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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민주 Oct 28. 2023

ECO하지 않은 것들 (1)

“일회용품을 바로 버리지 않고 다른 용도로 재사용해 본 경험이 있나요?”


영어 강사가 노트북 화면 너머에서 물었다. 벌써 저녁 11시. 그가 사는 나라인 필리핀과 한국이 1시간 정도 시차가 있으니 그는 저녁 10시에 화상회의 시스템에 접속해 있는 셈일 것이다. 회의 시작 무렵 그는 오늘 하루 9개의 수업이 연달아 있어 저녁을 못 먹었다고 말했었다. 저녁 10시에 밥도 못 먹고 수업을 하고 있는 인간이라니, 생각만 해도 고단할 것 같았다.


그와 나는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온라인에서 만난다. 그는 그의 먹고사니즘의 문제 때문에 영어 수업을 하고, 나는 나의 먹고사니즘의 문제 때문에 영어 수업을 듣는다. 그는 내가 원어민들이 가득 있는 영어 회화 교육 사이트에서 고른 선생님이다. 그 사이트에서 수업을 하는 선생님들의 시간 당 수업 가격과 출신 국가는 모두 천차만별이었다. 


코리안-스크루지인 나는 낮은 가격에 최대한의 효율을 끌어내고 싶었다. 그래서 그 사이트에 들어가 [최저가 순 대로 정렬] 버튼을 눌렀다. 50분 수업에 5000원을 받는 선생님부터 4만 5천원을 받는 선생님까지 순서대로 사이트에 노출되었다. 그리고 선생님들이 올려놓은 1분 자기소개 영상을 하나하나 체크했다.


1분 자기소개 동영상에서 자신의 꾸질꾸질한 집 배경을 모두 노출한 선생님들은 걸렀다. ‘프로패셔널’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어쩐지 대본 없이 즉석에서 아무 말이나 하는 것 같은 선생님들도 걸렀다. 왠지 수업을 열심히 준비 안 해올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당연하게도 시간 당 가격이 너무 비싼 선생님들도 걸렀다. 그러고 나니 선택지가 크지 않았고 시간 당 8000원 정도를 지불해야 하는 지금의 선생님에게 수업을 받게 되었다. 무슨 쇼핑하는 것도 아니고 이딴 기준으로 선생님을 고르는 게 양심에 찔리긴 했지만 별 수 없었다. 예상가능하게도 시간 당 만원 이하의 선생님들은 거의 모두 비서구권 출신이었다.     


“흠, 저는 주로 비닐봉투를 재활용하는 것 같아요.”     


회화 선생님의 저녁 식사와 인권과 자본주의에 대해 고민하다가 대충 대답했다.     


“비닐봉투요?”     


“네. 저는 비닐봉투를 돈 주고 사지 않는데 이상하게 정신 차리면 집에 온통 비닐봉지가 굴러다니더라고요. 마트에 가기만 하면 사람들이 저에게 비닐봉지를 주거든요. 그 봉지를 모아놨다가 쓰레기를 버릴 때 다시 재사용해요.”     


“오 그렇군요, 한국 사람들은 장 보러 다닐 때 비닐봉지 말고 가방 같은 건 안 사용하나요? 예를 들면... 에코백 같은 것도 있잖아요.”     


그의 말을 듣고 좀 웃었다. 하필 예시로 든 게 에코백이라니. 질문에 맞지 않은 하고 싶은 말들이 마구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좀 고민하다가 답했다.     


“전 에코백이 싫어요.”     


그가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다 황당하다는 듯 나를 보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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