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난 엄마 껌딱지였다. 엄마가 잠시라도 눈에 보이지 않으면 울며 찾아대는 통에 혼자 둘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도 이제 겨우 말문이 트이기 시작한 아이를 어디든 데리고 다닐 수는 없는 일이었다. 엄마는 급한 볼일이 생길 때면, 이웃에 있는 단골 미장원에 나를 맡겼다. 그리 긴 시간도 아니었을 텐데. 엄마가 돌아오면 난 눈물범벅이 된 채로 "따마 지베 마끼지 마"하며 어설픈 발음으로 엄마에게 칭얼거렸다. 또렷하지 않은 과거를 처음 전해 들었을 때는, 내가 어릴 때 좀 그랬지 하고 말았는데. 이제야 그때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하게 된다. 잠깐의 자유도 없이 온종일 어린 딸에게 붙들려 있었다니. 그때 엄마는 지금 나보다도 한참 젊은 30대였는데. 그냥 옆에만 있었겠는가. 업어달라, 안아달라, 밥 달라, 얼마나 귀찮게 굴었을까. 내 기억에 의하면 난 무려 8살 때까지 엄마에게 업어달라고 졸라댔다.
낯을 많이 가리기도 했다. 친척집에 가서도 엄마나 아빠 무릎 위에 앉아서는 잠시도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낯선 누군가가 나에게 말만 걸어도 그게 그렇게 무섭고 싫었다. 조금 커서 엄마는 나를 미술학원을 겸한 유치원에 보냈다. 선생님이 짝꿍이랑 손을 잡고 원을 그리며 도는 율동을 가르쳐주려 했는데, 나는 짝꿍이랑 손을 잡기 싫다며 울었다. 그리고 다음날부터 등원을 거부했다. 엄마와 선생님이 내가 좋아할 만한 선물을 들이밀며 설득해도 고집을 꺽지 않았다. 결국 난 유치원을 가지 않는 데 성공했다. 국민학교 입학 전까지 내내 엄마랑 붙어있었다는 말이다.
어렴풋이 떠오른다. 곱슬머리를 하고 뽀얀 얼굴에 입술이 붉은 남자아이였다. 웃으며 내민 그 손을 나는 뿌리쳤다. 그 아이는 얼마나 상처받았을까.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당시 난 낯선 누군가의 몸에 닿는 것이 견딜 수 없이 싫었다.
학교에 다니면서 까탈스러움은 서서히 사라졌고 소심함은 오래 남았다. 당시 난 누군가에게 말을 거는 행위가 두려웠다. 내가 먼저 다가가 친구를 사귀어 본 적 없고, 모르는 것이 있어도 묻지 않았다. 그래서 친구가 많지 않았고, 스스로 찾아서 해결하는 것에 익숙해졌다. 눈에 띄는 것이 싫어서 시키는 대로 했다. 조용하게, 말썽을 부리지 않고, 있는 듯 없는 듯하게. 아마 같은 반이었어도 나라는 존재를 기억하지 못하는 아이도 많을 것 같다.
문헌정보학과를 졸업해서 사서가 될 줄 알았는데, 어쩌다 IT 회사의 기획자가 되었다. 기획자 혼자서 완결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디자이너가 디자인을. 개발자가 개발을. 마케터가 마케팅을 해줘야 했다. 그 중심에서 조율하는 역할이 기획자가 할 일이었다. 주 업무가 기획서 쓰는 것이 아니라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얘기다. 낯선 사람에게 말 걸기가 두려웠던 내가 그를 주 업무로 하게 되다니... 처음 한 두 해는 화장실에 숨어 몰래 울면서 보냈다. 이직을 준비하기도 했다. 그러다 서서히 변했다. 먼저 말을 걸어 업무 진행 상황도 살피고, 괜히 다가가 친한 척도 했다. 처음에는 한 두 명 앞에 두고 기획서 설명하는 자리도 떨리더니, 나중에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발표를 해도 아무렇지 않았다. 나는 내가 변한 줄 알았다. 누구와도 쉬지 않고 한 시간쯤 떠들 수 있는 사람이 된 줄 알았다. 사회생활이 이렇게 사람을 변하게도 하는구나 생각했었다.
퇴사한 지 이제 2년 반쯤 지났다. 얼마 전 그와 이케아 구경을 하는데, 지나가는 사람의 카트에 딱 필요한 물건이 실린 걸 보았다. 아무리 돌아다녀도 찾지 못했던 건데. 그가 어디서 집어 왔는지 물어보라고 했다. 예전 같으면 아무렇지도 않게 다가가 물어봤을 텐데, 그러질 못했다. 서로에게 미루다 그냥 웃어 버렸다. 그는 예전에는 이러지 않았는데 하며 속았다고 했고, 나도 나에게 속은 것 같았다. 변한 줄 알았는데, 변하지 않았다. 나의 사회적 자아가 연기한 거였다.
꼭 필요한 상황이 생겼을 때만 낯선 사람에게 말 걸기가 이루어진다. 관리실에 전화를 걸어 쓰지 않은 관리비가 청구되었음을 항의하는 것 같은. 하지만 꼭 필요한 상황이라는 건 자주 찾아오지 않는다. 그저 책만 읽고 지내도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는 일상을 보내고 있으니까.
퇴사를 하고, 운이 좋게도 책을 내고, 방송 인터뷰도 하고. 어쩌면 내 일생일대의 기회였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건 나에게 굉장한 공포이기도 했다. 이후 난 수많은 기회들을 날렸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좋은 제안들을 거절했다. 도전해봐야지 하는 것도 있었으나, 결국은 그러지를 못했다. 개인의 기질이란 쉽게 변하는 것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애써 길러놓은 사회적 능력은 순식간에 원상태로 돌아왔다.
소심한 아이는 그렇게 소심한 중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