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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디오스 Dec 23. 2023

구부러진 브이

어르신들과 스마트폰 수업 때 어르신들의 사진을 볼 기회가 많다. 어르신들이 찍었거나 또는 누군가 찍어준 어르신들의 사진이다.


그 사진 중에 마음에 드는 사진을 카카오톡 프로필로 올려놓기도 하고 카카오톡 사진 보내기 수업할 때 보내주시기도 한다.  그렇게 받은 사진을 커다란 빔 스크린을 통해  보여드리면 어르신들은 부끄러워하면서도 좋아하신다.


어르신들의  사진을 보면서 공통점이 있는데 그건 구부러진 브이였다. 특히 남자 어르신들의 브이가 더 그러했다.  그 브이는 젊은이들의 것과는 모양이 조금 다르다.  허공을 찌를 듯하게 곧게 뻗은 브이와 달리 구부러져있다.


두 손가락만 펴는 것이 어려워서  세 손가락 브이를 한 사진도 있고 손등이 앞에 보이게 포즈를 취한 사진도 있다.


마음이 좀 씁쓸했다.

매끈하게 뻗어나가지 못한 굽은 브이를 보며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브이자 포즈의 기원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대개 승리를 기원하거나 파이팅을 외칠 때 쓰이곤 한다.


지금 사진 속 어르신들의 브이는 힘 없이 굽어져 있지만 젊은 시절, 힘든 고비마다 얼마나 많은 파이팅을 외쳤을까

주저앉고 싶을 때마다 이 악물고 파이팅으로 버티지 않았을까

그 파이팅 덕분에 다시 무릎 일으켜 세우고 앞으로 나갈 수 있지 않았을까

구부러진 브이에서 어르신의 우여곡절 많았던 생을 보는 듯하다


그런데 이젠 더 이상 파이팅을 외칠 에너지가 없으신 걸까 아니면 배움을 즐기는 지금의 여유 있는 노후의 삶에 안분자족하시기에 더 이상 파이팅이 필요 없으신 걸까



약간은 엉거주춤하면서도 쑥스러워 보이는 브이

처음에 볼 땐 어색했던 구부러진 브이가 친근해지기 시작했다.

아니, 고마워졌다.


브이자 포즈를 취하는 일이 어색하지만 어린아이처럼 수업에 임하는 어르신들을 보면 초등학생을 보는 것 같아 외람된 말이지만 난 그런 어르신들이 귀엽게만 느껴진다.




p.s

굽은 브이를 보면서 김성민 시인의 <브이를 찾습니다>(창비)라는 동시집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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