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사원 때 일이다. J주임이 대리로 진급한 날이었다. 평소 J주임과 친하게 지내던 K대리는 다음 날 J주임보다 일찍 출근해서 그의 명패를 대리로 바꿔놓으라고 했다. 어렵지 않은 일이었기에, 알겠다고 하고 다음 날 조금 일찍 출근해서 명패 양식을 찾았다. 그런데 부서 공통폴더에 있을 줄 알았던 명패 양식이 어디에도 없었다. 바로 위 선배에게 카톡으로 물어보니 본인 개인 컴퓨터에 양식을 저장해 놓았고, 자기가 출근하면 바꿔 놓을 터이니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나 또한 별 일 아니라고 생각하여 알았다고 하고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선배가 도착하기 전에 J주임이 먼저 출근했고, 이어서 K대리가 도착했다. 그리고 도착하자마자 명패부터 확인한 K대리는 아직도 주임으로 되어 있는 명패를 보고 이성을 잃었다.
“OO씨! 내가 어제 명패 바꿔 놓라고 했을 텐데?! 내 말이 그렇게 어려웠나?”
물론 어렵지 않았다. 나는 상황을 충분히 이해했고, 위와 같은 사정이 있었다. 그리고 해야 할 일이 있었고, 명패 교체는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에 대해 설명했지만, 이미 화가 잔뜩 나있던 그녀에게는 명패 하나 제대로 바꿀 줄 모르는 폐급 신입사원의 한심하고 비겁한 변명으로 들릴 뿐이었다. J주임 아니 J대리에게 기분 좋은 하루를 선물하고 싶었던 그녀의 마음을 내가 망친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감히 신입사원이 자신의 지시사항을 따르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녀는 참을 수 없었다.
J대리는 원래 자회사에서 대리로 일하고 있었다. 자회사에 있을 때부터 K대리와는 비슷한 연배로 서로 업무를 하며 살뜰히 챙겨주던 사이였다. 그런데 J대리가 과장으로 진급하기 직전에 자회사가 본사와 합병되었고, 급여를 맞추기 위해 J대리는 다시 J주임으로 강등되었다. 과장으로 진급해야 할 시기에 오히려 주임이 되었으니,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을까. 그리고 몇 번의 누락 끝에 다시 대리로 진급했으니, 평소 친하게 지내던 K대리로서는 어떻게든 챙겨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출근하자마자 대리로 바뀌어 있는 명패를 보며 그가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하게 해주고 싶었던 마음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는 이유로 다른 누군가를 탓할 수 있을까. K대리 역시 J대리를 위하는 자신의 마음이 누군가를 아프게 하기를 바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실 누군가를 챙겨주고 싶었다면 본인이 직접 하면 될 일이다. 물론 이를 타인에게 '부탁'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부탁'이다. 상대방이 이를 들어주지 못했다고 하여 탓할 일은 아니다. 만약 회사의 업무와 관련된 것이었다면 상대방에게 상황을 정확히 설명했어야 하고, 이 경우에도 결과에 대해서는 책임자인 본인이 져야 한다. 하지만 이는 업무 관련된 일도 아니었고, 어디까지나 배려의 영역에 있는 일이었다. 단지 그 배려의 영역에 사회 초년생이었던 내가 들어갈 자리가 없었을 뿐이다.
회사생활을 하다 보면 이런 일은 흔하다. 이러한 행동의 저변에는 하급자는 상급자의 지시에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는 의식이 깔려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신입사원은 동등한 성인도, 동등한 사회인도 아닌 지시하고 가르쳐야 할 대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가르쳐야 할 대상도 아닌 그냥 자신의 일을 넘길 수 있는 대상으로 인식하는 경우도 있다. 만약 K대리가 J대리와 나를 동등한 성인으로 존중했다면, J대리를 위해 나를 비난하거나 모욕하는 일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많은 이들이 신입사원도 20대 중반 아니면 30대 초반의 어엿한 성인이라는 사실을 종종 간과한다. 비록 본인보다 아랫사람이라도 누군가가 살아온 30년의 시간은 절대로 가볍게 말할 수 있는 시간들이 아니다. 신입사원들도 하나하나 쉽사리 정의 내릴 수 없는 저마다의 역사를 품은 성인들이다. 단지 회사생활을 잘 몰라서, 아직 업무를 배우지 못해서 잠시 어리숙한 모습을 보이고 있을 뿐이다. 몇 년 전 J대리와 K대리가 그랬듯이 말이다. 그들 또한 한 때 존중받지 못했고, 배려받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기억들이 그들에게도 사회초년생은 함부로 대해도 되는 존재라는 마음을 은연중에 갖게 했을 것이다. 이제 이런 악순환은 그만할 때도 됐다.
얼마나 많은 아픈 말들이 오고 가야 우리가 사회 초년생들을, 그리고 후배들을 한 사람의 어엿한 성인으로 존중해 줄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시간들이 흘러야 이 사회에서 상처가 또 다른 상처의 이유가 되는 일이 없어질까. 부디 내일은 우리의 세상에 누군가에 대한 배려가 또 다른 누군가를 아프게 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타인을 위하는 당신의 선한 마음이 언제까지나 선한 마음으로 빛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