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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상인 Nov 20. 2021

인간관계를 편안하게 만드는  마법의 기술

'나 술먹고 늦게 들어가'라는 말이 얼마나 가슴을 쿵하고 때리는 말인지. 내가 회사를 다니며, 술먹고 다닐땐 몰랐다. 그런데, 내가 가정주부로 생활하며 와이프가 회사를 다니다 보니. 이게 얼마나 가슴이 철렁하는 말인지 알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술먹고 늦게 들어간다는 말보다 더욱 무서운게 있다. 바로 육아 독박이다. 사람이 살다보면 술도 먹을 수 있고 회식도 할 수 있지만 그때마다 내가 혼자서 온전히 아이들을 봐야한다는 건 정말이지 가혹한 처사이다. 하지만 이보다도 더욱 무서운게 있다. 바로 그런 생각이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내가 또 혼자 애들을 보라고?' '애들 넷을 혼자서 보는게 쉬운 일인줄 아나?' '아니, 이런식으로 나를 골탕 먹이려 드는거야?' 등등 사실 실제로 아이들과 온전하게 시간을 보내면, 그만큼 즐거운 일이 또 없는데도 말이다. 결국 사람이란 '생각하는 동물'이고 '어떻게 생각하는가?'가 나를 편안하게도 불안하게도 만드는 건 아닐까? 오늘은 로마의 12표법을 통해 '사건과 해석'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평민 권리의 상징적인 것이 있다. 바로 12표법이다. 이 12표법은 무려 문화강국이라는 그리스까지 유학을 보내 만든 법전이다. 이 12표법은 '성문법'이라고 한다. 우리에게 '법전'이라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지만, 당시 로마에서 법이란 '구두'로 내려왔다고 한다. 당연히 그때그때 법이 제멋대로 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귀족에게 유리한 판결이 나도록 짜여져 있었다. 이에 반해 평민들이 명확한 법을 만들어 달라는 요구에 힘 입어 12표법이 탄생하게 된다. 하지만 로마인 이야기를 저술한 시오노 나나미에 의하면, 당시 평민들은 이 12표법을 보고 더 분노했다고 한다. 첫번째 이유는 그리스와 로마의 구조 자체가 다르다는 부분이다. 우선 그리스는 해상국가로 '교역'을 통해서 먹고 살았던 반면 로마는 농경국가로 상업적인 발달보다 부동산이 더욱 중요한 나라였기 때문이다. 당연히 교역이나 상업이 발달한 그리스에서는 '동산'의 가치를 더 취급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로마의 평민들은 동산보다는 부동산에 대해 더 예민했다. 그런데 이 12표법이 처음 나왔을 때는 부동산에 관한 이야기가 일절 없었다고 한다. 두번째 이유는 조금 사적인 이야기다. 아피우스 클라디우스라는 귀족이 평민인 호민관의 딸을 사랑했다. 문제는 이 아피우스라는 사람은 반평민파 사람이었다. 그런데 당시 12표법에서는 귀족과 평민이 결혼을 할 수 없었다. 이제 아피우스에게 남은 카드는 두 장이었다. 노예로 삼거나 첩으로 삼거나. 첩으로 프로포즈를 했다가 여인에게 거절을 당했다. 이에 아피우스는 마지막 카드를 꺼내 든다. 자신의 부하를 시켜 그녀가 자신의 노예의 딸이라고 소문을 냈다. 당시 법으로는 내 소유의 노예의 자식도 내 소유였다고 한다. 그렇다. 여인을 자신의 노예로 받기 위한 계략이었다. 이 소식을 들은 여인의 아버지는 전쟁터에서 한달음에 달려왔다. 그러고는 자신의 딸에게 칼을 꽂았다. 이 일로 평민들은 단단히 화가 났고 또 다시 산으로 농성을 들어간다. 결국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귀족들은 아피우스를 체포하여 재판을 벌였다. 재판 전날 감옥에서 아피우스는 자살을 하며 이 이야기는 일단락 되었다. 사실상 이제는 귀족과 평민이 어느정도는 대등한 입장이 되는 그런 상황이었다. 만약 여기서 더 큰소리를 내어 우리가 직접 집정관을 뽑겠다고 했다면, 아테네처럼 민주정치가 실현되었을 수도 있다고 시오노 나나미는 이야기 한다. 뭐 결국은 안했지만.

Edvard Munch - The Scream of nature

이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왠지 우리나라의 서동요 이야기가 생각이 난다. 우리 서동요는 아내로 맞기 위해 서동이 계략을 꾸며냈고 또 그렇게 해서 스스로 왕이 되었으니 해피엔딩이고 또 '지혜'란 무엇인가?를 옛고사를 통해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반대로 로마의 아피우스는 똑같이 소문을 통해 여인을 가지려 했으나. 그 결과물이 전혀 달랐다. 이래서 흥하는 사업과 망하는 사업은 종이 한 장 차이라고 하나?


시오노 나나미가 12표법의 시작에 대해 그리 좋은 평을 쓰진 않았다. 하지만 다른 로마서에서는 12표법을 평민 권리의 상징물처럼 묘사한다. 이래서 다양한 책을 읽어야 다양한 시점으로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이는 단순히 12표법만이나 역사에 대한 해석의 문제로 국한되지 않는다.


동상이몽(同床異夢) 우리는 같은 것을 보고도 서로 다른 생각을 한다. 그러기때문에 인간관계는 이런 동상이몽에 대한 서로의 해석에서 문제가 생긴다. 나는 별 생각없이 툭 던진 말이 누군가에겐 가슴에 못을 박는 말일 수 있다. 또 반대의 입장도 마찬가지다. 그러다보면 할 말이 있어도 못하게 되는 경우도 발생한다. 내가 괜히 말 잘못 꺼내서 누군가를 상처주는 게 싫기에 말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사건과 해석은 분리되어야 한다. 12표법이 만들어졌다는 건 '역사적 사실'일 뿐이다. 이 역사적 사실을 어떻게 해석할 것이냐?의 문제는 사람마다 당연히 차이가 있고 다를 수 있다. 예를들어 '나 오늘 술먹고 들어갈게'라는 반려자의 말을 듣고 싸웠다고 치자. 하지만 정확하게 말하자면, 술 먹고 들어간다라는게 사건이라면 '술 먹고 늦게 들어와서 또 꼬장부리고 애들을 깨우고 난리 칠거지?' 혹은 '그럼 너 술먹고 노는 시간에 나혼자 육아 독박을 해야해?'라고 부분은 나의 해석이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사실이나 사건보다 해석에 더욱 집착해서 살아간다.


예를들어 같은 사건인데, '얼마나 힘들고 괴로웠으면 혼술까지 하고 들어온다고 할까... 반려자의 건강이 더 걱정되네'라는 해석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내가 술먹고 들어와서 이런 이야기를 쓰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반려자에게 '너는 어떻게 해석을 그모양으로 하냐?'라고 따져 물어도 싸움이 된다. 12표법이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를 두고 싸우는 것이 얼마나 의미 없는 일인가? 그저 지나간 일이고 긍정적인 부분도 있고 부정적인 부분도 있겠거니 하고 넘어가면 그만이다. 또 '너는 부정적으로 보는구나. 그럴수도 있지'가 서로의 관계에 있어서 또 나의 정신건강에 있어서도 이롭다.


혹시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도 관계 속에서 고통받고 있다면, 꼭 한 번 '사건과 해석'을 명확하게 구분지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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