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한 사람이 우린 필요해
방송에서 박상미 상담사가 나와서 그런 얘기를 했다.
사람은 모두 변할 수 있다. '하나님' 그리고 '좋은 사람'을 만나면.
그 말을 듣고, 그렇다면 좋은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 생각했다.
삶의 변화가 절실히 필요한 그 사람에게 나도 좋은 사람이 되어주고 싶었다.
그러려면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그저 다정하고 친절한 사람이 좋은 사람일까.
주변 사람에게 물었다.
"네가 생각하는 좋은 사람은 어떤 사람이야?"
"안정감을 주는 사람이요"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칠 생각이 없는 사람?"
각자에게 '좋은 것'다르듯이 '좋은 사람'의 기준도 다양했다.
그럼 내 기준에서 좋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그 사람의 삶의 태도가 내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면, 그 사람은 좋은 사람이지 않을까?
내가 뭔가를 잘못하거나 어리석은 선택을 했을 때, 진중하고 사려깊에 그 부분을 짚어주고 바로잡을 수 있도록 조언해주는 사람도 좋은 사람이고.
같이 있을 때 편안한 사람, 닮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밝고 선한 사람이면 그 사람도 좋은 사람인데.
긴 생각 끝내 내가 내린 좋은 사람의 정의는 '내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었다.
그러다 문득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올랐다.
내가 일기장에 적었던 한 문장.
그런데 그보다 더 높은 차원에서 좋은 사람은 바로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었다.
내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있으면, 내 삶은 전보다 더 나은 방향으로 갈 수 있을지 모른다.
더 좋은 방향으로 성장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 인생에서 나를 믿어주는 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내 삶의 중심을 뚫고 들어오는 사건이다.
나를 믿어주는 그 한 사람을 만나면, 사람의 삶의 180도 변할 수 있다.
불가능한 일을 해낼 수 있는 힘을 얻게 될 것이다.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올랐다.
내가 몇 년 전 일기장에 적었던 말.
'나를 믿어 주는 사람. 그 한 사람만 있으면 나는 뭐든 할 수 있다' 라는.
일기장에 그렇게 적었던 때는, 약 7년 전 쯤. 내게 번아웃이 찾아와서 일도 그만두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던 시기였다. 집 밖에 나가는 것 조차도 힘든 상황에서, 내 스스로가 너무 형편없고 가치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아 우울해 하던 시기다. 막연하게 하고 싶은 것은 있지만, 아무 의욕도 자신감도 없었다.
그때 나의 한 친구가, 나도 믿지 못하는 내 미래를 믿어주었다.
지금은 잠시 멈춰 있지만, 이 시기를 통과한 후 꽃피울 내 미래의 모습은 아름다울 거라고. 그런 잠재력이 네 안에 있다고.
내가 나를 믿을 수 없을 때, 너무도 확신 있게 나를 믿어주는 그 한사람이 있어서 나는 다시 힘을 낼 수 있었다. 그때 일기장에 적어 놓았던 말이다.
더 어렸을 때도, 방황하던 나를 믿어주던 한 사람이 있었다.
고등학교에 간 후에 자퇴를 결심하고, 상담을 하고 싶어서 중학교 때 국어 선생님을 찾아갔었다.
담임선생님인 적은 없었지만, 내가 쓰는 글들을 관심있게 봐주고 나를 아껴주시던 선생님이었다.
모두들 자퇴를 말리고, 나를 근심어린 표정으로 바라봤었는데
그 선생님만은 유일하게
'너는 자유로운 영혼이고, 지금 네가 겪는 일들이 나중에 너의 글에 좋은 자양분이 될거야.'라며 내 마음을 이해해 주시고, 내 선택을 믿어주셨다. 나는 그날 선생님 앞에서 펑펑 울었다.
나도 내 마음을 잘 모르겠을 때, 혼란스럽고 두려울 때,
나를 믿어주는 그 한 사람의 따뜻한 눈을 마주하면 참았던 눈물이 터지고 굳은 마음이 녹아내린다.
시간이 흐르고 방송작가로 바쁘게 살아가면서, 선생님의 그 눈빛을 잊지 않았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서른이 넘어서 저 이렇게 글도 쓰고 그림도 그려요, 라는 결과물을 손에 쥐고 선생님을 찾아뵈었다.
선생님은 울먹이며 나를 반겨주셨다. 내가 그린 그림책을 받아 들고 '그래, 맞지. 이게 너지.'라고 말씀하셨다.
나도 내 자신을 믿을 수 없을 때 나를 믿어주던 한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들이 믿어주는 모습대로 꿋꿋이 걸어갈 수 있었다.
그래서 다시 정정하자면
'좋은 사람'이란, 내가 내 자신의 진정한 모습으로 살아갈 것을 믿어주는 사람.
나도 믿을 수 없는 나의 잠재력을 믿고 응원해주는 사람. 바로 그런 사람이다.
방황하는 우리에겐 그런 사람이 필요하다.
(+ 나를 죽기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