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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상인 Nov 21. 2021

위기는 기회다!
기회를 쟁취하는 방법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하지만 그것을 극복하는 사람들도 가득하다.' 헬렌 켈러의 명언이다. 이외에도 우리는 인생은 원래 고통스럽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그러고 보면 언제나 인생은 외줄 타기와 같다. 순간의 실수가 곧 큰 부상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역사에서는 부상 정도가 아니라 그냥 죽음으로 이어지기도 하니. 우리는 참 이런 위기 상황에 떳떳이 직면하기 어렵다. 실패는 성공에 어머니라지만 그 대가가 너무나도 쓰라리다. 하지만, 그런 위기 상황이나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면? 혹은 솟아날 구멍을 찾을 수 있다면? 어떻게 찾아야 할까? 오늘은 갈리아인의 침입으로 위기에 봉착한 로마의 이야기를 통해 솟아날 구멍을 찾아보고자 한다.


 어찌 보면 작은 패배들은 몇 있었겠지만, 큰 패배를 맛보지 않던 로마에도 큰 패배가 찾아왔다. 바로 갈리아의 침입이다. 그리스 사람들은 켈트라 부르고 로마인들은 갈리아라고 불렀다고 한다. 어쨌든 유럽의 모든 '족'을 모두 외우기에는 너무 방대하기도 하니,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지나가도 좋다. 하지만 갈리아인은 앞으로도 자주 만나게 되니 갈리아는 기억해 보자. 어쨌든, 갈리아가 이탈리아 북부로 정착을 하고 이어 남하하기 시작한다. 이에 로마와 동맹을 맺고 있던 다른 국가들에게 피해를 입히게 되었다. 자연스레 동맹인 로마에 도와달라 요청을 했다. 로마는 사실 아직 자기네까지 시급한 상황이 아닌지라 굳이 나설 이유를 못 느꼈었다 한다. 결국, 인사 치례하는 양 '우리의 동맹을 건드리지 말아 달라'라고 사절단을 보냈건만. 이후 돌아오는 갈리아의 답은 조금 달랐다. '땅을 할애해 주면 건드리지 않겠다. 아니면 피로 땅을 쟁취하겠다'였다. 이 이야기를 들은 로마 사절단이 화가 났는지. 그 자리에서 갈리아 족장을 죽여 버린다. 이에 단단히 화가 난 갈리아인들은 로마에 복수를 꿈꾸기 시작한다. 결국, 삽시간에 로마 북부에서부터 치고 내려온 갈리아인들은 로마까지 진격해왔다. 문제는 로마가 저항하려야 저항할 수 없을 정도로 참담한 상황이었다 한다. 고심 끝에 로마를 버리고 다른 곳으로 가서 농성하기로 마음을 먹었으니 말이다. 로마에 남아 있던 사람들은 명예로운 죽음을 위해 남아있던 사람들뿐이었다. 얼마나 갈리아인들이 어이가 없었는지. 처음엔 이게 전략인가 싶어 엄청 조심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윽고 이게 전술이 아닌 것을 알고는 무차별적으로 도시를 초토화 시키고 있었다. 로마인 이야기에서는 '갈리아인들은 모두 시민이 아니었기에 도시 사용법을 몰랐다'라고 이야기를 덧붙인다. 그러니, 도시 생활에 싫증을 느꼈다고 한다. 뭐 어쨌든, 로마는 초강수를 두는데, 내쫓았던 카밀루스에게 독재관을 맡기며 로마의 위기를 탈출하고자 했다. 카밀루스는 뛰어난 전략가였다. 그렇게 갈리아인들을 다시 북쪽으로 몰아내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갈리아인들이 무너뜨린 로마의 상황은 너무나도 처참했다. 이를 복구하는 데만 40년이 걸렸다나? 어쨌든 로마 하면 언제나 전쟁에서 지지 않는 국가라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참담한 패배를 당했던 역사도 있었다고 한다. 또 이때 주변국들로부터 엄청난 실망감을 안겨주어 라틴 동맹도 무너지고 완전 유럽에서 최악의 국가로 전락하게 되었다 한다. 도망자 신세로 출발한 나라가 다시금 무에서부터 올라가야 하는 상황인 셈이다. 하지만 우리가 잘 알다시피 로마는 유럽과 아프리카 아시아까지 지중해의 강자가 된다. 지금까지도 로마의 문화들이 남아 있을 정도이니. 그 로마의 당시 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다.


 우리 역사에도 비슷한 시기가 있었다. 임진왜란으로만 보면 우리나라가 중국과 일본 사이에 있는 국가로 느껴지지만, 대륙으로 따져서 생각해 본다면 동쪽 끝에 위치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중국 입장에서는 생각보다 먼 나라에 속한다. 어쨌든, 중국 원나라가 전 세계를 휘어잡던 시절이 있었다. 이 몽고인들이 얼마나 싸움에 능통한지, 그냥 그들이 지나가는 곳마다 모두 승리했다 한다. 동유럽 정벌이 가장 재밌다. 그냥 정찰 나갔던 부대가 성을 함락 시킬 정도였다 한다. 징키스칸이 일찍 죽어 더 이상 서쪽으로 갈 수 없게 되어 유럽까지 뻗어나가지 못했다는 설이 있다. 그런 무시무시한 몽골인들이 우리의 고려를 가만히 놔둘 리 있을까? 그렇게 쳐들어온 원나라에 제대로 된 대응도 못 하고 왕과 조정은 부랴부랴 인천 강화도로 들어가 버렸다. 온 나라 백성들은 뒤로 한 채. 강화도로 들어가 한 일이라고는 '팔만대장경'을 깎았다고 하니. 참으로 애석한 우리의 역사가 아닌가 싶다. 그렇게 수십 년 동안 원나라는 우리 한반도를 휘젓고 다니면서 온갖 몹쓸 짓을 다했다 한다. 그러다 고려 원종이 원나라 사신으로 가면서 이야기가 뒤바뀌게 된다. 당시 칸(몽골의 황제)인 몽케 칸을 만나러 가는 도중에 몽케 칸이 사망하게 되었다. 당시 다음 칸으로 두 명의 후보군이 있었다. 이에 원종은 어디에 줄을 서야 할까로 꽤나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심혈을 기울여 찾아간 곳이 쿠빌라이 칸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재미난 일이 일어난다. 바로 쿠빌라이 칸 진영에서 원종을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대 몽골 인과 수십 년 동안 끝까지 항쟁한 유일한 나라의 세자가 나를 선택했다! 이는 필시 내가 칸이 될 징조이다!'라고 했다. 뭐 그렇게 해서 쿠빌라이 칸은 칸이 되었고 원종은 쿠빌라이 칸과 잘 협상해서 고려라는 나라의 명맥은 살렸지만. 원간섭기가 시작되기도 했다. 이에 대한 해석도 분분하다. 원간섭기를 내준 고려의 치욕스러운 왕이라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고 반대로 일제강점기처럼 원나라 강점기는 아니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라는 입장도 있다. 원나라는 정찰군이 성을 함락 시키는 싸움꾼들이니까.


The Triumph of Marcus Camillus - Fancesco Salviati

어쨌든 로마든 고려든 역사는 그렇게 흘러갔다. 나는 이 두 고사를 보면 이런 명언이 떠오른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어라' 사실 너무 스테레오 타입인 명언이다. 하지만 실제로 위기 상황이 닥치면 기회로 바꿀 수 있는 용기를 낼 수 없다. 용기 문제가 아니라 위기라고 직시하지 못하거나 아무리 눈을 뜨고 찾아봐도 솟아날 구멍을 찾을 수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몽고의 칸을 만나러 가는 길에 칸이 죽어 버려 두 사람 중 한 사람을 골라야 하는 원종의 고민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다.

 그럼 도대체 위기 속에서 기회를 찾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첫째로 원종의 당당함이다. 그렇게 쿠빌라이 칸에게 원간섭기는 내주었지만 우리의 주권을 갖기 위해서 고려에게 유리하게 교섭을 했다고 한다. 거절하는 순간 목이 잘릴 수도 있는 상황에서 그렇게 당당하게 자신의 요구를 했던 원종의 당당함이 있어야 한다. 아무리 위기 상황이라고 해서 누군가에게 제발 도와달라고 머리를 조아리는 행위는 그저 나를 낮출 뿐이다. 만약 원종이 쿠빌라이 칸에게 살려만 달라고 머리만 조아렸다면? 우리의 역사는 또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을 것이다. 둘째로는 카밀루스의 성실함이다. 그렇게 폐허가 된 로마를 다시 살려낸 사람은 갈리아의 침입을 몰아낸 독재관 카밀루스였다. 모두 다른 도시로 이주하자 했는데도 불구하고 카밀루스는 꿋꿋이 로마를 다시 살려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수십 년에 걸쳐 도시 복원 사업을 해냈고 결국 카밀로스는 '제2의 로물루스' 즉, 로마의 2번째 창립자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하늘이 무너져도 꾸준함을 이길 수는 없다.

만약 지금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 혹시 위기 상황에 봉착해 있다면?


내가 원하는 것을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자신감과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꾸준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돌아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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