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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상인 May 18. 2023

감독이 되려 하니

끝없는 도전

한 동안 힘들었던 시기를 이겨내고 문득 내 꿈이 배우가 아니라는 걸 새삼스럽게 느껴왔다. 단순히 내 20대는 배우를 할 수 있다는 희망감의 끈을 겨우 잡고 끌고 왔는데. 막상 내 꿈에 대해서 진중하게 고민해 보니 배우는 아니었다. 10년이라는 세월을 버텨온 유일한 희망이었는데 갑자기 뭔가 씁쓸했다. 그 어떤 누구보다 나 자신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으면서도 나는 아직도 나를 잘 몰랐다.


그렇게 고통스럽게 내린 내 꿈은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 자신이다'라는 메시지를 많은 이들에게 나누어주는 삶이었다. 하지만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내가 할 줄 아는 건 연기 밖에 없었다. 이제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라는 고민에 여러 가지 사업을 시도하고 실패하고 도전했다. 그러다 문득 내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고민만 하고 실행하지 못 한채 거진 1년이라는 시간이 훌쩍하고 흘러가버렸다. 할까 말까 하는 고민 말이다. 그러다 한 동생에게 연락을 받았다. 


"오빠 이번에 지원사업이 하나 떴는데, 시나리오 한 번 써볼래?"


사실 내가 감독이자 주연으로 써보고 싶은 나의 자전적인 작품을 해보면 재밌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중에 받은 연락이었다.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다가 동생의 전화를 받고 문득 스쳐 지나간 아이디어가 있었다.


'내가 주인공이 아니라 이 친구가 주인공이라면?'


뭔가 이어지지 않던 내 생각이 하나 둘 하나의 작품으로 연결이 되고 막히던 부분이 술술 머릿속에서 해결되어 나갔다. 그렇게 대본만 거진 6개월 동안 쓰고 코로나로 배우들 스케줄을 어렵게 맞추어 촬영한 첫 작품이 바로 '여주'다.


처음 여주가 완성되었을 때 내 느낌은 '대박 해냈다!' 혹은 '와 이게 되네?' 등의 감정은 아니었다. 여기저기 보이는 아쉬운 부분들 투성이었다. 그래도 나는 만족했다. 나의 최선을 다했을 뿐이니까. 이걸 가지고 지금 당장 무슨 돈을 벌거나 혹은 누군가에게 평가를 받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저 나의 예술적 해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기 때문에. 물론 그런 예술적 해소적인 부분에서는 너무나도 행복한 결과물이었다. 하지만 객관적인 관객의 입장에서는 아쉬운 부분투성이었고 나는 유튜브에만 올리고 공모전이나 영화제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시간이 흐르고 배우 프로필 사진 촬영업을 시작하고 얼마 안 되었을 때 일이다. 출장으로 배우님 댁에서 프로필을 촬영해드리고 있는데, 배우님께서 연기 영상 하나 찍어달라고 하셨다. 문득 그때, '이런 대본을 하나 써보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흘러갔다. 그래서 즉석에서 바로 대본을 쓰고 단편으로 작품을 만들었다.


배우님께서는 내게 연신 천재냐며 어떻게 이런 아이디어를 바로 낼 수 있냐며 나에게 엄청난 칭찬을 쏟아내 주셨다. 너무 감사한 일이다. 문제는 나는 그게 그리 큰 능력이라고 당시에는 생각지 못했다. 그냥 가볍게 아무 생각 없이 만든 건데 좋아해 주셔서 그저 감사하고 기쁠 뿐이었다.


그러다 운명 같은 작품을 만나게 되었다. 우정이라는 작품이다. 22년 한 해 동안은 내가 하고 싶은 작품. 즉, 보는 사람 기준이 아니라 그저 내 기준으로 내가 하고 싶은 작품을 만들었다. 조회수가 안 나와도 좋았다. 하지만 22년 말미에 이제는 돈에 쪼들리기도 하고 뭔가 사람들이 좋아하는 작품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내가 좋아하는 스릴러 장르로 작품을 만들고 촬영했다. 그리고 그 당시 내 기준으로는 정말 내가 찍은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작품이 좋아서 영화제도 보내고 배급사도 보내봤다. 그런데 갑자기 배급사에서 연락이 오고 계약이 돼버린 게 아닌가? 너무나도 감격스러운 마음이었다. 그렇게 시사회도 하고 함께한 많은 분들과 대화도 나누고 하니 이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물론 시사회를 하는 기준으로는 또 내 눈이 높아져서 보는 내내 아쉬운 부분이 참 많이 보였다. '아 여기선 좀 이렇게 찍을 걸.' '아 배우님한테 연기 이렇게 부탁드려 볼 걸.' '시나리오를 이렇게 했으면 좋았지 않았을까?' 등등 내 작품에 문제점들이 너무나도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 작품을 처음 본 내 베프는 나에게


"야. 잘 만들었다. 재밌더라."


너무나도 감격스러웠다. 내 친구이지만 일반 관객의 시선으로 예술 점수 따윈 신경 안 쓰고 나에게 쓴소리를 일삼던 친구였다. 나는 언제나 친구의 말을 겸허하게 받아 드릴 뿐이었는데. 처음으로 친구가 재밌게 봤다며 나를 응원해 주니 친구 몰래 뒤에서 눈물을 훔쳤다.


결국 너무나도 감사한 시간들이 지나가고 나니. 내가 배우로서의 재능보다 감독으로서의 재능이 더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내가 봐도 아직 나는 갈 길이 멀다. 그러기에 주변에 영화 전공자와 대화할 때면 나의 무지에 스스로 놀랄 때도 많다.


하지만 이 모든 성과는 내가 배우로 연기 공부하던 시절에 뼈저리게 겪은 바로 인해 시작되었다. 주변에 나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은 '연기가 준비도 안 됐는데, 현장 생활을 하면 무시받고 캐스팅도 안 된다' 말했다. 나도 그 말을 철석같이 믿고 골방에서 나 스스로 만족하는 연기력이 나올 때까지 매일 공부만 했다. 현장에 나가고 싶어도 솔직히 무시받을까 무서워 두려움에 떨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욕을 먹든 캐스팅에 되든 안 되든 일단 현장에서 경험을 쌓았던 배우들은 이미 내가 쳐다볼 수도 없는 자리에 가있었다. 또한 위안도 되지 않는 건. 나는 골방에서 공부를 했으니 저들보다 연기를 더 잘하면 그만인데. 사실 그들이 나보다 더 연기를 잘했다.


그래서 나는 다짐했다. 골방에서 혼자 공부하지 말고 욕을 먹든 먹지 않든 일단 사람들과 만나기로. 사람들 앞에서 무시받고 손가락질받아도 일단 세상에 나를 온전히 내던지기로.


그래서 지금도 주변에서 많은 우려와 걱정을 보내기도 한다. '너무 대충 하는 거 아니냐?' '욕먹으면서도 그렇게 하는 이유가 뭐냐?' '좀 더 준비를 하고 도전해야 하는 거 아니냐?'


나를 걱정해 주고 나를 위해 우려를 해주신 모든 분들께 너무나도 감사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아직 부족하다'는 이유로 숨어서 지내고 싶지 않다.

숨어서 혼자 공부하는 시간이 필요 없다는 게 아니라.

내 작품은 앞으로 조금씩 조금씩 성장하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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