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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상인 Dec 13. 2021

'괜찮아유~' 긍정적인 한 마디의 힘.

24장 자마 전투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말이 있다. 직역하자면 새옹의 말이라는 뜻이다. 사실 이 네 글자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새옹의 고사를 통해 새옹지마라는 말의 뜻을 유추한다. 새옹의 아들이 말에서 떨어져 절름발이가 되었다. 동네 사람들이 아이고 아드님 불쌍해서 어찌합니까? 하자 새옹은 "괜찮아유~ 뭐 그게 또 복이 될지 누가 알겠어유~"했다. 시간이 흘러 새옹의 나라에 전쟁이 일어났다. 건강한 몸을 가진 청년들은 모두 군에 징병이 될 때, 새옹의 아들만이 절름발이라는 이유로 면제받을 수 있었다. 즉, 눈앞의 불행이 훗날의 행복이 될지 모른다는 고사이다. 그래서 우리는 생각지도 못했던 행운에 대해 인생지사 새옹지마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10대 후반 아버지를 따라나선 전투에서 번번이 패배만 하던 한 장수가 장성하여 다시 자신을 패배시킨 장수 앞에 나타났다. 오늘은 15년 동안 이어진 2차 포에니 전쟁의 대미를 장식할 자마 전투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15년 동안 이탈리아에 있던 한니발은 다시 본국 카르타고로 향했다. 금의환향이었으면 좋겠지만, 사실 한니발의 귀향은 그 정도는 아니었다. 초반에 로마를 무너뜨린 한니발이었지만 결국 교착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결국 이탈리아 남부 장화 굽 부분만에 박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의 귀국이었으니 말이다. 어쨌든, 카르타고는 자군력이 없으니 원정 중인 한니발을 불러오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카르타고로 돌아온 한니발과 스피키오가 바로 맞붙었던 건 아니었다. 서로 동맹군의 지원을 받으려 눈치를 보고 있는 상황이었다. 스피키오는 마시니사의 지원을, 한니발은 누미디아 전왕의 아들의 지원을 받으러 각자 누미디아 방향으로 행군을 시작했다. 어쨌든 전쟁은 일촉즉발의 상이 었다. 결국 양 군은 동맹군을 만나러 가는 중간 길목에서 서로 대치하게 되었다. 그러나 마치 누가 한 편의 영화를 만든 것처럼. 전쟁 전날 극적인 회담이 성사되었다. 한니발이 먼저 강화조약 카드를 내밀었고 이에 대해 스피키오는 거절의 의사를 표했다. 결국 다음날 아침부터 이 세기의 대결이 펼쳐지게 되었다. 빠른 기병을 중심으로 전투를 진행하던 한니발은 기병 부족으로 적은 기병으로 전투에 나갔다. 반대로 한니발에게 보고 배우고 자란 스피키오는 마시니사의 기병까지 더해 기병의 질과 양이 한니발보다 우세했다. 보병은 한니발 쪽이 더 많았다. 하지만 보병과 기병의 비율이 낮은 건 전통적인 로마식 전법이었다. 즉, 한니발은 자마 전투에서 '한니발식'이 아닌 '로마식'으로 전투에 임했고 반대로 스피키오는 로마인이면서도 한니발식으로 전투에 임했다. 하지만 스피키오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갔다. 한니발은 처음에 코끼리로 적을 혼란에 빠뜨리려 했다. 하지만 스피키오는 코끼리를 피하기 위해 보병의 오와 열을 여유롭게 띄어놨다. 코끼리의 특징은 한 번 달리기 시작하면 방향을 바꾸지 않는다. 이를 간파한 스피키오는 코끼리가 달려오자 이 여유로운 오사이로 코끼리가 빠져나갔고 경무장한 병사들이 옆에서 코끼리를 향해 창을 던졌다. 결국 코끼리는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한니발도 로마식이라고 했지만 거기서 더 나아가 자신만의 진형을 구축했다. 에스파냐에서 약 5만 명으로 출발했던 대군이 이탈리아에 도착하니 2만 5천이었고 지금 이 자마 전투까지 살아남은 정예병사는 약 8000명이었다. 이 8000 정예 군사와 한니발은 후진에 있고 전진에 카르타고에서 보내준 병사와 동생 마고의 병사들로 채워 넣었다. 사실상 전진 부대는 로마군의 힘을 뺄 용도였다. 로마군도 이 전진 부대와 싸우며 진형이 모두 깨진 상태였다. 이때, 한니발이 정예 병사를 대동하여 적진으로 쳐들어 갔다. 한니발의 이 천재적인 전술이 그저 그런 장군에게 썼다면, 백전필승의 전략이었겠지만, 상대는 스피키오였다. 한니발의 후진을 보자마자 스피키오는 새로운 진형으로 병사들을 서게 했다. 우리에겐 유명한 진형이다. 바로 학익진이었다. 학이 날개를 펼친 모양으로 둥글게 펼쳐진 모양. 또 스피키오도 에스파냐 전쟁을 통해 숙달된 병사들이 많았다. 결국 천재 한니발은 후대의 천재 스피키오에게 대패하고 말았다. 언제나 앞서 옳다고 혹은 앞서 위대하다고 생각되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 최고점에서 내려와야 하는 시점이 있다. 바로 이 자마 전투가 한니발을 최고점에서 내려오게 만드는 시점이었다. 


이 자마 전투는 삼국지로 치면 사마의와 제갈량의 싸움이며 씨름으로 치면 이만기와 강호동, 미술로 치면 앙리 마티스와 피카소의 대결이었다. 떠오르는 강자인가? 경험으로 가득 찬 명불허전의 노익장이냐? 국민 MC 강호동이 언젠가 예능에서 '이만기를 이긴 비법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이렇게 이야기한 적이 있다. "당시 저는 20대 초반이었습니다. 그 위대한 이만기 대선배님 하고 붙는데 엄두가 나지 않았어요.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만약 내가 이만기 선배라면 가장 두려운 사람이 누구인가? 고교 3학년 때 가장 무서운 선수는 이제 새로 입학한 신입생이었습니다. 왜냐면 이 친구의 장기가 무엇인지 모르니까요. 정보가 없기 때문에 가장 두려운 적은 바로 신입생이었지요. 이만기 선배도 마찬가지 었습니다. 나는 상대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지만, 이만기 선배는 강호동이라는 신인이 무엇이 주특기 일지 모르지 않습니까? 지금 두려운 사람은 내가 아니라 이만기 선배다라는 생각으로 자신 있게 임했습니다." 


 제갈량은 삼국지 중반부터 후반까지 브레인 역할이자 유비의 충신으로 모든 은총을 다 받아온 사람이었다. 그에 반해 사마의는 삼국지 후반에 겨우 조조의 신임을 얻었으며, 사마의를 크게 중용한 건 조조 사후 아들인 조비 때부터이다. 사마의도 천재였고 제갈량도 천재였지만, 하늘은 사마의의 손을 높게 들어주었다. 요즘 중국에서는 이런 사마의의 '꾸준함'과 온갖 모략에서도 꿋꿋이 소신을 지켜나갔던 사마의를 드라마로 재조명하기도 했다.

Henri Matisse - Woman with a Hat

 사진기의 등장, 인상주의의 대두는 미술사에서 피할 수 없는 숙명이었다. 하지만 인상주의를 넘어서는 작품을 만든 게 바로 앙리 마티스다. 야수파로 잘 알려진 앙리 마티스의 파란 모자를 쓴 여인이라는 초상화를 보면 이게 뭐지 싶다. 물론 추상미술이니 설치미술이니 초현실주의니 워낙 난해한 미술이 더욱 많은 현대의 시점에서 보면 그나마 단정한 편이었지만 당시 미술계에서는 '이게 뭐야? 무슨 야수를 그려놨냐?'라고 했던 말이 그대로 앙리 마티스의 '사조'가 되어 버렸다. 이를 본 피카소는 '이것이 새로운 세상의 미술이구나!' 해서 바로 베껴버렸다. 하지만 앙리 마티스를 그대로 따라한 건 아니었다. 앙리 마티스는 다양한 색체로 사람을 쪼갰다면, 피카소는 색이 아니라 '도형'으로 쪼갰다. 큐비즘, 입체주의의 시작이었다.


 이만기가 뛰어난 씨름선수이냐? 강호동이 위대한 씨름 선수이냐?라는 어리석은 질문을 하는 사람은 없다. 사마의냐? 제갈량이냐? 혹은 마티스냐? 피카소냐?라는 질문도 마찬가지다. 두 사람 모두 위대한 천재 씨름선수이며, 책사이며, 화가이다. 한니발과 스피키오도 마찬가지로 두 사람 모두 뛰어난 천재 장군이었다. 하지만 역사는 스피키오의 손을 들어주었을 뿐이다.


 오늘의 실수와 실패가 언제나 '불행'을 의미하진 않는다. 스피키오가 아버지를 따라 한니발과 맞서면서 번번이 패했을 때의 심정을 생각해보라. 어떤 심정이었을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나는 한니발에게 패배한 장군의 아들이야'라는 프레임으로 평생을 살아갔다면, 과연 에스파냐와 카르타고를 굴복시킬 수 있었을까?


새옹지마라는 고사에는 이처럼 '단순히 뭐 어떻게든 되겠지~'하는 '방종'만을 의미하진 않는다고 본다. '괜찮아유~'라는 한 마디엔 나의 긍정 회로를 돌리는 오묘하고 기막힌 '멘탈관리'의 유용한 도구다. 결국 실패로부터 교훈과 또 실패의 아픔을 빠르게 치유하는 '괜찮아유' 정신이 스피키오를 스승보다 더 뛰어난 청출어람하는 장군으로 만들어낸 것은 아닐까?


혹 지금 가슴 아픈 일로 괴로워하고 있는가? 그럼 '괜찮아유~ 좋은 일 있겄쥬.'하며 마음을 먼저 달래고 '이 아픔으로 나는 무엇을 배웠는가?'라고 물어보는 건 어떨까? 결국 인생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중용'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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