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 한 잔 만큼의 악의에 관하여

by Demoo

" ㅇㅇㅇ! 너 이리와. 여기 앉아. 이거 마셔."

정확히 3개의 짧은 명령문이 나를 부른다. 그의 앞에는 가득 채워진 소주 한 잔이 놓여있다. 얼마나 가득 따랐는지 잔 위로 술이 둥글게 부풀어 올랐다. 술을 원래 이렇게 따르는 거였나. 평소 주도(酒道)를 강조하던 그 답지 않다. 주도라는 것은 윗사람에게만 지키면 되는 거였는지. 하긴 그 누구도 아랫사람에 대한 주도를 말해준 적은 없었다. 대학생 때도 회사원이 된 지금도 주도는 언제나 일방통행이였다. 나는 잠깐 멈춰서 그를 보았다. 아버지를 흉내 낸 눈빛에 애정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가득하다. 내가 말없이 술잔을 들이키자, 그제서야 그는 만족한 듯 이야기를 시작했다.


"잘 좀 하자."


무엇을 잘하자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 뒤로 한동안 이런저런 조언들이 쏟아졌다. 물론 그 중에 기억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또 다시 그의 말에 순종했다는 굴욕감이 취기처럼 조용히 번져간 기억만 남아있다.


나는 술을 잘 못 마신다. 그리고 해산물과 술을 같이 먹으면 꼭 탈이 나곤 했다. 씨푸드 킴이라 불릴 정도로 해산물을 좋아했던 부장님 덕에 그 날도 우리 부서는 일식집에서 회식을 했다. 몇 번 탈이 났던 경험이 있어서, 술 좋아하는 아저씨들을 피해 일부러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 모습이 마음에 안 들었을까. C차장은 기어코 나를 불러 가득 따른 술을 먹였다. 그는 내가 두 잔 이상 마시면 얼굴이 새빨갛게 변한다는 것과 술이 몸에 받지 않아 회식 후 몇 번 몸져누웠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잔이 넘치도록 술을 가득 따라서 나에게 건넸다. 그리고 내가 자신의 말대로 하는지 내 눈을 빤히 바라보며 기다리고 있었다. 그 자리에는 비즈니스 매너나 같은 회사 동료에 대한 존중 같은 건 없었다. 그 날 표면장력으로 부풀어 오른 소주잔에서 내가 본 것은 아주 작고 순수한 악의였다.


소주 한 잔 만큼의 악의.


물론 그는 나를 위한 것이었다 말할 것이다. 그 한 잔으로 정신 좀 차리자고. 정신을 차리지 않고 살아가기에는 이 사회는 너무나 힘들다고. 정신 차리자. 잘하자. 후배가 망가지도록 내버려 두는 게 아니라 그렇게 엄하게 다스리고 지도해줘야 하는 게 진정한 선배의 역할이라고 그는 말할 것이다. 후배를 위해, 너를 위해, 내가 마시기도 아까운 이 귀한 술 한 잔을 기꺼이 너와 나누는 것이다.

개소리다.


나처럼 체질적으로 술이 안 받는 사람에게 소주 한 잔은 말 그대로 독극물에 불과하다. 그는 살고 싶어 자리를 피한 사람의 입을 벌려 독극물을 들이부었을 뿐이다. 그리고 상대에게 술을 권할 때는 보통 술잔의 2/3만큼만 따른다. 나머지 1/3만큼은 순수한 악의로 채워졌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는 그저 자신이 시키는 대로 그의 악의도 꾸역꾸역 삼키는 신입사원의 모습을 보며, 자신의 권위와 능력을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다.

왜냐하면 그는 불안하기 때문이다.

젊고 새로운 직원들이 들어오는 게 그는 불안하다. 회사생활 내내 현장에서 일하다가 본사 관리직으로 옮기니 모든 것이 낯설고 두렵다. 연차에 비해 아는 게 없으나, 이걸 들키는 건 죽기보다 싫다. 그렇다고 다시 현장으로 나가기에는 체력이 따라주질 않는다. 결국 그가 살아남는 방법은 아랫사람들을 갈구고, 업무와는 관련도 없는 그들의 행동을 지적하며 군림하는 것이다. 그럴 때만이 자기 연차에 맞는 역할을 하는 기분이 드니까. 하지만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도 자존심이 상해서, 후배를 위해서 하는 일이라고, 조직을 위해서 하는 일이라고 그는 스스로 되뇌인다. 하지만 실은 자신의 무능함을 가리기 위한 추잡한 행동에 불과하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다.




어느 회사에나 군기반장 역할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출근할 때부터 퇴근할 때까지 주변 이들을 지켜본다. 다른 사람들이 언제 화장실을 가는지, 업무시간에 휴대폰을 쓰는지 눈에 불을 켜고 살펴본다. 보직자 또는 관리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타인의 업무에 관심이 많다. 멋모르는 신입사원들은 그런 그들의 행동이 자신을 챙겨주는 거라고 착각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조금씩 그들의 지적과 통제에 길들여지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신입사원들이 알아야 할 것은 그들에게는 그럴 권한이 없다는 것이다. 다른 직원의 근태 관리는 그들의 업무가 아니다. 그들은 다른 직원들과 마찬가지로 실무를 수행해야 하며, 평가를 하는 입장이 아닌 받는 입장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마치 관리자처럼 행동한다. 그들은 자신의 행위가 조직을 유지시키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착각한다. 조직은 수직적인 상하관계에 의해 군대와 같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여야 하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들은 있지도 않은 규칙들을 만들어 내며, 개인의 일탈이 조직을 망치게 하지 않기 위해 분투한다.


그러나 사실은 그 반대다. 조직은 그들의 존재로 인해 비효율적으로 굴러간다. 하위 직원들은 그들의 눈치를 보느라 업무를 제대로 할 수 없다. 잠시 쉬었다가 집중을 하는 것이 더 효율적인 상황에서도, 자신을 감시하는 눈 때문에 하루 종일 경직된 상태로 있게 된다. 업무에 집중해야 하는데 타인의 시선에 더 집중하게 된다. 게다가 보직자 및 관리자가 엄연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사 결정권자가 중간에 하나 더 생기니 당연히 업무 효율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실무를 해야 할 인력이 관리자처럼 행동하니, 그만큼의 업무는 또 다시 아래 사람들의 몫이다. 당연히 조직은 삐거덕거리게 된다.




이들은 때로는 고뇌에 찬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군기반장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고충을 털어놓기도 한다. 너를 위해서 이렇게 하는 거라고. 내가 이렇게 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이 더 심하게 갈굴 거라고.

그러나 사실은 너만 가만히 있으면, 아무도 갈구지 않는다.

말은 후배를 위해 조직을 위해 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러한 행동을 통해 자신의 존재가치를 확인하고 싶을 뿐이다. 이런 사람들 대부분은 업무력으로 승부를 볼 자신도 능력도 없다. 회사생활을 조금만 해보면 알겠지만, 잘 나가는 선배들은 자기 일하느라 바빠서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관심도 없다.

결국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작디작은 소주잔의 1/3만큼을 악의로 채우는 것이다. 그것만이 그들이 도태되지 않을 유일한 방법이니까. 그리고 자신 역시 1/3만큼의 악의를 숱하게 들이키며 살아왔으니까. 나 때는 말이야 그렇게 다 참고 견뎠는데 감히 후배가 이를 거절해? 그 꼴만큼은 절대로 억울해서 못 본다. 그럼 자신이 참고 견딘 세월은 무엇이 되는가. 후배들이 자신의 명령에 말없이 따르면서 그 악의를 순순히 들이키는 것을 보아야 드디어 안심할 수 있다. 상명하복의 유구한 역사와 전통이 끊어지지 않고 후배의 식도로 이어진 것을 보아야만 비로소 마음이 놓이는 것이다. 내가 그래도 이 회사에서 하는 역할이 있구나. 나는 이 조직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구나. 그리고 말한다. 사회가 원래 그래. 나도 이러고 싶지 않지만 세상이 원래 그래. 그래서 어쩔 수 없어.


아니, 분명히 말하지만 세상은 그렇지 않다. 그냥 당신이 그런 사람이다. 당신이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도 당신에게 무어라하지 않는다. 악의에 찬 사회를 만들고 있는 것은 당신이다. 당신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그런 사회에 살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러니 부디 당신도 그곳에서 나오기를. 더 이상 스스로 만든 세상에 갇혀서 타인들을 고통 속으로 끌어들이지 말기를. 부디 소주잔에 악의를 채우는 것 보다는 가치 있는 일로 당신의 남은 삶을 채워나가길 바란다.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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