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하나 놓여있는 자그마한 방. 나는 편지를 쓰고 있었다. 내게 안겨 갑자기 흘린 눈물에, 나를 원망하던 눈빛에, 후회와 안타까움으로 가득 찼던 그 말들에 밀려 차마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나는 주저리주저리도 끄적거렸다. 처음에 내가 느낀 감정은 어떤 것이었는지, 그녀가 나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나는 그녀를 왜 이해할 수 없는지를 편지지 가득히 써 내려갔다. 그러나 그것은 시기를 놓친 말, 더 이상 아무런 의미를 가질 수 없는 말들로 그저 '미련'이라는 단어 하나로도 충분한 그런 것들에 불과했다. 나를 설레게 했던 말들도, 내 품에 안겨있던 그 존재도, 내 얼굴을 간지럽혔던 차가운 긴 머리도 모두 부질없는 허상이고 망상이었다. 그러나 나는 행여나 그 허상이 흩어질까 조심스레 품에 안고, 한 자 한 자 정성스레, 부치지 못할 그 편지를 써내려갔다. 내가 누구인지 무슨 이유로 이 편지를 쓰고 있는지도 잊어버린 채, 나는 계속하여 그것을 써내려갈 뿐이었다. 책상 하나 놓여있는 나의 작은 방. 나의 상념이라는 안개로 둘러싸인,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나만의 그 곳은, 나의 자그만한 '무진'이었다.
1. 나는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당신의 삶의 주인인가? 정말로 그렇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이 순간 당신의 삶에서. 당신의 의지대로 이루어진 것은 얼마나 있는지 생각해보라. 만일 모든 것이 그러하다면, 이것은 꿈이리라. 그리고 당신은 언젠가 잠에서 깨어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당신이 다시 잠을 청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 꿈은 너무나 달콤했을 테니까. 그 꿈을 꾸기 위해 다시 잠들고 싶지만 더 이상 잠들 수 없다는 자각이 느껴질 때, 마치 뇌에 안개가 뿌옇게 차오르는 것 같은 두통이 느껴질 때, 그렇다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기에는 육신이 깊은 늪으로 빠져드는 것처럼 무거울 때, 당신은 무진에 있다.
무진.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을 통해 널리 알려진 곳이며, 공지영의 소설 도가니의 배경이기도 한 이 곳은, 사실은 실존하지 않는 가상의 공간이다. 우리는 무진기행에서 무진이 광주에서 버스로 갈아타서 한참을 가야 한다는 것과 바다 근처에 있지만 항구는 아니라는 것. 이렇다 할 평야가 없어 농촌도 아니라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 육 만이나 되는 인구들이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는 곳이라는 것 정도를 알 수 있다. 마치 '무진'에 대하여 어느 정도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은 셈이다. 하지만 이에 대하여 소설 속 주인공 윤희중은 한 가지 분명한 특징을 제시한다.
안개.
결국 우리가 '무진'에 대하여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것은 그 곳이 아침이면 여귀가 뿜어내놓은 입김과 같은 안개에 빙 둘러싸인다는 것이다. 안개에 둘러싸인 알 수 없느 곳. 그 곳이 바로 '무진'이다. 무진기행은 주인공 윤희중이 버스를 타고 무진으로 가고 있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2. 윤희중은 서울에서의 실패로부터 도망해야 할 때거나 무언가 새 출발이 필요한 때면 언제나 이 '무진'을 찾았다. 하지만 그것은 '무진'에서 새로운 용기라든가 새로운 계획이 술술 나오기 때문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곳은 그에게 '신경질'과 '공상'과 '불면'의 기억으로 가득한 '어둡던 청년'으로 표상된다. 그가 꺼내놓은 무진에 대한 첫 번째 어두운 기억은 그의 어머니에 대한 것이었다. 6.25 사변 당시 모두가 전쟁터로 끌려갈 때 그는 그의 홀어머니에게 몰려 골방 속에 숨어 수음을 하고 있었다. 그는 골방보다는 전선을 택하고 싶어 했지만 그의 홀어머니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그의 어머니는 이웃집 젊은이의 전사 통지가 오면 그가 무사한 것을 기뻐했고, 일선에 있는 그의 친구에게서 군사 우편이 오면 그 몰래 그것을 찢어 버리곤 했다.
그리고 성인이 된 현재 그는 돈 많은 과부와 결혼하여 제약회사의 전무 취임을 눈앞에 두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능력이나 의지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어디까지나 그의 아내가 짜놓은 판대로 움직인 결과였다. 그는 아내의 말을 따르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고 그것은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그가 무진에 오게 된 것도 사실 장인 영감과 아내의 권유에 의한 것이었다.
그는, 그의 삶의 주인이 아니었던 것이다. 윤희중의 이상은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되는 것이었다. 이러한 이상이 어린 시절에는 어머니로, 성인이 된 후에는 아내로 대변되는 현실에 의해 억눌려 왔던 것이다. 그는 이것을 오욕이라고 생각했고, 이에 대하여 스스로에게 모멸감을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은 그러한 족쇄들이 결과적으로 그에게 나쁘지 않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어머니 덕에 생명을 구할 수 있었고, 아내 덕에 사회적으로 성공한 삶을 살 수 있었다. 자신을 구속하고 있는 안락한 현실. 그 안에서 자신은 온전히 하나의 인격적 주체로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지만, 그에게는 그것을 뿌리칠 수 있는 용기가 없었다. 기껏해야 무진으로 숨어버리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무진은 안개로 둘러싸인 은밀한 곳이며, 타인이 하는 모든 행위가 무위로 간주되는 곳이기에 그가 현실로부터 숨어 있기에 알맞은 장소였던 것이다.
무진에 오기만 하면 내가 하는 생각이란 항상 그렇게 엉뚱한 공상들이었고 뒤죽박죽이었던 것이다. 다른 어느 곳에서도 하지 않았던 엉뚱한 생각을, 나는, 무진에서는 아무런 부끄럼없이, 거침없이 해내곤 했었던 것이다.
3. 당신이 당신의 삶의 주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면, 나는 다시 한 번 당신에게 묻고 싶다. 당신의 삶에서 한 순간이라도 당신이 주인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당신은 그 기회를 아무런 망설임 없이 잡을 수 있겠는가? 당신에게는 당신이 한 그 선택의 결과를 온전히 받아들일 용기가 있느냐 말이다.
윤희중에게는 하인숙이라는 기회 혹은 시험이 주어진다. 처음에는 그녀 역시 밤에 만난 사람들처럼 흐릿한 이미지에 불과했다. 그녀는 박 군과 세무서장 조 사이에서 삼각관계를 만들기도 하고, 처음 만난 윤희중에게 무작정 자신을 서울로 데려가 달라고 부탁하는 등 이해타산적인 모습을 보인다. 반면에 그녀에게는 졸업 연주회 때는 <나비부인>을 불렀지만 지금은 화투판에서 <목포의 눈물>이나 불러야 하는, 죽어도 데리러 올 사람 하나 없는 가련한 여인으로서의 모습도 존재한다. 무진에 있는 다른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모호한 정체성을 가진 그렇고 그런 사람들 중 한 명일 뿐인 것이다. 따라서 윤희중에게 하인숙과의 만남이란 무진에서 할 수 있는 수많은 '허위' 중 하나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바다로 뻗은 긴 방죽에서 이야기는 달라진다. 처음과 다르게 하인숙은 윤희중에게 서울에 가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그리고 윤희중이 머무는 일주일 동안'만' 멋있는 연애를 할 계획이라고 말한다. 희미하게 지워질 수 있었던 하인숙이 한 사람의 현실적인 존재로 윤희중 앞에 드러나는 순간이다. 마치 바다로 뻗어 있는 긴 방죽처럼 상념이라는 안개로 가득찬 무진에 현실이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하인숙은 서울에 가고 싶지 않다고 말함으로써 자신의 현실적인 요구들을 거두어들이고 대신 순수한 사랑만을 꺼내놓는다. 이것이 역설적으로 그녀 자신을 윤희중에게 하나의 현실로 등장하게 만들어 주었다. 왜냐하면 '무진'의 다른 모든 것은 허위였지만, 그녀의 사랑은 진실이었기 때문이었다. 오로지 망상의 공간이었던 '무진'에서 윤희중은 하인숙으로 인해 현실적인 책임을 마주하게 되었고, 그것은 그에게 불안감을 안겨주었다.
새벽녘에 잠깐 잠이 깨었다. 나는 이유를 집어낼 수 없이 가슴이 두근거렸는데 그것은 불안이었다. '인숙이'하고 나는 중얼거려 보았다. 그리고 곧 다시 잠이 들어 버렸다.
4. 윤희중은 이제 선택을 해야 한다. 언제나 꿈꿔왔던 이상적 삶과 지금까지 살아왔던 현실적 삶. 하인숙의 사랑으로 대변되는 전자를 택할 경우 그는 더 이상 수동적으로 끌려 다니는 존재가 아닌 자기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세계이며, 너무도 불확실한 미래이다. 아내의 전보로 대변되는 후자를 택할 경우 그는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통제받는 수동적인 존재로 머무르게 된다. 대신 이것은 확실한 것이고, 안락한 삶을 약속해준다. 그는 고민 끝에 마지막으로 한 번만 무진을, 안개를, 외롭게 미쳐 가는 것을, 유행가를, 술집 여자의 자살을, 배반을, 무책임을 긍정하기로 한다. 그리고 그에게 주어진 한정된 책임 속에서만 살기로 전보와 약속을 한다. 이는 후자의 삶을 택하되 전자의 삶도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겠다는 일종의 타협안을 의미한다.
전자의 삶, 즉 무진에서의 삶이란 그가 현실에 안주하기 위해서는 잊어야 하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하인숙의 존재로 인해 무진은 현실공간으로 바뀌어 버렸고, 그는 이마저 무위로 돌려버리지는 않겠다고 다짐한 것이다. 이는 그에게 있어 현실적 삶을 택하더라도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을 수 있는 최소한의 책임을 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그는 전보의 눈을 피하여 하인숙에게 편지를 쓴다. 마치 전자의 삶을 택할 것처럼. 하지만 그것을 찢어버림으로서 무진에서의 시간들을 결국 부정해버린다. 자신의 이상적 욕구에 대하여, 약속했던 최소한의 책임도 지지 못한 채 철저하게 현실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로 인해 그는 심한 부끄러움을 느낀다.
에필로그
펜을 놓고 의자에 기대어 앉았다. 창 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세장 하고도 반장을 빼곡하게 써내려간 편지. 그녀가 이 편지를 받게 된다면, 이것이 그녀에게 기쁨이 될지, 슬픔이 될지, 아니면 아무 의미 없는 휴지 조각에 불과한 것이 될지 나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이것이 그녀에게 도착하는 순간 그것은 하나의 인과를 맺고, 어떠한 현실을 낳게 되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나는 알 수 없는 그 현실에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한다. 나는 편지를 다시 읽었다. 그리고 그 모든 말들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를 생각해보고, 마지막 세 줄만을 남겨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