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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중심 울루루 캠핑 여행

by idle

남편과 나는 사내커플이었다. 우리가 다녔던 회사는 일정 기간 이상을 근무하면 한 달 휴가를 부여하는 제도가 있었다. 모두가 당연한 듯 휴가를 냈고, 대부분 어디론가 여행을 떠났다. 휴가를 앞둔 사람을 보면 다들 “아 부럽다, 어디로 가요?” 라며 계획 중인 여행에 대해 한 마디씩 물어보았다. 이 휴가를 떠나는 사람들에게는 고민이 하나 있었는데, 그건 긴 여행을 함께 할만한 사람이 별로 없다는 거다. 사람들은 혼자 여행을 떠나거나 함께하는 친구가 가능한 기간만큼만 짧은 여행을 떠났다. 우린 같은 회사였고, 남편이 나보다 먼저 그 휴가를 부여받았다. 남편은 내 휴가가 나올 때까지 기다렸고, 한 달간 함께 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


한 달 장기 여행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은퇴 후 세계여행을 떠나기로 했으니 이번 여행은 좋은 연습이 될 것 같았다. 놀이방 벽에 붙어 있는 세계지도를 보며 남편과 어디로 떠나면 좋을지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세계여행 갈 때 호주, 뉴질랜드를 포함하면 동선이 좀 애매할 것 같네. 이번 기회에 미리 다녀올까?

“좋네, 다시 가기는 어려울 테니 거기서 하고 싶었던걸 다하고 오자!”

그렇게 호주, 뉴질랜드로 여행지가 정해졌다.


둘 다 예전부터 ‘울루루’에 가고 싶다는 얘기를 많이 했었다.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라는 영화에서 주인공들이 그토록 가고 싶어 하던 곳이다. 영화를 재밌게 본 것은 아니었는데 ‘울루루’는 기억에 남았다. 우린 함께 ‘세상의 중심’에 가보고 싶었다. ‘그레이트 베리어 리프’는 스쿠버 다이빙을 시작한 이후 꼭 가고 싶었던 곳 중 하나였다. 그곳은 세계 최대의 산호초 지역이라 다양한 바닷속 생물들을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레이트 베리어 리프’로 가기 위해 리브어보드의 출발지인 ‘케언즈’도 필수 여행지에 포함되었다. 그렇게 우린 ‘울루루’와 ‘케언즈’를 중심으로 호주 여행을 계획하기 시작했다.


1년에 한 번 있는 에어아시아 초특가 행사가 있을 때 편도 37만 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으로 ‘멜버른’행 비행기를 예약했다. ‘울루루’는 거대한 대륙 호주의 한 복판에 있었다. ‘멜버른’에서 ‘울루루’까지의 거리는 무려 ‘2,336km’였다. 차로 쉬지 않고 달려도 24시간은 걸리는 거리이다. ‘멜버른’에서 ‘케언즈’ 까지는 ‘2,818km’이고, ‘케언즈’에서 ‘울루루’까지의 거리도 ‘2,413km’나 되었다. 여행지 사이의 거리가 모두 하루 이상씩 걸리는 거리였다. ‘울루루’와 ‘케언즈’ 둘 중 한 곳은 포기해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한 달이라는 긴 시간이 있었기에 무모해 보였지만 일단 도전하기로 했다. 돈보다 시간이 아까운 시절이었으니 모든 목적지는 국내선 비행기로 이동하기로 했다. 대체로 10만 원대의 가격으로 예약할 수 있었으나 ‘울루루’로 향하는 비행기 티켓은 ‘인천-멜버른’행 편도 가격 보다도 비쌌다.

무모했던 우리의 최종 호주여행 동선


‘울루루’는 높이 335m, 둘레 9.4km의 거대한 하나의 바위이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배경이라는 ‘카타추타’는 36개의 바위로 이루어진 곳으로 두 곳을 묶어 ‘울루루-카타추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여행기를 찾아보니 울루루는 숙소도 애매하고 가는 방법도 어려워서 사람들은 패키지 투어를 많이 이용했다. 우린 캠핑카를 빌려 울루루 근처 ‘에어즈락 리조트’에서 캠핑을 하기로 했다. 차를 빌린 김에 호주의 사막 아웃백도 달려보기로 했다.


드디어 호주 사막에 도착했던 날, 사방으로 붉은 지평선이 펼쳐져 있었고, 공기는 숨 막히게 뜨거웠다. 사막을 달리는 게 마냥 신나서 서로의 운전하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주었다. 우린 비슷한 풍경에도 놀라워하며 차 안에서 연신 사진과 동영상을 찍어댔다. 사막이 얼마나 뜨거웠던지 중간중간에 들불에 그을린 나무가 많이 보였다.

처음 만난 호주의 사막과 함께했던 캠핑카

에어즈락 리조트는 사막 위 오아시스 같았다. 사막 한가운데 마트, 주유소, 수영장 등 여행에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춘 리조트였다. 캠핑장 구역마다 나무로 둘러 쌓여있어 한낮에도 그늘에서 쉴 수 있었다. 넓은 샤워장은 칸막이가 있어 불편하지 않게 샤워가 가능했고, 깨끗했다. 저렴함 가격에 이용 가능한 BBQ 시설도 갖추고 있었다. 마트의 물건 가격은 한국 물가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소고기 가격은 훨씬 저렴해서 우린 저녁마다 고기를 사서 스테이크를 해 먹었다.


호주 사막의 한낮은 너무 뜨거워서 울루루 트래킹은 오전 중으로 끝내야 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울루루 주차장으로 향했다. 울루루의 거대한 크기는 숫자로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직접 보니 상상 이상이었다. 저렇게 거대한 바위가 하나로 이루어져 있다는 게 신기했다. 울루루는 보는 방향에 따라 새로운 모습을 보여 주었다. 더위에 지칠 만도 한데 난생처음 보는 광경에 한참을 서서 바라보았다. 울루루 트래킹을 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둘이 전세 낸 듯 울루루를 감상할 수 있었다. 간혹 세그웨이를 타고 먼지를 날리며 달리는 무리들을 만났다. 시원해 보였다. 하지만 자전거와 오토바이를 못 타는 나 때문에 할 수는 없었다. 승마는 하면서 자전거는 못 타고, 스쿠버 다이빙은 하면서 수영은 못하는 나를 남편은 신기하게 생각했다. 탈 것으로 보는 것도 좋겠지만 난 걷는 편이 더 좋았다. 천천히 걷다 보면 탈 것으로 다니는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소소한 발견을 할 수 있다.

울루루 트래킹

울루루 둘레를 한 바퀴 돌아보는 트래킹에는 4시간 정도가 걸렸고, 무사히 오전 중으로 끝낼 수 있었다. 한낮은 40도가 넘는 뜨거운 곳이라 리조트 구경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오후에는 시간에 따라 다른 색을 보여준다는 울루루의 일몰을 보러 갔다. 유명한 뷰포인트 앞에는 일찌감치 자리를 잡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차에서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사람들, 와인 한잔을 하며 축배를 드는 사람들 사이를 뚫고 우리도 자리를 잡았다. 일몰을 기다리며 커다란 도마뱀 한 마리를 보았는데, 호주 원주민 애버리진 미술이 왜 화려한 컬러의 점으로 표현되는지 알 것 같았다. 도마뱀 등의 무늬가 꼭 같았던 것이다. 눈으로 도마뱀을 담느라 카메라를 꺼낼 생각은 하지 못했다. 사진으로 남기지 못한 것이 왠지 아쉽다.

울루루 일몰

울루루 일출과 트래킹, 일몰 모두 좋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밤하늘의 은하수였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하늘을 반으로 가르며 흐르는 우윳빛 은하수를 보았다. 은하수가 무지개처럼 하늘에 둥그렇게 이어진다는 걸 보기 전에는 몰랐었다. 북반구에서는 볼 수 없는 남십자성과 전갈자리도 선명하게 보였다. 보통 별자리는 알아보기 어려운 형태였는데 남십자성과 전갈자리는 누가 봐도 십자가 모양, 전갈 모양이라 찾기 쉬웠다. 늦은 밤이었지만 연신 감탄을 하며 한참 바라보았다. 사막에서의 하루가 모두 아름다웠다.


우린 카타추타와 킹스캐니언까지 둘러본 후 중간중간에 있는 홀리데이 파크에 머물며 7박 8일간 호주 아웃백을 즐겼다. 호주 여행책을 보면 멜버른 근교 여행지로 200km 거리의 도시를 추천한다. 이렇게 먼 곳이 어떻게 근교냐며 남편과 투덜거렸었다. 하지만 일주일 정도 지나고 나니 “이제 쿠버페디 까지 100km 남았어, 거의 다 왔네.”라고 대화하는 우리를 발견했다.

카타추타-킹스캐니언-쿠버페디

에어즈락 리조트에서는 각양각색의 캠핑카를 구경할 수 있었다. 거의 집이나 다름없이 모든 것을 갖춘 트레일러부터 직접 개조한 것으로 보이는 화려한 색감의 단출한 승합차들까지 다양했다. 우리가 머물던 구역 뒤에는 maui 캠핑카(1~2년 내 출시된 벤츠를 개조한 비싼 캠핑카)에 머무는

백발의 노부부가 있었다. 각자 의자에 앉아 책을 보거나 함께 차를 마시면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사막 캠핑이 힘들 줄로만 알았는데, 만족스럽네.”

“응, 다시 와도 좋을 것 같아. 어젯밤에 본 은하수를 한 번 더 보고 싶어.”

“우리도 저 노부부처럼 나이 들어서 다시 찾아오자. 그때는 maui를 빌릴 수 있으려나?”

“우리 은퇴 자금 많이 모아야겠다. 후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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