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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상인 Jul 15. 2023

부담감

쥐뿔도 없을 때는 호기롭게 말했다. '나 글 잘 써' '나 연기 잘해' '나 영화 잘 만들어'라고. 어떠한 공증이 된 건 아니지만.


옛날에는 세상탓을 했다. 나는 대단한데, 왜 세상은 몰라주나? 마치 주유가 죽으며 왜 하늘은 제갈량을 낳고 주유도 낳으셨냐고 물은 것처럼.


세상 탓을 멀리하고 이제는 모든 문제를 나에게 돌리기 시작하자 세상이 변하기 시작했고. 하나 둘 내 인생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내가 능력이 없어서 못하는 게 아니니 나를 믿어 달라'고 말로 설득해서 겨우겨우 작품을 하나하나 만들어 갔다. 그러다 사람들이 하나 둘 '오. 감독님 대본 좋은데요?' 하기 시작했다. 혹여라도 시나리오에서 갸우뚱한 사람들이 있다면, 작품으로 만들어 진 걸 보고 나면 다들 고개를 끄덕여주기 시작했다.


물론 모든 사람이 나에게 좋은 말을 해준 건 아니다. 어떤 이는 시기와 질투라는 베이스로 나를 깍아 내리기도하고. 어떤 이는 진심 어리게 나에게 충고해준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어쨌든 전반적으로 꽤 많은 사람들이 나를 응원하고 나를 아껴주는 이 상황이 솔직히 말해 나에겐 아주 난감하고 과분한 상황이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부정적이었다. 사람들을 제단하기 바빴고 거기에 덧부쳐 남에게 부정적으로 말했다. '너는 그래서 안 돼' '너의 연기는 그게 문제야' 거기다 술까지 마시면 그런 증상은 더욱 심해지고 과격해졌다. 그랬던 나의 주변에 남은 사람들은 나의 부정적인 언어 습관을 '현실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라고 평가해주는 사람들뿐이었다. 문제는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나와 비슷한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인생은 유유상종이니까.


그렇게 인기가 없는 삶, 주변 사람들로부터 기피대상이 되는 삶을 살다가 갑자기 만나는 사람들마다 나를 응원해주고 함께 작업하고 싶다는 말을 들으니 어찌할 바를 몰랐다. 심지어 어디서 소식을 접했는지. 십수년 넘게 연락이 안되던 사람들도 먼저 연락이 와서 함께 해보고 싶다 하니. 정말이지 어떻게 해야할지 난감할 따름이었다.


그러다보니 이제는 자연스럽게 '나 잘해!' '나 글 잘 써' '나 영화 잘 만들어'라고 말하지 않게 되었다. 더 나아가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만약 이제부터 내가 글을 잘 못 써내면, 하나 둘 사람들이 내 주변을 떠나가지 않을까?' '지금까지 만들어 놓은 게 별 거 없지만, 별거 없는 나의 커리어도 같이 무너지지 않을까?' '지금 내가 가고 있는 길이 맞는가?' 등등 온통 나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상황으로 나를 스스로 몰아부치고 있었다.


사실 솔직히 말하면, 쥐뿔도 없을 때도 정말 내가 글을 잘 써서, 혹은 무언가를 정말 잘해서 잘한다고 한 건 아니었다. 마치 책 시크릿에서 나오듯 그렇게 말하면 그렇게 된다기에 말하고 다녔을 뿐이다. 또 작품을 하나 만들려면 많은 사람들의 힘이 필요했다. 그들에게 손을 내밀고 도와달라고 부탁을 하려면, 어쩔 수 없이 아무것도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건 '말' 밖에 없었다.


아무튼 요즘같이 정말 대본을 공장처럼 써내려간 적은 없었다. 언제나 글은 영감에게 맡겨왔다. 어느날 갑자기 '어?! 이런거 쓰면 재밌겠다!'하는 것들을 써왔다. 그러다 갑자기 이렇게 글을 공장처럼 뽑아내는 시기가 닥쳐오니 정말 어떻게 해야할지 난감했다. 거기다가 전에 말한 부담감까지 더해져 '정말 사람들이 이 글을 좋아할까?'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래서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일을 하기 시작했다. 배우들에게 대본을 보내고 하나하나 전화해서 물어보기 바빴다. '이거 괜찮아?' '혹시 부족한 부분은 없어?' 등등. 언제나 스스로에 대한 자기 확신을 가지고 '이건 무조건 대박이야! 너무 잘 썼어!'하던 나는 사라져 있고 사람들에게 자신감 없이 빌빌 거리는 나만 남아 있었다.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할지 도통 남감하지만. 언제나 그러했듯이. 책을 읽고 글을 쓰련다. 나의 자존감은 언제나 거기서부터 시작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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