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윤식당에는 우리가 꿈꾸는 모든 것이 있었다

by idle

은퇴를 결정한 이후 남편과의 대화는 대부분 은퇴 후 여행 이야기였다.

“토레스 델 파이네 트래킹을 해보자!”

“다합에서 오래 머물면서 다이빙도 원 없이 해봤으면 좋겠어.”

“갈라파고스도 가보고 싶어.”

둘 다 트래킹을 좋아해서 유명한 트래킹 코스는 다 가보고 싶었고, 스쿠버다이빙을 좋아하지만 긴 휴가를 낼 수 없어 가까운 동남아만 다녔기에 배낭여행자의 블랙홀이자 다이빙 성지인 다합도 가보고 싶었다. 여행 다큐를 보며 빠져들었던 갈라파고스도 빼놓을 수 없었다. 좋아하는 여행이 체력을 요하는 것들이라 이른 은퇴를 결심했던 것도 있었다.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이야기도 자주 나누었다. 여행을 다녀온 후 모아둔 돈이 다 떨어지면 어떻게 생활할 것인가. 둘 다 더 이상 지금처럼 회사에 대부분의 시간과 정성을 쏟고 싶지는 않았다. 좋아하는 일을 즐기면서 둘이 생활할 만큼만 적당히 벌고 싶었다.


남편은 운전하는 것이 재밌다고 했다. 종종 고속도로 운전을 하고 싶다며 가까운 근교로 드라이브를 다녔다.

“유로 트럭 시뮬레이터라는 게임 알아? 그냥 유럽 도로를 트럭으로 다니기만 하는 건데 영상 보니 재밌어 보여. 나 화물차 면허를 따서 트럭 운전을 하면 어떨까?”

“지금 회사 알바 급여가 꽤 괜찮은데, 퇴사하고 알바로 다시 취직했으면 좋겠다.”

다양한 돈벌이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 좀 더 구체적인 내용으로 대화가 깊어지면 남편은

“아직 시간 많이 남았어. 왜 벌써부터 고민해, 여행 다니면서 고민해도 늦지 않아.”라고 말했다. 진로를 변경하려면 지금부터 준비를 시작해야 할 것 같은데, 남편은 은퇴 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언제나 태평하다.


퇴근 후 잠들기 전, 예능 다시보기를 보면서 맥주 한잔 하는 것이 우리 둘 만의 의식이었다. 아무리 늦게 퇴근해도 의식은 치러야 했다. 그 시간은 회사일로 찌든 하루를 잊게 해 주는 삶의 낙이였다. tvN 다시보기를 많이 봐서 CJ 채널은 무제한 월정액을 가입했다. ‘윤식당’ 시리즈도 자주 보는 것 중 하나였다. 윤식당 시즌1에는 우리가 꿈꾸는 모든 것이 있었다. 다이빙하면서 바닷속에서 거북이를 만나면 둘 다 멍하니 한참을 바라보곤 했는데, 발리 길리섬에는 거북이가 많았다. 좋은 날씨에 음식도 맛있어 보였다. 화면 속 사람들은 모두 여유롭고 행복한 표정이었다. 여행 가서 식당을 하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에 옆에 있는 남편에게 물었다.

“우리도 여행 가서 작은 식당을 해보면 어떨까?”

“너 요리 못하잖아.”

“나 말고 당신이 하면 되지! 당신 라면도 잘 끓이고, 전도 잘하잖아.”


갑자기 신나서 해외에서 식당을 하려면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 조사해보기 시작했다. 해결해야 할 일들이 많아 보였다. 목록만 봐도 머리가 아파지는 그런 일들이다.

“쉽지 않겠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아닌 거 같아.”

“당연하지. 차라리 여행 가서 배운걸 한국에서 하는 건 어때?”

“그것도 괜찮네!”

“포르투갈에서 에그타르트 만드는 걸 배운다거나, 스페인이나 이탈리아에서 음식을 배우는 거지.”

꼭 요리가 아니더라도 괜찮은 생각인 것 같았다. ‘2년 동안 여행 다니며 놀았어요’가 아니라 ‘2년 동안 무언가를 배우며 재충전의 시간을 가졌어요.’라고 한다면 배워 온 것으로 새로운 시작은 하지 못하더라도 재 취업에는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은퇴이야기에 외국에서 배우고 싶은 것에 대한 주제가 추가되었다. 은퇴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처음 계획에서 계속 바뀌고 있다. 새로운 방법론이 계속 생겨난다. 은퇴 시점에 우리의 결론이 어떻게 날지 모르겠다. 무엇이든 여유롭지는 않아도 먹고 살만큼만 적당했으면 좋겠다.



keyword
idle 여행 분야 크리에이터 프로필
구독자 1,1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