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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상인 Jan 14. 2022

인생을 가장 아름답게 사는 방법!

그렇게 술라가 로마를 장악했지만, 집정관이 되는 건 두 번째 문제였다. 집정관은 어쨌든 투표로 이루어지니 말이다. 킨나가 집정관으로 뽑혔고 마리우스는 북아프리카로 도피하고 함께 연대를 했던 술피키우스도 비명에 횡사하게 되었다. 하지만 실권은 술라에게 있었고 술라는 집정관 킨나에게 맹세를 시킨다. 술피키우스의 법안을 취소하고 다시는 술피키우스나 마리우스의 법안을 통과시키지 않는다는 맹세였다. 그렇게 맹세를 받은 후 자신은 미트라다데스 전쟁을 위해 소아시아로 떠났다. 하지만 킨나는 맹세를 어기고 다시 술피키우스의 법안을 부활시켰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마리우스는 군을 이끌고 로마로 입성했다. 마리우스는 지난 자신이 받은 굴욕을 설욕하고 싶었는지. 아니면 다시 집정관이 되고 싶었는지. 자신을 반대하는 세력을 처단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다시 힘을 얻은 마리우스는 7번째 집정관이 되었지만 집정관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임종을 맞이하게 되었다. 애초에 다시 로마로 진격하던 시절의 나이가 대략 70을 넘었으니. 어쨌든 이제 다시 로마의 실권은 킨나에게 돌아갔다. 킨나는 전격적으로 술라에 반하기 시작했다. 로마는 이제 마리우스의 시대에서 다음 시대로 넘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마리우스의 이야기를 들으면 참 아쉬운 마음이 든다. 권력이라는 것이 무엇이길래? 어찌 보면 근원적인 로마의 문제를 해소한 사람이 이처럼 권력을 위해 부단히 도 노력하는지. 참으로 의아스러운 마음이 든다. 물론 사람마다 원하는 욕망은 다르다. 또한 아직 내가 권력의 맛을 느껴보지 못했기 때문에 마리우스를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언제나 역사 속 인물들을 살펴보면, 권력에 치여 결국에는 초라한 삶으로 마감한 사람들을 종종 만나 볼 수 있다. 스피키오의 말년이 그랬기도 하니 말이다.

Claude Monet - Mount Kolsaas


하지만 스피키오와 마리우스의 큰 차이는 바로 권력에 대한 욕심에 있다. 스피키오는 권력욕보다는 로마를 위한 신념이 차있던 인물이라면, 마리우스는 권력에 집착하는 사람이었다. 오죽하면, 군을 이끌고 로마로 들어갈까? 게다가 스피키오는 아무리 자신을 음해하는 자라고 해도 그들을 처단하거나 죽이지는 않았다. 스피키오의 선택은 좋게 이야기하면 하야였으니 말이다.


언제나 인생엔 굴곡이 있다. 꼭 권력에 대한 굴곡이 아니더라도 감정이라던지. 재산이라던지. 여러 가지 면에서 인생은 오르막 길이 있으면 내리막길도 있다. 마치 등산과 같다. 정상에 오르기 위해 무조건 오르막길만 있는 건 아니다. 짧게 내리막 길고 오르막길도 굽이굽이 굽은 길도 있고 다양하다. 게다가 등산을 하는 이유는 등산이 즐거워서이지 정상을 정복하기 위해서는 아니다. 그저 오르다 보니 정상에 서는 것이다. 그리고 정상에 있더라도 다시 내려와야 한다.


결국 인생이란 정상까지 가기 위해 사는 건 아니지 않을까? 그저 이 인생을 즐기다 보면, 그리고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길을 간다면, 정상에 가있기도 내리막길에 있기도 잠시 벤치에 앉아서 쉬기도 하는 게. 그게 인생이지 않나 생각이 든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이라는 말이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으면, 이제 하늘의 뜻을 기다려야 한다는 뜻이다. 그저 오늘 하루를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이야 말로 정상을 향해가는 가장 아름다운 등산법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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