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그 바람이 분다

젊음이 무너지던 날에. 관악 캠퍼스를 달리며. 소회.

by Demoo

열 시 사십오 분. 끼이익 소리와 함께 방문을 열고 나온다. 하숙집 현관에는 언제나처럼 더러운 신발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정말이지 이 집에 사는 인간들은 도통 정리라는 것을 할 줄 모른다. 신발장의 후덥지근하면서도 습한 냄새가 왠지 몸에 묻을 것만 같아 서둘러 운동화에 발을 구겨 넣는다. 대충 발을 맞추고는 녹슨 현관문을 밀고 나온다. 보기보다 부드럽게 열린다. 잠기질 않으니 당연하겠지. 그래도 듣기 싫은 소리 하지 않는 녀석이 밉지는 않다. 밖으로 나오니 날씨가 제법 쌀쌀하다. 조금 있으면 입김이 나올 것 같다. 초등학교 때 누나랑 학교에 가면서 입김을 불며 놀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입김만 불어도 신이 났는데... 몸을 털 듯 제자리에서 가볍게 뛰어본다. 몸을 풀까. 아니다. 그 시간을 기다리는 게 싫다. 달리자. 어깨에 힘을 빼고 천천히 발 끝으로 땅을 밀며 달리기 시작한다.


이 동네에서 달리면 처음으로 마주하게 되는 것은 쓰레기다. 내가 사는 건물 앞에는 쓰레기가 가득 쌓여있다. 비릿한 썩은 내가 코를 찔러 온다. 썩은 내. 그것은 이 빌어먹을 동네의 특산품이다. 청소차가 쓰레기를 아무리 치워도 이 냄새는 사라지지 않는다. 이 동네에서 썩고 있는 게 반드시 쓰레기 뿐은 아닐게다. 성호 분식을 지나 삼성고등학교 후문 쪽 담장을 따라 돈다. 짧지만 제법 경사가 있는 오르막길이다. 달리자마자 오르막을 만나는 게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래서 조금 걷다가 관악산 공원부터 달릴까하는 생각도 많이 했다. 하지만 그 놈의 조급증은 언제나 이 오르막을 달리게 만든다. 천천히. 천천히. 이제 다시 내리막. 그리고 학교까지 평지다. 여기서 속도를 내면 안 된다. 천천히. 천천히. 잊지 말자.


이 시간 쯤 되면 관악산 공원부터 하루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학생들이 보인다. 왠지 모르게 그들 보기 부끄러워 도로로 살짝 비켜서 달린다. 하지만 천천히. 그래 천천히. 잊으면 안된다. 서울대 정문만 지나면 다시 어두워진다. 정문 앞 편의점만 지나면 조금은 편해지리라. 천천히. 천천히. 서울대학교 정문이 보이기 시작한다.

내가 입학했을 때 정문은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이 더러웠다. 사람들의 희망이 온갖 낙서들과 끈끈한 것들로 표현되어 그것을 뒤덮고 있었다. 처음으로 그 곳을 지났을 때 멀리 파워플랜트에서 연기를 내뿜고 있던 모습이 지금도 기억난다. 그 광경이 어찌나 신기하던지. 대운동장 앞의 주차 티켓 부스를 보면 마치 놀이공원에라도 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지금의 말끔해진 정문은 빛이 난다. 밤에 이곳을 지나가면 '던전'에라도 들어가는 기분이다. 재작년에 J가 저길 올라갔었지. 미친 놈. 아침마다 지나가면서 정문 꼭대기에서 얼어있는 그 녀석과 인사하는 게 솔직히 재밌었다. 이제는 J도 낙서도 뭣도 없는 그 밋밋한 정문을 나 홀로 지나간다.



이제부터 학교다. 현수막들이 가득 늘어서 있는 좁디 좁은 길을 달려간다. 나는 이 길이 싫다. 저 현수막들을 보는 게 싫어서다. 녀석들은 마치 내가 가지 않은 길들을 보여주는 것만 같다. 놈들의 조롱을 애써 외면한 채 앞만 보고 달린다. 아... 아까 숨을 잘못 삼켰나 보다. 왼쪽 옆구리가 찌릿하다. 입을 굳게 다물고 호흡을 조절한다. 천천히 들이 마쉬었다가 내쉬었다가. 들이 마쉬었다가 내쉬었다가. 가볍게. 가볍게. 천천히. 그래. 이제 조금 괜찮다. 왼쪽에 중앙전산원으로 올라가는 길이 보인다. 가로등 몇 개가 어둠 속을 은은하게 밝히고 있다.

예쁘다. 피다만 우산처럼 살며시 퍼져있는 그 은빛이, 나는 좋다.


그 앞에서 처음으로 이별을 했다. 아팠다. 그 아이는 언제나 내게 화가 나있었고, 나는 그게 싫었다. 원망에 찬 눈빛. 상처가 되는 말들. 나는 연인들이 왜 서로에게 그런 말을 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고, 그 아이는 연인이니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나보다. 사랑하는 동안 그 아이는 나를 원망했고, 이별을 통해 그 것은 내 안으로 옮아왔다. 서로가 달라서였겠지만 나는 그 아이와의 다툼을 나의 못남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렇게 못나졌다. 한없이.



후욱... 후욱... 이번에는 오른 쪽 옆구리가 아파온다. 농대를 오른 쪽에 둔 이 길은 경사는 낮지만 오르막이 한동안 계속된다. 종아리가 슬슬 팽팽하니 뜨거워진다. 조금만 참자. 천천히 가면 된다. 몸에 힘을 더 빼고. 소처럼 조금씩 조금씩 중력을 밀며 올라간다. 이 오르막이 끝나면 확연히 어두워진다. 평평한 길을 따라 한 구비 돌아 달리다보면 다시 경사다. 여기서 조금 더 올라가면 오른 편에 조용히 잠들어 있는 셔틀 버스들을 볼 수 있다. 그 모습은 마치 무덤 같다. 버스들의 무덤. 그들은 숨을 쉬지 않는다. 오직 나의 숨소리만이 안개처럼 그 곳에 번질 뿐이다. 오롯이 혼자가 되는 시간. 나는 이 시간을 좋아한다. 이 순간만큼은 외롭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외로운 이유는 주변에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 많아서다. 휴대폰에 수 백 명의 연락처가 있지만 누구에게 무슨 말을 해도 되는 건지조차 알 수 없다. 바로 앞에서 이야기를 해봐도 그들에게 내 말은 닿지 않는다. 우리가 대화하고 있다고 느꼈던 시간에 조차 그들은 자신이 얼마나 매력적으로 말하고 있는지를 감상하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나와 마주할 때만이 이런 외로움으로부터 나를 자유롭게 했다. 산 모퉁이가 천천히 밝아오면서 버스가 한 대 돌아 나온다. 노란색 헤드라이트가 눈이 부시다. 렌즈를 껴서 그런지 빛이 번진다. 노오란 빛이 나의 망막을 새하얗게 덮는다. 새하얗게...


눈이 부셨다. 햇살에 눈을 찔린 것 같다. 눈이 따끔하다. 세상은 하얀 눈으로 가득 뒤덮여 있었다. 그 새하얀 눈길을 늙은 어머니와 걸었다. 괜찮다고 했는데 어머니가 내 뒤를 졸졸 따라온다. 무어라 계속 이야기를 하는데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나뭇가지 위에 쌓인 눈에 햇살이 반사되어 반짝거린다. 아름답다. 너무 아름다워서 마치 이 세상에 우리가 있어서는 안 될 것 같다. 초라한 행색의 우리. 문득 고등학교 때 어머니와 함께 정장을 사러 갔던 기억이 났다. 너무 깔끔하고 세련되어 보여서 오히려 불편했던 가게. 가난한 우리를 여과 없이 비춰주었던 형광등과 거울들. 우리는 옷을 살 돈이 있었음에도 그 가게의 손님조차 될 수 없었다. 그 날의 하얀 세상은 어린 시절의 그 가게보다 더욱 불편하게 느껴졌다. 질척한 눈 때문에 양말이 젖지는 않았는지 발가락을 꼼지락거려보았다. 그 때 어머니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니들을 어떻게 키웠는데..." 빌어먹을... 기어코 터지고야 말았다. 나는 쳐다보지 않았다. 언제 이렇게 약해졌을까... 매일 같이 집안 물건이 부서지는 난리 통 속에서도 눈물 한 번 흘리지 않고 그 혹독한 시집살이를 견뎌낸 어머니였다. 아버지가 집을 나갔을 때에도 그녀는 누나와 내 곁을 지켰다. 고등학교 때 내가 집을 뛰쳐나가 친구네서 얹혀살 때도 나를 따라와 그 집 청소를 해주며 내 곁을 지키던 그녀였다. 그랬던 그녀가 이제는 그냥 운다. 그냥 삶이 서러워서 운다. 아들의 넓어진 등만 보면 마음이 약해져 울음을 터뜨려 버린다. 버스정류장까지 가는 이 눈길이 너무나 길게 느껴졌다. 숨이 막혔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 버스정류장에 도착했고, 이내 기름 냄새를 풍기며 버스가 왔다. 시커먼 구정물을 뚝뚝 흘리며 새하얀 눈길을 더럽히고 있는 그 녀석이 그렇게도 반가울 수가 없었다. 어머니를 돌아보며 이내 그 잔인한 미소를 띠고 말했다.

"다 잘 될 거야."

주름이 자글자글해진 눈가에 미처 닦지 못한 이슬이 남아있는데도 고개를 끄덕인다. 어머니가 이렇게 작았었나. 서리가 곱게 내려앉은 머리카락이 살짝 헝클어졌다. 그것을 넘겨주려다 멈칫한다. 그리고 그대로 버스에 도망치듯 올라타 앞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나는 그 머리를 넘길 수 없었다. 내가 그녀를 살짝이라도 건드리면 그녀는 그대로 새하얀 눈처럼 곱게 부스러져 어디론가 흩날려 버릴 것만 같았다. 그녀가 마치 텅 빈 허물처럼 느껴졌다. 덜덜 떨리는 버스의 창가에 머리를 기댄다. 차갑다. 무언가 얼굴에 흐른다. 창밖에 뿌옇게 비친 어머니 머리 위의 서리가 녹았나보다. 촉촉하게 머리가 젖는다. 새끼를 태운 버스가 어미를 지나쳐 어디론가 떠나간다.



슈아아아아앙. 후덥지근한 바람에 정신이 번쩍 든다. 이 매케한 매연냄새를 매번 맡는 걸 보면 확실히 내가 건강 때문에 달리는 건 아니구나 싶다. 거의 다 왔다. 이 구비만 돌면 내리막이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이쯤 되면 발목이 슬슬 뻐근하다. 발로 땅을 밀며 한 발 한 발 달린다. 드디어 301동이다. 저 멀리 반짝거리는 아파트들이 보인다. 도시의 별이다. 난 어릴 적부터 저 빛들이 좋았다. 내리막을 달리면서 그 빛들을 유심히 바라본다. 그 빛 하나 하나에 가정이 있다. 사람이 있다. 이야기가 있다. 난 그게 좋았다. 언젠가 나도 따뜻한 가정을 갖겠다고 이를 악물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내리막길을 내려갈수록 산의 어둠이 해일처럼 아래서부터 차오른다. 그 빛들을 하나하나 집어삼킨다. 천천히... 그래... 그렇게 꿈을 잃었었지... 하지만 괜찮다. 때로는 안 보이는 편이 낫다. 눈에 보이는 곳으로 달려간다고 그 곳에 길이 있던 것은 아니더라. 오히려 눈에 보이는 데 가까워지지 않아 조바심만 났었다. 그냥 이 길을 달리는 거다. 내 두다리가 지금 박차고 있는 이 길을. 집중하자.



내리막길을 지나면 피아노 모양 음대 건물까지는 평지다. 이제 슬슬 속력을 낸다. 몸통에 공기가 둥글고 단단하게 뭉쳐 단전에 돌덩이가 들어있는 것 같다. 더 이상 못 달릴 것 같지만 여기가 가장 달리기 좋은 길이다. 이 좋은 길을 안 달릴 수 없다. 발구름을 조금씩 크게 한다. 자전거 페달을 밟듯이 둥글게 땅을 박찬다. 호흡도 크게 내쉰다. 괜찮다 이제. 조금만 지나면 끝이다. 힘든 구비는 다 지나왔다. 그래. 이미 지나왔다. 아무리 내가 지쳤어도 지금은 평지다. 평지가 오르막이 될 수는 없다. 왼쪽에 버들골이 보이기 시작한다. 햇살 좋은 날에 친구들과 빙 둘러앉아 짜장면을 시켜먹고 있는 내가 보인다. 조금만 더 가면 기숙사 삼거리 벛꽃 나무. 입학식 날 그 나무 아래에서 녀석들과 사진을 찍었었지. 점점 빨리 달린다. 스무 살의 S와 K가 사투리로 시끄럽게 떠들며 지나간다. 그 모습이 정겹다. 좀 더 속력을 낸다. 이제 경영대까지 내리막이다. 멀리 63빌딩도 보인다. 산책을 좋아했던 B와 이곳에 자주 앉아 있곤 했다. 발바닥이 뜨겁다. 바람이 거세게 갈린다. 파워플랜트 합숙소에서 열아홉 살의 내가 빨간색 죽도 가방을 메고 캐리어를 끌며 올라온다. 앞에 비니를 쓴 J선배도 보인다.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 이대로 달리다가 날아갈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니면 바닥에 굴러 제대로 까지든가. 그래도 달리고 싶다. 위험한 일을 할 때의 묘한 쾌감이 내 심장을 더욱 밀어 붙인다. 발바닥이 뜨거움을 넘어 이제는 따갑다. 내 안에 무언가가 자꾸 차오른다. 그게 점점 부풀어 올라 심장을 간지럽힌다. 그래 이 녀석. 나는 이 녀석이 늘 불편했다. 그 녀석이 계속 커져서 이대로 폭발해버렸으면 좋겠다. 그 녀석이 점점 커진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그래 조금만 더. 제발!


파하아아아아. 참았던 숨을 터뜨린다. 허리를 굽히고 거칠게 숨을 몰아쉰다. 숨인지 웃음인지가 꽁지 풀린 풍선처럼 거세게 새어 나온다. 다리가 후들거린다. 바로 집에 가지는 못할 것 같다. 대운동장 언덕의 벤치로 가서 털썩 주저앉는다. 이 학교에서 내가 좋아했던 곳들은 대부분 사라졌다. 그나마 남아있는 몇 안되는 곳 중 하나가 여기다. 한 쪽 팔을 벤치에 올려놓고 몸을 길게 뉘었다. 별 하나 없는 캄캄한 하늘이 보인다. 상쾌하다. 눈을 감는다. 시원한 가을바람이 불어온다. 편안하다. 그 바람에 실려 아득히 먼 곳에서부터 그 아이의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스치는 바람 결에 사랑 노래 들려요. 내 곁에서 떠나 버렸던...'


사랑했던 시간보다 조금 더 원망했던 사람. 이제는 미움도 사랑도 아닌 그저 바람이 되어 흘러가는구나. 웃음이 난다. 그래. 오랜만에 바람이 분다. 그 시절 그 바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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