칙부터 알아야 한다. '열역학'이라는 단어부터 생소하다. 하지만 '열역학'은 단순하게 '열'과 '일'을 연구하는 학문 정도로만 이해하면 된다. 열역학에는 몇 가지 법칙들이 있는데, 가장 중요한 열역학 1법칙과 2법칙만 알아도 된다.
열역학 제1법칙 : 우주의 에너지 총량은 일정하다. 에너지 보존의 법칙
열역학 제2법칙 : 엔트로피의 총량은 지속적으로 증가한다.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
제1법칙은 간단히 말해 에너지는 결코 창조하거나 파괴될 수 없으며, 한 가지 형태에서 다른 형태로 변환될 때 그 총량은 일정하다는 말이다. 열역학 제2법칙은 엔트로피 증가 법칙이라고도 하며, '고립된' 계(세상, 환경 등)에서 엔트로피는 항상 증가한다는 것을 말한다. '고립된 계'란 우주와 지구를 포함한 이 세상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이 세상에서 에너지는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변할 때마다 일할 수 있는 유용한 에너지는 손실된다. 그 손실된 것을 가리키는 용어가 바로 '엔트로피(ENTROPY)'다. 엔트로피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별명을 붙여주면 좋다. '무질서', '폐기물', '쓰레기', '오염물질' 등의 별명이 좋겠다. 다시 설명하면, 이 세상에서 유용한 에너지들은 계속 손실되며, 그로 인해 엔트로피(무질서, 폐기물, 쓰레기 등)는 점점 증가한다.
열역학 제1법칙과 2법칙은 자동차 엔진을 통해 쉽게 설명될 수 있다. 자동차는 연료(휘발유, 경유 등)라는 화학 에너지를 자동차 엔진(열기관)에서 연소시켜 움직인다. 화학에너지는 열에너지로 전환되고, 이 열에너지는 운동에너지로 전환되어 자동차를 움직이게 한다. 운동에너지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일부 열에너지는 밖으로 방출되어 빠져나가고, 다른 일부는 엔진이 돌아갈 때의 소리에너지로도 전환된다. 즉, 휘발유를 연료로 자동차 엔진을 가동할 때, 엔진과 연결된 바퀴를 굴러가게 할 수 있지만, 방출되는 열에너지로 인해 보닛이 뜨거워지고, 소음을 유발한다. 또한 매연을 방출한다. 방출되는 열에너지와 소리에너지는 에너지로 분류되지만 다른 일을 하는데 쓸 수는 없다. 자동차 소음으로 무슨 일을 하겠는가? 방출되는 열에너지 또한 다시 운동에너지로 쓰일 수 없다.
우리는 공간 이동을 위해 자동차를 타고 이동한다. 이때, 자동차를 움직이게 만드는 유용한 에너지는 자동차가 움직임에 따라 일을 하기에 부적합한 에너지(소음, 열, 매연 등)로 전환된다. 즉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엔트로피가 증가한다는 것은 유용한 에너지가 감소한다는 의미기도 하다.
엔트로피라는 용어는 1865년 독일의 이론 물리학자인 루돌프 클라우지우스(Rudolph Julius Emanuel Clausius)가 처음 고안해 냈다. 이 말은 그리스어 'energie + trope(turning) + y'의 합성어로부터 유래된 것인데 '에너지 변화'를 뜻한다. 어원만 이해하고 넘어가자.
엔트로피는 우리 일상생활에서도 그 예를 찾을 수가 있다. 간단히 우리의 방을 예로 들어보자. 방을 청소하거나 물건을 정리하는 일체의 행동을 하지 않고 일주일 정도, 그냥 내버려 둬 보자. 일주일 뒤 심한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의 방은 당연히 어질러져 있을 것이다. 이게 바로 열역학 제2법칙이다. 너무 쉽지 않은가? 당연히 어질러지는 게 열역학 제2법칙이라니... 우리가 에너지를 투입하여 어떤 조치를 취하지 않는 한, 방은 무질서하게 어질러지게 되어있다. 방은 스스로 깨끗해지지 않고, 널브러진 옷가지들은 스스로 정리되지 않는다. 내가 하든, 부모님이 하든, 로봇 청소기가 하든 누군가는 에너지를 투입하여 방바닥을 쓸고 닦아야 하고, 널브러진 옷을 개서 옷장에 넣어야 한다.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을 거슬러야 한다. 그래야 질서가 생기고 정리가 된다.(엔트로피를 감소시키는 활동 또한 어딘가에서 엔트로피를 증가시킨다. 하지만 이 정도만 이해하자)
'어질러짐', '더러움', '널브러진 옷가지들' 등이 바로 '엔트로피'다. 자연스러움이라고 이해해도 좋을 것 같다. 엔트로피는 이렇게 늘 증가하는 방향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 뜨겁게 조리된 음식은 그냥 두면 자연스럽게 식고, 더 오래 두면 상하게 마련이다. 이렇게 우리가 자연스럽다고 알고 있는 현상들은 열역학 법칙으로 설명이 된다. 엔트로피 법칙은 자연의 이치와 삶이 돌아가는 원리를 설명할 수 있게 되고 세상을 보는 화질을 보다 선명하게 만든다. 그래서 우리는 엔트로피를 알아야 하고, 어렵겠지만 이해하여 우리 삶에 적용시켜야 한다.
엔트로피 법칙은 자연의 이치와 삶이 돌아가는 원리를 설명할 수 있게 되고 세상을 보는 화질을 보다 선명하게 만든다.
다시 한번 말하자면, 엔트로피는 고립된 계(세상, 환경 등)에서 증가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하지만 유일하게 엔트로피를 감소시킬 수 있는 경우가 있는 데, 고립되지 않은 개방된 상태일 경우다. 이 개방된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바로 '생명체의 활동'이다. 사람을 포함한 생명체는 주변 환경으로부터 에너지(산소, 음식 등)를 흡수하여 얻은 자원을 에너지로 전환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우리는 죽지 않고 살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생각이나 행동을 할 때, 심지어 가만히 누워만 있어도 에너지를 소비한다. 에너지 투입 없이 이렇게 계속 소비만 하다간 엔트로피가 최대가 되는 평형 상태에 이르게 되고,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 즉, 우리 인간은 열역학 제2법칙에 저항하여 끊임없이 엔트로피를 줄여나가며, 질서 있는 상태가 되기 위해 애쓰는 과정을 통해서만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죽음이라는 것은 우리가 '고립된' 상태, 즉 이 세상과 더 이상 상호작용을 하지 못하는 상태, 엔트로피가 최대가 되는 평형상태에 이르게 될 때를 말한다.
우리는 우리 주변 환경의 소중함을 곧 잘 있고 산다. 너무나도 당연히 태양은 항상 하늘에 떠있고, 우리가 숨 쉴 수 있는 공기는 언제나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평범한 일상은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외부의 에너지가 지속적으로 우리에게 투입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죽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우리를 둘러싼 세상이 우리에게 끊임없이 에너지를 공급해주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의 삶 다양한 곳에서 엔트로피를 찾아보고 적용시켜보자. 나이를 먹어 감에 따라 늘어나는 체중은 어떨까?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체중이 느는 게 자연스러운가? 체중이 감소하는 게 자연스러운가?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현대 사회에선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체중이 느는 게 자연스럽다. 체중이 느는 것을 엔트로피가 증가했다로 이해할 수 있다. 엔트로피를 감소시켜야 한다. 가만히 뒀다간 엔트로피가 극대화되는 상황, 즉 평형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엔트로피를 감소시키기 위해 우리는 '운동'이라는 에너지를 투입할 수 있다. 운동을 통해 체중을 감소시킬 수 있고, 체중이 감소한다는 것은 엔트로피가 감소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변화는 점진적으로 일어난다. 운동을 해도, 운동을 하지 않아도, 그 변화를 즉각적으로 깨닫기는 어렵다. 하지만 엔트로피 법칙에 따라, 운동이라는 에너지를 투입하지 않으면 엔트로피(체중)는 늘어만 갈 것이다.
엔트로피 법칙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평범한 삶이 결코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의 삶을 영위하게 해주는 이 세상의 소중함에 대해 고마워할 줄 아는 마음과 함께 엔트로피를 감소시키는 활동을 왜 해야 하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