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이에게 좀 더 다정하길.

수원화성 막걸리

by idle

그는 순대 곱창 볶음을 좋아한다. 서울 나들이를 하고 돌아오는 길, 안양이나 신림동 주변을 지나갈 때면 그는 늘 “순대 곱창 먹고 갈까?”라는 얘기를 꺼낸다. 그럼 난 "좋아!"라고 명랑하게 대답한 후 운전 중인 그를 대신하여 내비게이션 목적지를 조정한다.


단골손님에게 푸짐하게 내어준 순대 곱창은 2인분만 먹어도 배가 부르지만, 밥을 볶기에 적당한 양의 야채와 곱창이 남았을 때쯤이면 말한다. “여기 밥 하나 볶아주세요!” 더 이상 들어갈 공간이 없다고 뱃속에서 아우성쳐도 어쩔 수 없다. 볶음밥을 먹지 않으면 왠지 아쉬우니까. 잔뜩 배가 부른 우리는 주변을 어슬렁 거리며 소화를 시킨 후 그제야 집으로 돌아간다.


가끔 집에서 뒹굴거리다가 순대 곱창 볶음이 먹고 싶어지는 순간도 있다. 하지만 아직 가까운 곳에서 순대 곱창 볶음을 파는 집은 발견하지 못했다. 익숙한 맛을 찾아 집에서 한 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그곳을 찾아가기는 번거로운 일이어서 다음에 가자는 다짐과 함께 다른 자극적인 맛을 찾았다. 어느 날, 더 이상 순대 곱창을 먹기 위해 그 먼 곳을 갈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다른 음식으로 대신하는 것도 괴로운 일이니까. 난 집에서 가까운 곳에 순대 곱창 타운 같은 것이 없을까 검색을 시작했다.

“수원에 순대타운이 있었어!”

“가깝네. 오늘 갈까?”

조금만 찾아보면 나오는 것을. 우리는 왜 알아보지도 않고 순대 곱창 대신 떡볶이를 먹었을까.


순대타운이 있는 지동시장은 이름은 낯설었지만, 우리가 종종 가던 화성행궁에서 1km도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 있었다. 지동시장은 무려 100여 년의 역사를 지닌 곳이라 한다. 여느 시장처럼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 아닌 정조의 어명으로 열린. 이 근방에는 지동시장 외에도 무려 8개의 시장이 더 있었다. 수원에서 유명한 코끼리 만두는 맞은편 영동시장에, 수원 통닭거리 역시 그리 멀지 않으니 이 동네는 수원 맛집이 몰려있는 동네라 하겠다.


먼저 시장 한 바퀴를 둘러본다. 만두, 튀김, 도넛을 파는 가게들이 맛있는 냄새를 풍기며 우리를 유혹한다. 만두라도 하나 먹을까 싶기도 했지만, 그럼 순대 곱창을 맛있게 먹을 수 없으니 꾹 참는다. 멀지 않으니 다음번에는 만두를 먹으러 와야겠다. 수원에서 먹은 만두는 한 번도 나를 실망시킨 적이 없으니.


순대 곱창 볶음과 수원화성 막걸리

사람이 많아 보이는 식당에 들어가 순대 곱창 볶음 2인분과 막걸리를 주문했다. 음료 냉장고에 ‘수원화성 막걸리’가 보였다. 익숙한 지평이나 장수막걸리도 있었지만, 동네가 동네이니 만큼 ‘동네방네 수원화성 막걸리’를 골랐다. 동네방네 막걸리는 배상면주가에서 각 지역의 동네 이름을 걸고 막걸리를 직접 제조, 유통할 수 있도록 양조 노하우와 플랫폼을 제공하는 프로젝트라고 한다. 수원화성 막걸리도 이 동네방네 프로젝트로 탄생한 막걸리였다. 각 지역 막걸리가 있으면 괜히 먹고 싶어 지니까 괜찮은 생각인 것 같다. 수원화성 막걸리는 전통적인 방식이 아닌 ‘생쌀발효법’으로 빚어진 막걸리라고 한다. 생쌀발효법은 쌀을 갈아 누룩과 함께 발효시키기 때문에 전통방식과 달리 술지게미가 발생하지 않고, 쌀이 지닌 영양소를 품고 있다는 게 특징이란다.(중부일보, 아시아경제 관련 기사 참고)


기본찬으로 깍두기, 김치와 함께 맛보기 순대도 나온다. 소금이 아닌 라면수프처럼 생긴 가루도 함께 내어주신다. 순대 볶음이 나오기 전 순대를 한입 먹으며 허기를 달랬다. 잠시 후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이곳의 순대 곱창 볶음은 다른 곳과 다르게 국물이 좀 더 자작하고, 야채가 많고, 곱창은 실했다. 자극적인 양념 맛보다 재료 본연의 맛이 느껴진다. 익숙한 순대 곱창 볶음과 조금 다른, 깊은 맛이 나는 ‘요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순대 곱창을 한입 먹고 밥그릇에 따른 뽀얀 막걸리를 한 모금을 마셨다. 달달한 막걸리였다. 술이라기보다는 막걸리 맛 달달한 음료수 같았다. 반주로 곱창과 먹기에 괜찮았다.

순대 곱창에 볶음밥까지 든든하게 먹고 가게를 나섰다. 부른 배를 소화시킬 겸 동네 공원을 산책했다. 그와 같이 걸으며 생각했다. 그동안 너무 먼 곳만 찾아다닌 건 아닌가 하고. 가까운 곳보다는 먼 곳의 맛을 찾아다녔다. 그렇게 동네의 소중함을 잠시 잊고 살았던 것 같다.


동네 산책도 마치 여행을 온 것처럼 들여다보면 달리 보인다. 그동안 수없이 지나쳤던 벚나무의 푸른 잎이 점점 붉게 물들어가고 있다거나, 길 옆에 자란 풀이 잡초가 아닌 가을에는 연한 보라색 꽃잎을 피우는 쑥부쟁이라는 사실도 깨닫게 된다. 무심히 스쳐 지나가면 이 아름다움을 볼 수 없다. 하나하나 들여다보아야만 한다. 애정 어린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면 여행지에서 만난 풍경만큼 아름다운 동네를 발견하게 된다. 어쩌다 접어든 골목길에서 고소한 버터 냄새를 풍기는 크루아상을 파는 가게를 만났을 때의 기쁨이란. 유명하다는 어느 식당의 음식보다 더 반갑다. 자주 갈 수 있으니까.


가깝다는 이유로 무심해지는 것은, 동네뿐 아니라 가족도 그러하다. 가까운 사이니 이해해줄 거라는 생각으로, 늘 옆에 있으니까. 그렇게 소홀하게 대할 때가 있다. 하지만 그는 우리가 가족이 된 이후, 연애시절보다 더 나에게 다정하다. 그는 낯선이 에게는 차갑지만, 마음을 내어주어도 상처받지 않을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었을 때 다정한 모습을 드러낸다. 그는 남들보다 나에게 더 다정하고, 난 모두에게 다정하려 한다. 이 다정함이 대가를 바라지 않고 무한정 뿜어져 나오는 것이면 좋을 텐데 당연하게도 그렇지 않다. 내가 보낸 다정함이 상대에게 다가간 후 차갑게 돌아올 때, 침울해진 나를 보고 그는 특히나 속상해한다. 나의 다정함의 총량은 정해져 있으니 가까운 이에게 좀 더 다정하길.




동네방네 수원화성 막걸리

제조 : 동네방네 영통동 양조장

원재료 : 쌀가루, 국, 당류 가공품, 건조효모, 아스파탐, 밀

알코올 : 6%

유통기한 : 2주? 확실하지 않음

특징 : 달달한 막걸리, 톡 쏘는 맛, 알코올 맛이 많이 나지 않은 음료수 같은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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