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 용돈을 10만 원으로 줄였다. 우리가 용돈과 생활비를 구분하는 기준은 같이 쓰면 생활비이고 혼자 쓰면 용돈이다. 가끔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고, 친구도 만나기에는 용돈 10만 원은 부족해 보였다. 용돈을 올리려면 생활비 예산을 조정해야만 한다. 한 달에 용돈 10만 원씩만 추가해도 10년이면 2천4백만 원, 50년이면 1억2천만 원이다. 앞으로 우리에게 남은 세월은 길다. 얼핏 보면 큰 비용이 아닐지 몰라도 시간을 곱하면 꽤 큰 금액이 된다. 생활비 예산 조정에 신중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우리 예상보다 집값이 더 오르거나, 투자 수익률이 괜찮다면 다시 생각해보자고만 했다.
결혼 후 텅 빈 통장을 보여 우울해하는 남편을 위해 동일한 금액을 나누어 가졌었다. 개인이 보유한 자금은 서로에게 공유하지 않고, 각자 비자금을 만들기로 했다. 같은 금액으로 시작했지만 돈을 어떻게 투자하느냐에 따라 한 집안내에서도 빈부 격차가 발생할 것이다.
남편은 문과적 감성을 보유한 이과생 남자다. 복잡한 세상의 이치를 단순히 숫자로만 분석하고 판단했다. 그의 첫 주식 투자 종목은 조선업이었다고 한다. 주식 한 번 해볼까 하는 생각에 투자할 종목을 찾고 있었는데, 조선업 주식 차트를 보고는 이거다 생각했단다. 1년 전 30만 원이 넘던 주식이 7만 원대에 거래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가지고 있던 모든 돈을 조선업 주식에 넣었고, 다시 원래 가격으로 회복하면 몇 배를 버는 걸까 계산하며 좋았단다. 하지만 조선업은 이후 극심한 어려움을 겪었고, 인내로 버티던 남편은 결국 2만 원 정도에 가진 주식 전부를 팔았다고 한다.
남편은 한국 프로야구 창단 때부터 쭈욱 두산팬이었다. 야구팬으로만 남았으면 좋았을 텐데, 그는 팬심으로 두산 주식을 사들였다. 두산의 주가는 야구 성적만 못했다. 우승만 하면 주가가 오를 거라던 남편은 야구 성적과 주가는 그다지 관계가 없다는 것만 깨닫고 팔았다.
몇 번의 실패를 경험한 후 그는 한동안 주식을 하지 않겠다 선언했었다. 그러나 비자금이 생긴 이후 용돈을 불리기 위해 고민하다 다시 주식 투자를 선택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운이 좋았다. 그가 있던 팀에는 주식 고수가 있었다. 팀 사람들과 재테크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몇 개의 주식을 추천받았다고 한다. 남편은 정확히 어떤 회사인지 알아보지도 않고 그 주식을 샀다. 배터리 부품 생산 업체와 의료기기 관련 업체라고만 들었다. 다행히 이제 남편은 투자금 올인은 하지 않는다. 추천받은 주식으로만 조금씩 사고팔기를 시작했다. 특정 주식만 오래 거래하다 보면 떨어졌다 다시 오르는 사이클이 보이기 마련이다. 남편은 떨어지면 사고 오르면 팔고를 계속하며 소소하게 수익을 거두어나갔다. 하지만 남편은 아직도 그 회사가 어떤 회사인지는 정확히 설명하지 못한다.
은퇴가 다가오자 남편은 주식으로 좀 더 큰돈을 벌어야지 결심했나 보다. 마침 집 살 때 만들었던 마이너스 통장이 있었다. 남편은 마이너스 통장으로 돈을 끌어다 투자를 시작했다. 금액이 커지다 보니 주가가 떨어지면 크게 손해를 보고, 오르면 큰 수익을 얻었다. 그날의 주가에 따라 남편의 표정이 달라졌다. 그러다 코로나가 발생했다. 주가는 폭락했고 남편은 지금이 기회다 생각하며 돈을 더 끌어다 투자를 시작했다. 코로나 이후 주가는 이전에 보이던 사이클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충분히 떨어졌나 싶어서 매수하면 더 떨어졌고, 이제 많이 올랐다 싶어서 팔면 더 올랐다.
남편은 우리가 대출을 다 갚으면 바로 퇴사하기로 했었다. 그 날은 다가오는데 마이너스 통장은 아직 정리 못하고 있던 시절, 남편은 우울했다. 가뜩이나 코로나로 외출도 못하고 있었는데 주식까지 손해를 보고 있었으니 그럴만했다. 하지만 은퇴 목표일을 한 달 정도 앞둔 시점에 주가가 극적으로 회복되기 시작했다. 남편은 마이너스 통장을 다 갚고도 꽤 괜찮은 수익을 거두었다.
“얼마나 벌었어?”
“비자금인데 왜 자꾸 알려고 그래? 내가 다 못쓰면 기부할 거라니까.”
“안 건드려 그냥 궁금해서 그러지.”
“너 은퇴하면 혼자 호캉스나 한번 다녀와! 내 돈으로 숙박비 지원해줄게!”
남편이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이야기한다. 기분 좋을 때 나오는 표정이다. 얼마를 벌었기에 그런 걸까. 운이 좋아서 다행이었지 위험한 방법이다. 어느 정도 이득을 본 지금은 마이너스 통장을 없애고 가진 돈으로만 소소히 하는 듯하다.
주식 같은 건 절대 안 할 줄 알았다. 주식은 도박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오직 적금과 정기예금으로만 돈을 모았었다. 그러다 결혼 후 집 때문에 큰돈을 대출받게 되고, 그 돈을 갚아나가다 보니 이게 돈 버는 거구나 싶어 생각을 달리했다.
난 비자금이 생긴 이후 첫 주식투자를 시작했다. 내가 잘 모르는 회사의 주식을 사기는 두려웠다. 그때는 회사일로 정신없었으니 계속 차트를 들여다볼 수도 없었다. 그냥 내가 잘 아는 회사이거나 국민주로 불리는 회사의 주식을 사두고 신경 쓰지 말자 생각했다. 분산투자를 해야 안전하다고 어디서 들은 얘기는 있어서 나름 업종도 다양하게 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투자금이 많을 때나 얘기가 아닐까 싶다. 얼마 되지 않는 돈으로 분산투자를 하다 보니, 주가가 비싼 회사의 주식은 겨우 한주만 보유한 경우도 있었다.
처음 투자를 시작했을 때는 호황이었다. 난 조금만 올라도 남편에게 수익률을 자랑했다. 그때 남편은 “요즘 시장에서도 돈 못 벌면 주식 절대 하지 말라더라.”라고 말하며 너무 성급히 좋아하지 말라고 했다. 남편 말대로 주가는 하락하기 시작했고, 내 수익률은 조금씩 내려갔다. 손해 보면서 팔기는 싫었다. 그냥 계속 들고만 있었다. 비싸서 몇 주 없던 주식의 주가가 떨어지면 조금씩 추가 매수를 하면서 오래 들고만 있었다. 떨어졌던 주가는 조금씩 오르기 시작했고, 다시 수익률에 빨간색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도 남편처럼 코로나로 주가가 폭락했을 시기에 추가 매수를 하긴 했다. 다만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지 않고, 보유 현금으로만 투자했기 때문에 남편처럼 많은 금액을 투자하지는 못했다.
코로나 이전에는 내가 보유하고 있는 주식의 사이클이 어느 정도 보였었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는 예측하기 어려웠다. 하락한 주가가 회복하나 싶더니만 계속해서 오르기 시작했다. 코로나가 언제 해결될지 기미도 보이지 않는데 괜히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이러다 다시 폭락할 것만 같았다. 30% 정도 수익이 발생했을 때 이 정도면 충분하다 생각하고 가지고 있던 주식 전부를 매도했다. 괜찮은 수익을 거둔 것 같아 한동안 괜히 뿌듯했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주식은 계속 올랐다. 내가 매도한 금액의 두배 이상 뛴 것도 있었다. 남편은 “사고 나서 떨어진 것보다, 팔고 난 후 오르는 게 더 속상한 법이지.” 라며 약을 올렸다.
난 후천적 학습에 의해 질투, 후회와 같은 감정을 잘 느끼지 않는 편이다. 주가 변동으로도 크게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다. 사고 떨어져도 ‘언젠가는 오르겠지” 생각하며 위안했고, 팔고 올라도 ‘그래도 돈 벌었으니 괜찮아’라는 생각이었다. 주식을 지속하는 것에 대해 걱정했었는데, 주식은 회사일처럼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았다. 은퇴 후 꾸준히 용돈 벌이는 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