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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상인 Sep 29. 2023

나는 내가 흑인인 줄 알았다.

어린시절을 돌아보면 즐거운 추억도 있지만 대부분 좋지 않은 기억들로 점철되어 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왜 그렇게 소심했는지 알 수 없다. 아주 편하게 얘기해보면 그저 '기질'이 그랬다고 밖에 설명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머리가 점점 커지기 시작하면서 사춘기가 오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생겼으리라 판단한다.


심리학을 공부하게 되면 내 인생을 다시금 돌아보게 된다. 지금 내가 이런 모습으로 살고 있는 이유는 '과거의 나의 선택'때문이다. 결국 지금 내 인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이때까지 해왔던 선택과 결정방법을 바꾸면 된다. 그럴려면 내 과거를 돌아보는 시간이 중허다.


그렇게 내가 어떤 선택을 할 때마다 부정적인 생각과 '왠지 안될 거 같은 예감'이 문득 스쳐 지나갈 때가 많다. 사실 남탓 하는 걸 즐기진 않지만. 타인으로 인해 생긴 것은 타인으로 부터 생겼다고 인정하고 그걸 방어하기 위해서 나만의 방법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나의 모든 부정의 씨앗은 아버지로부터 왔다. 아버지는 내가 뭘 해보고 싶다고하면 항상 나에게 했던 말이 있다.


'니가?'


외국인이 들으면 마치 니그로? 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왜냐면 충청도 특유의 이죽거림까지 더해져서 나오는 말투이기 때문이다. 어려서 만화에 로봇을 만드는 과학자를 보고 과학자가 되고 싶다고 하니


니가?


슬램덩크를 보고 농구가 해보고 싶다 하니


니가?


뭐든 내가 하고 싶다는 것 마다 족족 니가를 붙이셨다. 하지만 연기만큼은 너무나도 하고 싶었었다. 이것 만큼은 물러나고 싶지 않았다. 처음으로 아버지의 뜻을 거역하며 하고 싶다고 바득바득 우겼다.


그때도 역시나 니가?를 외치셨다.


하지만 나는 그에 굴하지 않았고 결국 3주만에 대학에 붙어 버렸다.(난 입시를 10월에 시작했다.) 그 대학이 좋은 대학이냐 쉬운 대학이냐는 나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대학 동기들은 심지어 수년동안 연기 학원을 다닌 친구들도 있었으니.


시간이 지나 어른이 되고 서른이 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뭐만 하면 '니가'를 외치셨다. 자연스럽게 아버지에게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사는지 말하지 않는다. 돌아오는 말은 니가니까. 또 술도 한 잔 걸치고 얘기하시기에 대화도 통하지 않는다.


결국은 싸움으로 모든 게 종결된다. 지금까지도. 정확하게는 몇 주 전까지도. 이에 엄마도 나중에 한소리 거든다. 아버지 말씀이 맞다고.


그래서 동생에게 몰래 슬쩍 이야기한다. 잘 되고 있다고. 그럼 동생이 전달을 해야지만. 집안이 화목해진다. 이 스트레스에 꾸준히 노출되어 있으니 너무나도 속이 타들어가는 걸 느끼는데도. 어디 하나 하소연할 때가 없다. 그래서 글을 쓴다.


글을 쓰고 돌아보면 결국 아버지도 불안한거다. 아들이라고 하나 밖에 없고 결혼해서 애도 있는데 정착이라는 건 못하고 매번 헛도는 것 같아 보이니까.


근데 그 헛돌게 만든 장본인이 본인이라는 건 모른다. 매번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다고 할때마다 부정의 씨앗을 심어준건 본인이었으니까. 나도 내가 뭔일을 할때마다 불안하고 초조하고 이게 될까?하는 작은 소년이 되어 버린다. 이제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


그럼에도 그게 아버지가 나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우린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으니까.

그렇게 서툴게 표현하는 거니까.

막상 나도 내 아이들에게 그렇게 서툴게 표현하니까.


결국 그렇게 돌고 도는 챗바퀴인데. 내 선에서 끊고 싶어도 그게 쉽지만은 않다.


아무튼 나는 나만의 보호도구를 찾으려 한다. 아버지와 사이가 틀어지지 않으면서도 '내 인생이니 내 갈 길을 내가 정한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화법을 찾으려 한다. 아직은 나도 서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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