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은 왜 '맺관계'를 선택했을까

맺떼_국제정치 / EO-IRE 적용 텍스트 No.3

by 이도

(21세기 후반 어느 시점의 회고 인터뷰)



# 중국과 일본, 한국을 향한 러브콜


Q : 그럼 한중일 관계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A(도이나) : 당시 중국의 동북아 전략 중 하나는 한국과 일본을 분리시키는 것이었습니다. 방법은 사실 단순했습니다. 한쪽에는 혜택을 주고 다른 쪽에는 압박을 가하면서 두 나라 사이의 신뢰를 흔드는 방식이었지요.

반면 일본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미국의 영향력이 예전보다 약해진 상황에서 중국의 부상은 일본에게 현실적인 위협이었습니다. 일본은 한국과 강한 맺관계©를 형성해 중국에 대응할 수 있는 힘을 만들기를 원했습니다. 반대로 중국은 동북아에서 확고한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한국을 자신의 영향권 안에 두려 했습니다.

결국 그 시점에서 한국은 양국 모두에게 중요한 맺관계©였고, 중국과 일본은 서로에게 떼관계©에 가까운 존재였습니다.




# 한국 근현대사의 변곡점


Q : 그렇다면 한국에게 이것이 왜 중요한 문제였습니까?


A(도이나) : 그것이 한국 현대사의 하나의 변곡점이었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미국 중심의 서방 세계와 더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유리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미국은 한국을 강한 국가로 만드는 것이 자신들의 전략적 이익과 크게 충돌하지 않았지만, 중국과 지나치게 가까워질 경우 한국의 자율적 공간이 줄어들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의 이유는 한국의 국가 전략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한국이 가진 물리적 규모를 생각하면 단기간에 압도적인 강대국이 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하나의 선택지로 두려움을 받는 국가가 아니라 사랑받는 국가가 되는 것도 고려해 볼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K-pop이나 드라마 같은 문화적 영향력은 그런 전략에서 중요한 자산이 될 수 있었습니다. 국제사회에서 호감을 얻는 이미지는 국가의 자율성과 생존 공간을 넓히는 하나의 기반이 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 동북아 삼국간의 역학관계


Q : 동북아의 힘의 균형이라는 측면에서는 어떤 고려가 작용했습니까?

A(도이나) : 당시 동북아의 힘의 구조는 비교적 명확했습니다. 중국은 압도적인 규모의 경제력과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고, 한국과 일본은 서로 뚜렷한 우위를 가리기 어려운 수준이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한국이 일본과 협력한다면 중국과의 관계에서도 일정한 협상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됨과 동시에 자신의 몫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이 중국과 손잡고 일본을 견제하는 구조가 형성된다면 이후에 한국이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기는 훨씬 어려워질 수 있었습니다.


결국 한국에게 중요한 질문은 단순히 누가 더 강한가가 아니라 어떤 관계 구조가 더 많은 선택지를 남겨주는가였습니다.




# 산업적 측면. 미국, 대만 그리고 한중일.


Q : 경제나 산업적인 측면도 영향을 주었습니까?


A(도이나) : 물론입니다. 두 가지로 나누어 얘기해볼까 합니다.


첫째, 중국과 미국 그리고 대만에 대한 것입니다.

미국이 2020년대 반도체법 서명 등을 통한 반도체 리쇼어링이 결실을 거두게 되어 미국내 첨단 시스템 반도체 수요의 상당부분을 자국내 생산분으로 충당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었습니다. 이렇게 되자 미국입장에서 대만과의 맺관계©에 대한 상손익©이 대폭 감소하게 되었습니다. 즉, 그에 대한 비용을 들일 이유 또한 줄어들게 된 것입니다.


중국의 대만병합에 대한 입장은 깊은인식속에 자리잡은 것이었고, 미국이라는 떼관계가 사라지자 실행의 가능성은 상승했습니다. 결국 주사위 6이 연달아 등장했을 때, 사건은 벌어졌습니다. 이에 한국과 일본은 순망치한(脣亡齒寒) 이라는 단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둘째, 한중일 삼국간에 대한 것입니다.

한국 산업 구조도 중요한 배경이었습니다. 당시 한국은 중국과 일본에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중국은 핵심 광물과 같은 자원 측면에서 중요했고, 일본은 정밀기계와 핵심 부품 같은 기술 측면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특정 분야에서 공급 관계가 사실상 하나로 제한되는 상황입니다. 그런 경우 협상력은 거의 사라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맺지 않으면, 그리고 떼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두 의존은 성격이 달랐습니다. 광물은 지리적으로 특정 지역에 집중되어 있기는 하지만 다른 공급처를 찾을 가능성이 비교적 존재했습니다. 반면 정밀부품과 핵심 기술은 오랜 산업 축적과 기술 체계 위에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단기간에 대체하기가 훨씬 어려웠습니다. 따라서, 산업적 측면에서, 한국 입장에서는 일본과 동행을 하는 것이 잠재적으로 더 비용 측면에서 유리한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역사적 균형추의 이동


Q : 결국 그 선택은 어떤 결과를 낳았습니까?


A(도이나) : 흥미로운 점은 그 과정에서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과거와는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양국 사이에는 복잡한 감정이 존재했지만, 현실의 전략 환경은 협력을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즉, 떼관계©가 맺관계©로 전환(떼맺©)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관계 속에서 한국은 예상보다 유리한 위치를 확보하게 됩니다.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한국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있었지만 일본에게는 그 대안이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일본에게 한국은 중국과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사실상 유일한 파트너에 가까웠습니다. 그 결과 동북아의 역학 속에서 관계의 균형추는 조금씩 이동하기 시작했습니다.



※ 글에 등장하는 ©표시 개념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1. 글쓴이의 네이버 블로그(https://blog.naver.com/ido_khh)

2. 네이버 검색 ‘맺관계 떼관계’를 참고하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제항재립론(EO-IRE)적용 텍스트이며, 2025년 12월 온라인 커뮤니티에 게시했던 글을 요약해 다시 올린 것입니다. 원문은 글쓴이의 네이버 블로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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