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를 위해 필요한 4가지
사람들은 매년 연말이 되면 지나온 한 해를 마무리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인다. 누구나 시간은 빠르게 흘러간다 말은 하지만, 사실 우리는 시간에 대해 능동적인 인식을 하기 전까지는 시간의 빠름을 항상 잊고 산다. 1년을 함께 한 달력에 남은 숫자가 얼마 남지 않았을 때, 그걸 인지했을 때, 그때만큼 시간의 빠름에 대해 절실하게 느끼는 시간은 없을 것 같다.
올 한 해도 정말 빨리 지나갔다.
연말에는 모임을 해야만 하는 법이 있는 것도 아닌데, 연말에는 모임이 많고, 또 그 모임 참가를 거절하기도 쉽지 않다. 아마도 이번에 만나지 못하면 올 해는 더 이상 만날 수 없다는 마음이 작동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올 해가 지나가기 전에 많은 타인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한 해를 마무리한다. 하지만 타인과의 연말 마무리로 인해 정작 중요한 자신과의 연말 마무리를 할 수 있는 골든 타임을 놓치지 않았으면 한다.
자신과의 연말 마무리는 연초에 세웠던 계획들을 최종 점검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연말이면 각 방송국에서는 한 해 동안 열심히 활동했던 방송인들을 대상으로 각종 시상식을 개최하여 그들의 노고에 대해 감사 인사를 한다. TV로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들이 상을 받는 것을 보는 것도 좋지만, 이 시간을 한 해 동안 고생한 나를 위해 연초에 세웠던 계획들을 얼마나 달성했는지 최종 확인을 하고. 잘 한 부분이 있다면 스스로에게 상을 줘도 좋을 것 같다.
2021년 초, 나는 몇 개의 목표와 계획을 세웠다. 그중 한 가지는 '매달 10권 이상 독서, 1년 150권 독서'였다.
작년엔 110권 정도의 독서를 했기 때문에 작년보다 향상된 목표를 갖고 싶기도 했고, 올해 중반엔 사업을 시작할 계획도 갖고 있었기에 150권을 목표로 설정했다. 이런 목표가 있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치열하게 독서를 했다. 한 달에 20권을 넘게 읽었던 달도 많았다. 약간의 과장을 더하면,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그렇게 상반기에는 100권의 독서를 했고, 7월에는 창업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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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생활을 할 땐, 출퇴근으로 인해 소비되는 시간, 업무 시간, 회식과 접대 등으로 퇴근 후에도 시간을 소진해야 했기에 자유롭게 책을 읽을 수가 없었다고 생각했다. 독서를 한창 할 때는 정말이지 책을 읽을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그저 어디론가 떠나 원 없이 책을 읽고 싶었다. 그래서 창업을 하면 독서를 마음껏 할 생각이었다. 창업을 하면, 출퇴근으로 낭비되는 시간을 절약하고,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독서하고 싶을 때는 자유롭게 독서를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하반기에도 100권의 독서를 해서 올 해는 200권이 넘는 독서를 할 줄 알았다.
착각이었다. 그것도 심각한 착각이었다.
기업은 그 규모와 상관없이 시스템이라는 것을 보유하고 있다. 이 시스템이 있기 때문에, 사람이 바뀌어도 큰 타격을 입지 않는다. 하지만 창업 기업은 그 시스템이 없기 때문에 처음부터 만들어야만 한다. 시스템을 만들어내느냐 만들어내지 못하느냐에 따라 기업의 생존이 달려있다. 이 중요한 시스템을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창업 후 3~4달 동안은 주말도 없이 일을 했던 것 같다.
이렇게 바쁜 와중에도 독서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독서는 이미 습관으로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부족한 것이 너무 많았기에 독서를 통해 어느 정도는 부족한 부분을 메꿀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읽은 책 권 수가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11월에는 고작 5권 밖에 읽지 못했다. 사실 5권 밖에 읽지 못한 것을 인지한 것도 얼마 전이었다. 대체 11월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 5권 밖에 읽지 못했을까?
독서를 하기 위해선 3가지가 필요하다.
1. 책
2. 시간
3. 의지
이 중 하나라도 없으면 책을 읽을 수 없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11월의 나에게는 이 세 가지가 부족하진 않았던 것 같다. 책은 항상 넘치게 있었고, 시간도 충분했다. 직장 생활을 할 때 물리적인 독서시간이 부족했을 때조차 자투리 시간을 쪼개서라도 읽었다. 시간이 부족하다는 건 핑계일 뿐이었다. 책을 읽겠다는 의지는 항상 충만했다. 이 세 가지가 충분한데 대체 무엇이 없었기에 책을 읽지 못했을까?
11월 27일은 창업 후 첫 발주서를 수령한 날이다. 이 말은 반대로 이전까지는 단 한 건의 발주도 없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시간은 계속 앞으로 전진하는 데, 기존 계획과 달리 발주 시점은 점점 늦춰지고, 통장의 잔고는 점점 줄어들었다. 줄어든 통장 잔고만큼, 내 마음의 여유도 점차 사라졌다.
누가 나를 쫓아오는 것도 아닌 데 흡사 물건을 훔치고 도망가는 도둑이 된 것처럼 조급한 마음이 들었다. 조급한 마음은 기존에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미래를 그려보게 만들었다. 법인 통장의 잔고는 곧 '0원'이 될 것만 같았고, 신용불량자가 될 것만 같은 생각에 빠졌다. 이런 마음이 나를 지배하고 있었으니, 책이 눈에 들어올 틈이 없었던 것 같다. 이 와중에도 5권의 책을 읽은 게 오히려 신기할 따름이다.
첫 발주서를 접수하고 처리를 한 뒤, 이어 두 번째 발주서도 접수되었다. 그제야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이 모든 것을 분명히 예상했고, 그에 대한 준비도 철저히 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그 상황이 되니 상황 자체에 매몰되어 앞뒤 분간이 잘 되질 않았던 것 같다. 충분한 책, 시간, 의지가 있었음에도 나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책을 읽을 수 없었다.
결국 독서를 하기 위해 필요한 건 4가지다. 책, 시간, 의지, 마음의 여유
멀리 서는 대부분의 것들이 아름다워 보인다
- 기사단장 죽이기, 무라카미 하루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