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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민주 Oct 28. 2023

ECO 하지 않은 것들 (2)

나는 태어나서 한 번도 에코백을 사본 적 없다. 에코백이 한 참 대한민국에 붐이었을 때도 나는 언제나 책가방파였기 때문에 별 관심이 없었다. 패션에 관심이 없었던 나에게 에코백이나 클러치, 옆으로 매는 백들은 모두 그다지 편하지도 않은 천 쪼가리에 불과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정신 차리고 보니 수많은 에코백들이 서랍 한 칸을 채우고 있었다. 00대학교 에코백(심지어 이 대학은 내가 졸업한 학교도 아니다.), 00기업 에코백, 00재단 에코백, 00시민단체 에코백, 00행사 기념 에코백 등등... 심지어 면접을 보러가서 최종탈락하게 된 모 회사에서도 면접비 대신 에코백을 줬었다. 독립할 때 많은 에코백을 놓고 왔는데도 불구하고, 난 지금 10개나 되는 에코백을 가지고 있다. 그 중에 사용하는 것은 친구가 선물로 만들어준 에코백과 회사에서 받은 에코백, 딱 두 개다.


에코백, ECO라는 이름이 주는 멋짐 때문인지 어느 순간부터 오만가지 행사와 회사에서 에코백을 찍어내기 시작했다. 양산형 애니, 양산형 소설, 양산형 게임, 그 다음은 양산형 에코백이라도 있는 것처럼. 그건 전혀 ECO하지 않은 일임에도 말이다. 양산형으로 만들어진 에코백은 모두 대문짝만하게 조직 이름이나 행사 이름이 아주 못생기게 들어가 있었다. 당근에 몰래 되팔수도 없게 만들어졌다는 뜻이다. 하기야, 행사 좀 다녀본 나와 같은 대한민국 국민들은 벌써 서랍에 나처럼 양산형 에코백 10개 정도는 가지고 있어서 이미 중고 에코백같은 것은 애초에 필요 없는 것일수도 있다.

     

“저희 집에는 비닐봉투만큼 많은 에코백이 있어요. 이제 에코백은 전혀 ECO하지 않은 것 같아요.”     


열심히 에코백에 대한 나의 유감스러움을 털어놓은 후 웃으며 그 이야기를 덧붙였다.

화면 너머 원어민 선생님은 이해한다는 듯이 살짝 웃었다.     


“그러면 에코백 이야기 말고 제로 웨이스트나 환경을 위해 실천하고 있는 게 있나요?”     


도시락을 싸다니고 커피를 살 때 텀블러를 가져가고, 배달음식 대신 요리를 해먹고, 당근마켓을 애용하고... 곧바로 질문에 답변하기 위해 운을 뗐다. 그런데 순간 이상한 기분이 들어 멈칫하게 되었다. 어, 그런데 나, 이 모든 일을 환경을 위해 하고 있는 거 맞나?     


한참을 머리를 굴렀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가 하는 모든 행위가 ‘환경을 위해 하는 일’이라 말 할수는 없을 것 같았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볼 때 그 모든 행위는 환경을 위한 실천이라기보다는 나 자신을 위해 하는 일에 가까웠다. 물가가 너무 올라 회사 점심시간에 밥을 사먹기에는 돈이 너무 아까워져서 도시락을 싸다니고, 몇 백원 커피숍 할인을 받기 위해 텀블러를 챙겨다니며, 배달비가 아까워 요리를 해먹고, 가지고 싶은 것은 많은데 그만큼 돈을 아끼기 위해 당근마켓을 애용하는 거니까.


그러니까 이 모든 것은 사실 다 돈 아끼자고 하는 일인 것은 아닐까?     


나는 그저 코리안 스쿠루지였기 때문에 환경운동가처럼 사는 것은 아닐까? 트위터 펌.


질문에 제대로 된 답변을 하지 못하고 수업이 끝나버렸기에 수업 이후에도 질문에 대해 조금 더 고민하게 되었다. 기후위기가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뜨거워지는 여름, 매년 반복되는 기후 재난, 그 속에서 고통받는 사람들, 죽어가는 물고기들, 황폐화되는 아마존, 플라스틱을 먹이인 줄 알고 삼켰다가 목숨을 잃은 바다 새. 기후위기를 경고하는 사진과 영상은 차고 넘쳤다. 그 속에서 사람들은 열심히 기후위기를 막아내자고 주장하기도 했지만, 어차피 지구가 망할 거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먼 나라 전 대통령은 기후위기가 아예 사실이 아니라고 발언하여 큰 해외 토픽으로 등재되기도 했다.


영어 수업의 결론으로, 나는 글을 써보기로 했다. 가성비 중심, 코리안-스크루지, 자본주의 사회에 살아가는 사람으로 환경 파괴를 막기 위해 무엇을 해보아야 할까? 앞으로 연재할 글들은 나의 주변의 이야기도 포함하고 있을 것이다. 살아가는 것 자체가 그저 쓰레기를 생산하는 과정이라고 말했던 친구, 내가 하고 있는 일이 환경을 파괴하는 일인 것 같아 고민하던 친구, 기후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기후위기에 대해 고민하는 것을 선택했다면 진심으로 환영한다. 우주적 관점에서 티끌과도 같은 지구에 사는 더 티끌같은 한 개인이 기후위기라는 거대한 문제를 고민한다는 것 자체가 무척 용기있는 일일 것이다. 우리는 아직 지구 외에 우리가 살아갈 새로운 행성을 찾지는 못했지만, 우리의 행성을 새롭게 만들 방법은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필요한 전제는 당신과 내가 같은 목표를 두고 함께 협력해야한다는 지점 정도밖에 없다. 그럼 같이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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