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월의거북 Aug 20. 2022

[방황하고 있습니다] 손을 잡아보면 알아요

쫄보와 문신과 고통의 상관관계



크로스핏을 하러 갔는데 유독 풀업 횟수가 많은 와드를 하게 되었다. 

5라운드까지 다 마치고 나니 양쪽 손바닥의 굳은살이 뜯겨 피가 났다.

굳은살이 있는 상태로 풀업을 하면 

이렇게 손이 까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잊고 있었다.  

이틀 뒤 다시 운동을 하러 갔는데 와드에 또 풀업이 있었다. 

손이 까져서 풀업을 못한다고 말하고 다른 동작으로 대체해서 운동을 했다.  


운동이 끝나고 코치님이 손 까진 사람들은 다 손 씻고 이리로 오라고 했다.

약상자를 들고 있는 코치님 모습을 보니, 얼마 전 소독 시간에 들은 비명소리가 기억이 났다. 

매 맞기 싫어서 손을 뒤로 감추는 아이처럼, 나는 전혀 아프지 않다고 웃으며 말했지만 

-얼른 손 씻고 오세요.

-네 

어림도 없었다. 


손 씻고 와서 코치님께 쭈뼛쭈뼛 손을 내밀고 안 아프게 해달라고 했다. 

아플 것을 알지만 주사 맞기 전에 간호사에게 '안 아프죠?'라고 묻는 자기 암시 같은 거다. 

'안 아프게 해 달라'라고 하면 그래도 내 의사를 전달했으므로 조금은 마음이 편...해 지지는 않았다. 

 

익숙한 듯, 옆에 있던 회원들이 내 양손을 꽉 잡고 못 움직이게 고정시켰다. 

나는 코치님께 양손을 내밀고 '통촉하여 주시옵소서'자세로 머리를 바닥에 조아렸다.   

한 손으로는 소독약을, 나머지 한 손으로는 내 손을 잡고 있는 코치님이 말했다.  


-겁이 진짜 많구나. 손 잡아보면 알아요. 봐, 손 떨잖아.  


양 옆 두 사람에게 포박당한 채로 내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곧 까져서 벌겋게 드러난 살점 위로 소독약이 묻은 솜뭉치가 닿았다.

굳은살이 있었던 손바닥이 잘못인가, 풀업이 잔뜩 들어간 와드를 짠 코치님 잘못인가, 손이 까질 것을 잊고 열심히 한 내가 죄인인가, 이 고통은 무엇에 대한 대가인가. 생각하지 말자. 무념무상. 

   

소독하는 동안 까진 손바닥과 더불어 왼쪽 팔 안쪽의 문신이 형광등 아래 훤히 드러났다. 

문신도 문신이지만, 팔목의 흉터도 민망하리만큼 선명하게 고스란히 내보여졌다.  

그때 아마 누군가가 '문신 한 사람들도 소독하는 건 겁내더라고!' 하면서 

소독의 아찔한 두려움에 대해 농담처럼 얘기를 했는데,  

과연. 겁 없는 사람들이 문신을 하게 되는 확률이 높을까? 그 반대일까.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자세에서 참 많은 생각을 했구나)

실은 살아가는 게 너무 두렵고 무서운 사람들이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문신을 하는 확률이 더 높지 않을까,  

나는 겁쟁이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투쟁을 위한 증표가 필요해서, 

끊임없이 자신의 신념을 잊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서.

끊임없이. 살아가기 위해서. 

살아야 할 이유를 기억하기 위해서. 

또는 이기기 위해서. 무엇과? 두려움과. 

그래서 나를 지켜줄 문신이라도 필요했던 게 아닐까.

 

절망의 순간에 기억할 한 마디. 수호신. 맹수. 살아야 할 의미.  

나의 경우엔 문신사가 클래식 암즈라고 부르는 스타일의 문신을 새겼는데

간단한 선과 도형 같은 것으로 이루어진 문양이다. 

내 삶의 이야기들을 비밀처럼 암호처럼 그려냈지만

결국은 누군가가 풀어주길 바란 암호가 아니었는지 생각한다.   


문신을 했지만 그렇다고 아픈 게 무섭지 않은 건 아니다. 

내 몸을 학대하는 방법으로 고통을 견디긴 했지만

그렇다고 고통에 익숙한 것도 아니다.  

나는 쫄보다. 

그래도 도망가지 않고 소독을 했고 (도망갈 수 없게 포박해 주신 분들께 감사합니다) 

그리고 상처는 아물거나 잊힐 테니까. 

그러면 나는 또 열심히 운동을 할 거다. 


세상의 수많은 쫄보들과 힘을 합쳐 

살아갈 거다. 



작가의 이전글 [방황하고 있습니다] 무수한 실패를 쌓아가는 취미생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