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달리기의 시작 - 별거 아닌 고통을 위하여
처음부터 달리기를 좋아한 것은 아니었다.
달리기는 내가 싫어하는 종목이었다. 꼼수가 통하지 않는, 그저 열심히 달린 만큼만 줄어드는 거리.
지름길도 없이 온전히 내 발로 달려내야만 하는 길. 결국은 달려내야 하는 길.
그런 내가, ‘달리고 싶다’라는 생각은 언제 하게 되었을까.
‘달리기를 하고 싶다’ 라는 생각을 처음 했던 것은, 아마도 2019년즈음.
언니에게 달리기가 하고 싶으니 우이천에 가자며 졸랐던 것이 기억이 난다. 가끔 언니와 함께 강아지를 산책시키러 나가면, 강아지의 속도에 템포를 맞춰 걷고 뛰고 해야만 했다. 그러다보면 혼자 내 페이스대로 맘껏 달리고 싶은 욕구가 드는 것이었다. 홀가분한 달리기가 하고 싶었다.
왜 그랬을까? 왜 달리고 싶었을까?
그 전의 달리기를 기억해보니,
친구와 한강을 따라 6km를 뛴 적이 있고, 하늘공원을 또 그정도 거리를 뛰었었다. 내내 달리지는 않고 반환지점에서 조금 쉬었다가 다시 달렸던 것 같다. 쌀쌀하던 계절에 반팔을 입고, 불어오는 바람에 기분 좋은 시원함을 느끼며 달렸다. 천천히 뛰면서 보이는 풍경이, 느리게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그림자가 좋았다. 같이 뛰는 친구는 무척 힘들어 했는데 나에게는 즐거운 경험이었다.
언제부터 달리기가 즐거웠을까?
또 가만히 생각해보니,
예전에 크로스핏을 할 때, 매일 수행해야 하는 운동 종목이 바뀌는데, 수많은 종목 중에 유독 달리기가 나는 너무 싫었다. 달리기가 포함되어 있는 와드를 하면 쉽게 지치고 더 고통스러웠다. 숨이 차고 다리에 힘이 풀려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내 모든 체력을 빨아들이는 블랙홀 같은 달리기!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난 어느날, 400m달리기가 포함된 와드를 수행하는데 어라? 고통스럽지 않았다. 400m달리기를 포함해서 3가지 운동 종목을 수행해야 했고 그렇게 5라운드를 반복하는데 예전만큼 고통스럽지 않았다. 전에는 3라운드까지만 해도 죽을 것 같았는데.
전에는 너무 고통스러웠던 일이 이제는 고통스럽지 않다는 것.
그 변화가 놀랍고 매력적이었다.
절대치의 고통이란 없구나!
나는 예민하고 섬세한 사람이다. 이것은 나의 장점이 되기도 하지만 치명적인 단점이기도 하다.
감정의 증폭이 크고, 늘 통제되지 않는 불안과 두려움에 시달린다. 모든 일에 무뎌지고 싶지만 내 예민한 센서들은 나를 가만 두지 않고 시도때도 없이 울리며 나를 괴롭힌다. 늘 전쟁을 치르듯 긴장하게 된다. 그러니 삶이 늘 고통스럽다.
그런데 전에는 고통스러웠던 문제가, 지금은 견딜만한 것이 된다는 것.
달리기를 통해 느낀 그 성장하는 느낌이 좋았다.
고통의 절대값이 있는 게 아니구나. 같은 고통도, 별거 아닌 걸로 만들 수가 있구나.
계속 가보자. 덜 고통스러운 삶을 향해.
..라는. 희망 비슷한 것이 생겼달까.
사람들 속에 있는 것은 괴롭다. 시끌벅적한 환경 속에 오래 노출되는 것도 고통스럽다.
사람 많은 대중교통을 타면 숨이 턱 막힌다. 사람들 앞에서 서야 할 때는 손발이 떨린다.
견딜 만한 삶이 되기 위해 나는 어떤 훈련을 계속해야 하는 걸까.
나의 감정과 불안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나는 스스로의 상태를 정확히 알고 객관적으로 보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기위해 상담을 받는 것도, 심리학 책을 읽는 것도, 현명한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도 좋아한다.
그래서인지 실제로 내가 만난 상담사들은, 내가 메타인지가 좋은 편에 속한다고 하더라.
그리고 사람들의 시선이 너무 힘들었던 나는,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벽을 오르고, 실패하여 떨어지기를 반복하는 실내 클라이밍을 꾸준히 하고 있고, 이또한 처음엔 벽에 매달리는 시도 한번 한번이 어렵고 부끄럽고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지만 이제는 수많은 시도와 실패가 쌓여 사람들 앞에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벽을 오른다.
삶에서 강해진다는 것은 뭘까.
눈 앞의 상대를 쓰러뜨리는 것, 격투 종목을 떠올려 본다.
그것 또한 강함이지만, 장거리 달리기 선수의 강함은 자기 자신을 상대로 한다.
자신의 감정, 생각, 신체 상태를 면밀히 주시하며 컨트롤해야 긴 코스를 완주할 수 있다.
어느 정도 속도로 어떻게 달려야 완주할 수 있는가. 지금 나는 어느정도 체력을 남겨 두고 있는가.
호흡은 너무 거친가. 나는 집중하고 있는가.
육체가 한계 상황에 도달했을 지라도 한발을 더 가보는 용기와 끈기.
끝에 도달하지 못할지라도, 스스로 할 수 있다고 자신을 다독이고 믿어보는 신뢰.
고통스럽지 않은 삶을 택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스럽더라도 견디며 나아가는 힘을 기르는 것.
달리기를 하고 싶은 이유는 그런 것 같다.
더 잘 견디게 될 나를 위해.
어제의 극악무도한 고통이, 오늘의 별 거 아닌 고통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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